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프레디’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털었다. | ||
1973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금요일마다 은행을 털어왔던 전설적인 은행강도 칼 구가시안(56)이 지난 2002년 마침내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그가 50군데의 은행에서 털어온 액수는 무려 1백60만달러(약 19억원). 이것을 다시 은행 한 곳으로 환산해보면 평균 3만2천달러(약 3천8백만원)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범행을 저지르면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검거된 적이 없었던 그가 3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붙잡히게 된 것은 우연치 않게 증거물을 발견한 몇몇 제보자 덕분이었다.
긴 세월 동안 인근 야산의 땅속에 숨겨져 있던 범행 도구들이 등산을 하던 10대 소년들에 의해 그만 발각되고 말았던 것.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미궁 속의 사건이 우연으로 인해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당시 10대 소년들이 펜실베이니아주 레드노어 타운십의 야산에서 발견했던 것은 길이 1m, 지름 35cm 가량 되는 낡은 하수관이었다. 돌더미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 하수관 속에는 여러 개의 플라스틱 튜브가 숨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왠지 수상쩍어 보이는 몇몇 문서와 가면들이 들어 있었다.
▲ 범행도구를 숨겨둔 벙커가 발견된 야산. | ||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벙커 안에 숨겨져 있던 다량의 무기들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등록번호를 지워버린 듯한 권총부터 다양한 모양의 가면들, 수상한 문서들, 그리고 다른 벙커들의 위치가 적혀있는 지도까지 심상치 않은 물품들이 가득했던 것.
얼마 후 비슷한 형태의 7개의 벙커가 뉴욕 등지에서 더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코네티컷부터 버지니아, 피츠버그에 이르는 1백60개 은행의 위치와 폐점 시간을 자필로 일일이 기록한 목록도 발견되었다.
이중 범인을 체포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것은 특정 가라테 도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 도구들이었다. 이 가라테 도장을 기점으로 수사를 벌였던 FBI는 가라테 사범의 도움으로 용의자 명단을 좁혀 나갈 수 있었으며, 지난 2002년 마침내 ‘얼굴 없는 은행강도’, 즉 구가시안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벙커가 발견되었던 야산 건너편에 살고 있던 구가시안은 체포 당시 두 개의 계좌에 50만달러(약 5억9천만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그가 범행을 저질렀던 것은 지난 1973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였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수재이기도 했던 구가시안은 졸업 후 이렇다 할 직장은 구하지 않은 채 도박으로 밥벌이를 하다 급기야 은행을 터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처음 한두 건이 성공하자 결국 은행강도를 ‘평생직’으로 삼는 배짱을 보여 주었다.
범행 목표로 정한 은행을 털기 전에 미리 사전 답사를 실시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또한 은행 근처의 야산에 범행도구를 숨겨 두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 반드시 샤워를 한 후 경찰견의 추적을 막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집에서부터 은행까지 그가 이용하는 교통 수단은 다양했다. 일단 집에서는 밴 승용차를 타고 출발한 후 은행으로부터 약 16km 가량 떨어진 지점부터는 차를 세워두고 준비해둔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갈아 탔다. 또한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가면을 쓰고 무기를 장착한 후에는 아무것도 타지 않은 채 직접 걸어서 은행으로 향했다.
항상 닉슨 대통령이나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의 악당 프레디 크루거의 가면을 쓰고 은행에 나타났던 그의 범행은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또한 절대로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늘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격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큰 옷을 입고 나타나거나 구부정거리며 걸어 다니는 등 눈속임의 천재였다.” 담당검사의 말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결국 밟히는 법. 그는 현재 17년6월의 형을 받고 수감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