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스 천문학적 지출로 문 닫았지만 미라클·저니맨·챌린저스 생겨나며 ‘독립리그’ 탄생
벌써 20대 후반. 그러나 신인 선수로 오해할 만큼 이름이 낯설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서다. 타자에서 투수로, 다시 타자로 전향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의대 2학년 때 외야수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2012년 한화에 투수로 입단했다가 다시 타자 전향 권유를 받아 외야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결국 팀에서 방출됐고, 현역으로 군에 입대해 재기를 노렸다.
전역 후에는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에 입단해 야구를 향한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다시 한화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5년 12월 선수로 계약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전했고, 올해 두산과의 시즌 개막전에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는 기회를 얻었다. 두산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첫 타석 초구에 안타를 때려내는 기쁨도 맛봤다. 그러나 진짜 스타 탄생의 무대는 시즌 두 번째 경기였다. 두산을 상대로 4안타를 몰아쳤다. 특히 연장 11회에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려 극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 친구들이 한국시리즈에 뛰고 있을 때, 나는 군대에서 걸레를 빨면서 TV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사연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비록 왼쪽 허벅지 근육에 통증이 올라와 4월 5일 일시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독립야구단에서 프로야구의 꿈을 꾸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길 만한 활약이었다. 동시에 독립야구단의 존재 가치도 재조명을 받았다.
# 고양 원더스
2011년 9월 15일. 서울시 도곡동 한국야구회관 7층에서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 협약식이 열렸다. 구본능 KBO 총재, 최성 고양시장, 그리고 원더스 구단주인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양해각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전 SK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김 감독의 주도 아래 코칭스태프 구성도 마쳤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친 대대적인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수 40명을 뽑았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가대표 야구 훈련장이 원더스 선수들의 둥지였다.
영화 <파울볼> 홍보 스틸 컷.
허 구단주는 야구를 사랑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학창 시절 서울대학교 야구부에서 활약했다. 너클볼을 던지고 싶다는 이유로 직접 미국에 가서 전설의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레슨을 받고 왔다는 일화까지 들렸다. 그런 허 구단주가 3년간 사재 50억 원을 털어 독립야구단을 운영하겠다고 나서자 야구계는 깜짝 놀랐고, 물론 환영했다.
원더스의 창단 목표는 분명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거나 구단에서 방출돼 재기를 꿈꾸는 야구 선수들에게 프로구단 입단 도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허 구단주는 당시 “경쟁에서 탈락해 우리 팀에 온 선수 중 한 명이라도 다시 1군 무대에서 성공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기부라고 생각한다”며 “뜻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그런 팀이 모델이다. 선수들을 잘 키우기 위해 김성근 전 SK 감독을 모셔왔다”고 했다.
김 감독이 이끄는 원더스는 웬만한 프로팀 못지않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실제로 프로에서 활약한 코칭스태프가 대거 합류했고, 일본인 타격코치도 두 명이나 거쳐 갔다. KBO 퓨처스리그에 소속된 프로 2군 팀들과 교류전도 치렀다. 화젯거리도 풍부했다. 투수 김수경은 넥센에서 투수 코치 생활을 하다 2013년 원더스에 입단하면서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야생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LG 레전드 투수 이상훈도 2013년부터 2년간 원더스 투수코치를 맡았다.
창단 때 내세운 목표도 차근차근 이뤄갔다. 2012년 넥센 안태영을 포함한 선수 5명이 프로에 둥지를 틀었고, 2013년에는 무려 12명이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LG 황목치승, 한화 송주호가 바로 이때 기회를 잡은 선수들이다. 2014년에도 9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2014년 8월 열린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는 포수 정규식이 LG에 4라운드에서 지명돼 원더스 선수 중 처음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하는 사례도 남겼다. 원더스의 신화가 이어지면서 김 감독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울볼>도 제작됐다.
다만 그런 원더스는 예상보다 더 빨리 문을 닫았다. 약속했던 3년을 정확하게 꽉 채운 2014년 9월 11일, 전격 해체를 선언했다. 구단은 “KBO가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가입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 협조를 해주지 않아 문을 닫는다”고 해체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원더스는 퓨처스리그 팀들과 2012년과 2013년에 48경기를 했고, 2014년에는 경기수가 90경기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KBO는 이듬해에도 같은 경기수를 편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야구인들은 “원더스가 퓨처스리그에 편입되는 것보다는 독립야구단이 더 늘어 독립리그가 창설되는 것이 바람직한 모양새”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가 쉽지 않았다. 원더스는 독립야구단의 가치를 일깨워준 화제의 팀이었지만, 다른 독립야구단의 롤모델이 되기엔 너무 거대했다. 허 구단주는 3년간 예상했던 50억 원을 훌쩍 넘어 총 120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근 감독에게 프로 감독 못지않은 특급 대우를 했고, 외국인 코치와 선수까지 보유했다. 해외 전지훈련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야구계에는 “야구광으로 소문난 청년 자산가 허 구단주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지출이었다”고 소문이 났다.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 독립야구단에 이렇게 거액을 들일 수 있는 기업체는 나오기 어려웠다. 원더스는 뜻 깊은 발자취와 아쉬운 숙제를 동시에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연천 미라클의 등장
원더스가 해체한 이듬해 2월, 또 다른 독립야구단이 창단 소식을 전했다. 경기도 연천군을 연고로 하는 연천 미라클이다. 한 달이 지난 3월 20일에는 선수단까지 꾸려 정식으로 출범식을 열었다. MBC 청룡에서 내야수로 뛰었던 김인식 전 LG 2군 감독이 초대 사령탑에 올랐다. 경기도 고대산에 있는 연천베이스볼파크에서 선수 30여 명이 모여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든든한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훈련했던 원더스와는 출발 지점부터 달랐다. 연고지인 연천군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고 2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운영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1년에 30억 원을 쓰던 원더스와 달리, 미라클은 3억 원이 조금 넘는 운영비를 지출하는 게 고작이다. 선수들이 한 달에 70만 원씩 참가비를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금을 조성해 구단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한화 외야수 김원석. 연합뉴스
퓨처스리그 팀들과의 교류전도 불가능하다. 프로구단 3군이나 대학 야구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는 게 전부다. 선수들이 기량을 향상시키거나 점검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야구로 돈은 벌지 못하고 오히려 회비를 내야 하니, 생계를 위해 평일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밤이나 주말에만 야구를 해야 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구단 이름처럼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된 한화 김원석이 바로 미라클을 통해 프로에 재진입한 선수다. NC 내야수 이강혁과 윤국영, 삼성 포수 조용성도 프로에 복귀하거나 진출했다. 미라클에서는 이들을 ‘기적의 사나이’라 부른다. 실제로 이 선수들이 프로와 계약한 뒤 미라클 선수들의 사기가 한껏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이뿐 아니다. 2016년 삼성에 입단한 재미교포 우완 투수 이케빈도 미라클 창단 멤버로 합류해 3개월간 함께 훈련했던 선수다. 프로에 가기 전 미라클에서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훈훈한 뒷이야기도 있다. 해체한 원더스 출신 선수들의 모임인 원더스 OB회가 지난해 초 미라클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원더스를 거쳐 갔던 총 100여 명의 선수들이 구단 해체 후 모임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30여 명이 형편이 닿는 대로 한 통장에 회비를 모았다. 그리고 한때의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미라클 선수들에게 그 돈을 쾌척했다.
# 독립리그 출범과 파주 챌린저스
여전히 상황은 어렵지만, 점점 길이 넓어지는 조짐도 보인다. 올해는 최초로 독립야구리그도 출범한다. 미라클과 저니맨 외인구단까지 일단 두 팀이 참여한다. 저니맨 외인구단은 올해 초 창단을 선포한 팀. 프로 선수 시절 총 6개 구단을 거치면서 ‘저니맨’으로 이름을 날렸던 최익성 저니맨스포츠 대표가 구단주다.
이 리그는 한국스포츠인재육성회가 주최·주관하고, 뉴딘콘텐츠가 타이틀스폰서를 맡는다. 4월 24일 목동구장에서 개막전이 열린다. 저니맨 외인구단 구단주 겸 감독을 맡고 있는 최 감독은 “자생력이 강한 독립구단을 만들겠다. 미국이나 일본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다”는 포부를 밝혔고, 김인식 미라클 감독은 “시작은 약소하지만, 프로야구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독립야구단과 독립리그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독립야구단도 새 출발을 앞두고 있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이 이끄는 파주 챌린저스도 4월 10일 공식 출범한다. 이성근 전 삼성 운영팀장이 초대 단장을 맡고, 양 전 감독이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양 감독은 재능 기부 형태로 연봉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 최원호 SBS스포츠 해설위원이 투수코치로 활약한다. 지난 2월 홈구장이 완공돼 소속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해왔다. 앞으로 이 구장을 사회인 리그에 대여하면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운영비로 활용하게 된다.
이미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수를 뽑았고, 대학팀들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기량도 쌓았다. 일부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들도 찾아와 파주 챌린저스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봤다. 파주 챌린저스의 목표도 다른 구단들과 같다. 구단 측은 “프로야구단에서 방출되거나 지명 받지 못한 수많은 야구 인재에게 다시 한 번 프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기틀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일본 독립구단 파이팅독스 스토리] “스시 무한제공 할게” 레전드 라미레스 영입 고치 파이팅독스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독립야구단이다. 일본 시코쿠 독립리그에 소속돼 있고, 팀을 알리기 위해 파격적인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파이팅독스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한국 선수를 대상으로 입단 테스트를 했다. 일본 독립야구단의 트라이아웃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야구 저변이 넓은 일본은 독립리그가 프로 리그 못지 않게 활성화돼 있다. 독립리그 선수들도 웬만한 한국 프로야구 신인급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뛴다. 프로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파이팅독스의 입단 테스트가 좋은 기회였다. 파이팅독스 사령탑은 고마다 노리히로 감독이다. 요미우리와 요코하마에서 20년간 뛰었고, 통산 2000안타도 달성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고마다 감독이 직접 찾아와 트라이아웃을 참관했다. 게다가 이 트라이아웃 장면은 동영상을 통해 파이팅독스가 속한 시코쿠 독립리그 산하 구단들에 전달됐다. 이 트라이아웃을 통해 두 명의 한국 선수가 파이팅독스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이유로 파이팅독스가 유명한 것은 아니다. 파이팅독스는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후지카와 규지(한신)가 2015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1년간 무보수로 뛰었던 팀이다. 고향이 고치인 후지카와는 한신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자 돌연 파이팅독스에 입단해 1년간 고향의 기운을 흠뻑 받았다. 이뿐 아니다. 올해는 메이저리그에서 19년간 뛰면서 통산 555개의 홈런을 때려낸 강타자 매니 라미레스가 파이팅독스에 입단해 현역에 복귀했다. 2004년 월드시리즈 MVP 출신인 라미레스는 2011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었지만, 2013년 대만에서 뛰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올해는 파이팅독스와 플레잉코치 계약을 하고 일본으로 왔다. 파이팅독스는 라미레스를 영입하기 위해 이색 계약 조건도 모두 수락했다. ‘스시를 무한으로 제공한다’과 ‘훈련은 선택적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플로리다까지 직접 날아가 라미레스의 마음을 움직인 파이팅독스는 덕분에 이래저래 화제의 구단으로 떠올랐다.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구단은 “프로 입단을 노리는 선수들에게 전설적인 메이저리거의 경험과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긴다”고 반겼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