“소아암 환자 ‘축구 하고싶다’는 소원에 캠페인 시작했다”
김동준 대표와 잉글랜드 축구스타 존 테리. 사진=김동준 대표 제공.
[일요신문] 안정환, 송종국, 이정협, 이용, 손흥민, 윤석영, 기성용, 지소연, 카를레스 푸욜, 라울 곤잘레스, 마츠 훔멜스, 세자르 아즈필리쿠에타, 존 테리, 패트리스 에브라, 프랑크 램파드, 필립 코쿠, 해리 케인, 히카르도 카카.
축구와 기부가 결합된 ‘슛 포 러브’ 팀이 만난 축구스타다. 슛 포 러브는 평범해보이는 젊은이들이 유명 해외 축구 스타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며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축구 스타를 외신을 번역한 언론 보도나 새벽 시간에 방송되는 티비 중계를 제외하면 접하기 힘들다. 하지만 슛 포 러브 영상 속에서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스타들이 한국 청년들과 함께 웃으며 공을 찼다. 도대체 무슨 캠페인일까.
슛 포 러브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벤트를 벌여 소아암 환자를 돕는 캠페인이다. 페널티 킥 성공시키기로 시작한 이벤트는 양궁 과녁 맞히기, 농구 골대에 축구공 넣기 등으로 진화했다. 이벤트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다음 참가자 3인을 지목하는 방식이었다. 안정환부터 시작된 이벤트는 손흥민, 기성용 등을 거치며 판이 커졌다. 과연 캠페인이 순조롭게만 진행 됐을까. <일요신문>은 숫 포 러브 캠페인을 이끌어 온 김동준 비카인드 대표를 지난 23일 만나봤다.
“축구가 하고 싶어요.”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온 소아암 환자들의 소박한 대답이었다. 이는 곧 김동준 대표가 슛 포 러브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 말을 듣고 축구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김 대표는 ”‘디즈니랜드 가기’ 같은 우리가 들어주기 힘든 소원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한 소원을 이야기 할 줄은 몰랐다.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일 수 있는 축구가 그들에게 소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슛 포 러브 팀이 만난 스타들의 미션 성적. 사진=김동준 대표 제공.
캠페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스타 섭외를 시작했다. 비카인드에서 생일 기부 플랫폼을 알리려 했을 때처럼 무작정 스타들을 찾아갔다. 소설가 이외수, 가수 옥주현, 프로게이머 홍진호를 찾아갔듯이 축구 스타를 찾아 헤맸다. 첫 번째는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이 있었기에 지금의 슛 포 러브도 존재할 수 있었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우리에게 너무 고마운 분이다. 페널티킥 이후로도 우리가 포맷을 바꿀 때마다 첫 번째 순서로 안 위원이 참가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안 위원에게 ‘슛 포 러브의 단군 할아버지’ 또는 ‘박혁거세’라고 부른다.”
그들이 채택한 릴레이 방식은 점차 판을 키웠다. 안정환이 지목한 송종국이 이정협, 이용, 루이스 피구를 지목했다. 이용이 손흥민을 지목하며 유럽으로 무대가 옮겨졌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유럽 행을 결정했다.
그는 ”함께 하는 친구들과 이왕 시작한 거 ‘호날두까지 가보자’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송종국이 피구를 지목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유명 선수가 자신들과 함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슛 포 러브가 처음 만난 유럽 축구 스타 카를레스 푸욜. 사진=김동준 대표 제공.
그는 ”푸욜이 ‘무릎 부상과 수술로 은퇴했다. 수술 뒤 1년이 넘도록 아직 공을 차본 적이 없다’며 여러가지 종류 공을 준비해 줄 수 있냐고 묻더라. 우리는 당장 가까운 마트로 달려가 축구공, 배구공, 장난감 공 등 여섯 가지 공을 준비해갔다. 푸욜이 웃으며 공 한 개를 골랐고 촬영이 진행됐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존 테리에게 캠페인 취지를 설명하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존 테리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다.“ 김 대표는 잉글랜드 대표팀과 첼시 주장으로 활약했던 수비수 존 테리를 ‘잊지 못할 스타’로 꼽았다. 영국 타블로이드지를 보고 단순히 ‘호숫가에 있는 집’에 산다는 정보만으로 호수 근처 부촌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그의 집을 찾았다. 집을 찾고도 며칠을 기다려 딸과 함께 집을 나서는 존 테리를 만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는데 테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굉장히 집중해서 들어줬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느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슛 포 러브’팀은 테리와 딸의 산책을 기다리고 나서야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도 테리는 ‘슛 포 러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집에 들어갔다 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던 그는 자신이 이틀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입고 뛴 유니폼과 신었던 축구화 2켤레를 들고 나왔다. 김 대표가 방금 선물한 티셔츠를 입은 딸도 함께였다. 테리는 자신의 애장품에 촬영 중인 카메라 앞에서 직접 사인도 해줬다.
‘슛 포 러브’에서 이천수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스타다. 이천수는 국민대학교 체육관 객석 높은 곳에서 바닥에 있는 농구 골대에 공을 차 넣는 미션을 성공해 큰 화제를 모았다. 김 대표는 “이천수 해설께서 ‘불가능하다’며 엄살을 많이 부리셨다. 그런데 제한된 기회 열 번 중 다섯 번째 만에 너무 쉽게 성공시켜 믿기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업로드 할 영상이 너무 짧을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천수 미션 영상은 온라인에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유튜브에서 ‘2016년 엔터테인먼트 부문 TOP 10’에 꼽히기도 했다. 이천수는 미션에 대해 텔레비전 방송에서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천수 해설과 좋은 인연이 돼서 2016 리우 올림픽 현장에도 함께 다녀왔다. 열악한 조건 속에 브라질이라는 먼 나라까지 가서 촬영을 하는데 이천수 해설이 우리에게 너무 잘해 주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동준 대표.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김 대표는 “물론 호날두까지 가볼 생각”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 끝은 호날두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를 섭외하느냐’도 목표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더 많은 이들을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아암 환자들을 꾸준히 도왔는데 기부 범위도 더 넓힐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부 규모가 지금의 10배가 된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소셜 벤처 비카인드 대표, 슛 포 러브 캠페인의 기획자, 사회자, 섭외 담당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느라 쉴 틈이 없다. 인터뷰 내내 전화기가 바삐 울리기도 했다. 5명의 직원들도 모두 외근 중이라 사무실이 텅 비어있었다. 직접 만나기 전 까지는 이렇게 바쁜 사람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김 대표와 인터뷰 약속을 잡는데 걸린 시간은 3분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한 이유로 “기다려본 사람이 기다리는 사람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