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30대 기수 마크롱이냐, 여자 트럼프 르펜이냐...트럼프와 오바마 장외전까지
[일요신문] 한국은 지금 장미대선이 한창입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은 주요 후보만 다섯 명에 달하는 다자구도가 형성됐습니다. 참 흥미로운 구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 반대 쪽 저편에서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UN상임이사국이자 유럽 핵심국가인 프랑스 대선입니다. 이쪽도 여간 흥미롭기 그지없습니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지난 4월 23일(프랑스 현지시각)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결선에 오른 후보는 23.9%로 1위를 기록한 ‘앙 마르슈’ 소속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21.4%로 그 뒤를 이은 ‘국민전선’ 소속 마린 르펜 후보입니다.
전 세계가 경악한 결과입니다. 두 후보 모두 비주류 정당 후보기 때문이죠. 프랑스 의회는 집권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전통적인 양자 구도를 형성해 왔습니다. 르펜의 국민전선은 프랑스 하원의 한 석만을 선점하고 있고, 마크롱의 ‘앙 마르슈’는 심지어 한 석 조차 없는 신생 원외 정당입니다. 비주류 소수정당 후보들이 대선 결선에 오른 것은 프랑스가 1958년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로 따지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같은 주요 정당 후보자들이 중도 탈락하고 정의당, 새누리당 같은 소수정당이 결선에 오른 셈이지요. 그 만큼 프랑스 유권자들은 기성 정당들을 불신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후보 면면을 살펴보면 더 재밌습니다. 우선 1위로 결선에 오른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입니다. 딱 보면 아시겠지만, 젊은 훈남 입니다. 이제 고작 서른 아홉에 불과한 마크롱이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외모만큼이나 스펙 역시 화려한 마크롱 입니다. 그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두 학교는 프랑스 정/관계 고급 관료들을 배출하는 최고 엘리트코스라고 합니다. 학교 졸업 후 마크롱은 세계적인 투자기관인 ‘롤스차일드’에 몸담으며 경제 전문가로서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이 잘생기고 유능한 젊은이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눈여겨봅니다. 마크롱은 2012년 올랑드 정권 출범과 함께 경제수석으로 임명됩니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넷 때의 일이죠. 자유분방한 프랑스에서도 그의 정계 입문은 파격이었고 큰 화제였습니다. 2014년 마크롱은 경제산업부 장관직에 오르며 서른 여섯의 어린나이에 대국 프랑스의 경제수장이 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만화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정계에 입문한 지 불과 4년 만에 마크롱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겁니다. 장관직을 내던지고 사회당을 탈당한 마크롱은 중도좌파 성향의 신생정당 ‘앙 마르슈(정진당)’를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운도 따릅니다. 이미 생명이 다한 사회당의 아몽 후보와 가족 보좌관 채용으로 스캔들을 일으킨 공화당 피용 후보의 자폭으로 중도보수와 중도진보 표심을 야금야금 가져간 것이죠.
마크롱은 대선운동 과정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 마크롱은 젊고 진보적인 성향 덕에 자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비견되기도 했는데요. 실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마크롱과의 통화를 통해 격려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통화 장면을 마크롱은 적극 선거운동에 활용하기도 했죠. 메르켈 독일 총리도 대변인을 통해 마크롱의 행운을 기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마크롱의 화려한 이력과 스토리보다 더 주목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가족이죠. 마크롱은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와 지난 2007년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놀라운 건 트로뉴가 마크롱보다 스물 다섯니나 많은 연상녀란 사실이죠.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부인 트로뉴는 마크롱의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습니다. 유부녀였던 트로뉴는 세 아이를 둔 엄마였는데 그중 한 명이 마크롱과 같은 반 친구기도 했습니다. 마크롱은 졸업후 유부녀였던 선생 트로뉴에 집요하게 구애했고, 급기야 트로뉴는 이혼과 함께 마크롱의 사랑을 받아줬죠. 마크롱 친구는 그의 양아들이 되기에 이릅니다. 헉!;;;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마크롱은 친구 엄마를 꼬셔 결혼한 패륜아로 낙인찍혔겠지만 프랑스에선 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은 없나 봅니다. 현직인 올랑드는 동거녀를 두고 바람을 피다 걸렸고, 전직인 사르코지 역시 바람에 바람을 거듭하다 세 번째 결혼까지 한 전력자들입니다. 여자문제로 바람잘날 없는 프랑스 정계이기에 이 정도는 ‘애교’라는 분위기입니다.
두 번째 후보는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49) 후보입니다. 마크롱이 워낙 젊기 때문에 조명을 덜 받고 있지만 르펜 역시 40대의 젊은 기수입니다.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역시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고 합니다.
르펜 역시 마크롱 만큼이나 흥미로운 후보입니다. 파리2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르펜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응시해 변호사가 됩니다. 지금이야 극우정당의 수장으로 이민자 정책을 두고 강경 일변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르펜은 초임 변호사 시절 이민자들을 변호했다고 합니다.
르펜은 2011년 국민전선의 대표로 임명되기 전까진 정치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돌싱녀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르펜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입니다. 아버지 르펜 옹은 바로 딸 르펜이 당수로 있는 국민전선의 창립자입니다.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까지 갔던 나름의 거물이죠. 르펜 옹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이자 백인 우월주의자일겁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모두 백인으로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당시 대표팀의 알제리계 지네딘 지단은 “만약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난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고 한 유명한 일화도 있죠.
딸 르펜에 대한 평판은 상반됩니다. 일단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란 평가가 있습니다. 아버지 르펜의 은퇴와 함께 국민전선의 당대표 자리에 오른 르펜은 2011년 이슬람을 과거 독일 나치와 비교하는 망언을 내뱉는 바람에 재판장에 가기도 했죠.
르펜은 영국처럼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면서 반 이민, 반 난민, 반 이슬람 정책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결선 투표에 오른 배경에는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프랑스 백인 하층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남부 하층 백인 유권자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매우 흡사하죠.)
앞서 마크롱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격려과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르펜에게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4월 21일 <AP통신>을 통해 “르펜이 국경 문제와 현재 프랑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장 강경하다”라며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과 국경 문제에 가장 엄격한 사람이 선거에서 잘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를 두고 오바마와 트럼프의 대리전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르펜이 비록 극우정당에 몸담고 있지만, 아버지 보단 훨씬 합리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 르펜은 외인부대 군인 출신인 아버지와 비교해 더 많이 배웠고, 좀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지향합니다. 특히 동성애와 성 평등에 있어선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으니까요.
게다가...앞서 마크롱의 가족 얘기도 나왔지만, 르펜도 만만찮습니다. 여기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르펜은 정계 은퇴 이후에도 테러리스트를 옹호하고, 인종 혼합을 혐오하는 막말드립을 계속 시전하고 있습니다. 대선을 노리고 중도 클릭을 꾀하던 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별 다른 도움이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2015년 8월 르펜은 골칫거리였던 아버지를 당에서 영구제명하기에 이릅니다. 대선을 노리던 르펜으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마크롱과 다르게 또 다른 의미로 ‘패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딸에게 배신 당한 르펜 옹께서는 이후에도 또 다른 극우정당을 만들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죠.
두둥! 후보 면면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는 오는 5월 7일(현지시각) 개막합니다. 우리 대선을 이틀 앞둔 시점입니다. 두 사람은 소수정당 후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상극 중 상극입니다. 프랑스는 UN상임이사국이자 유럽연합의 핵심국가입니다. 이 대선 결과에 따라 유럽과 세계는 적잖은 영향을 받게 되겠죠.
과연 프랑스 차기 대권은 이 두 사람 중 누가 쥐게 될까요. 궁금할 따름입니다.
기획_제작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