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장술의 귀재로 알려진 알-자르카위의 여러 모습. | ||
오사마 빈 라덴 이후 미국의 최대 핵심 표적이자 증오의 대상이 된 요르단 출신의 과격 테러리스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37)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주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미국인 참수 사건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알-자르카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국 ‘제2의 빈 라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미국인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간주됨과 동시에 미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은둔자 생활이 불가피해진 것.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면서 미군으로부터 ‘미치도록 잡고 싶은 인물’ 중 한 명으로 찍혔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종잡을 수 없는 행적으로 인해 ‘베일 속에 가려진 인물’로 표현되는 그는 현재 이슬람 과격분자들 사이에서 빈 라덴 이후의 실세로 평가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를 ‘알 카에다의 2인자’로까지 치켜 세우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그가 알 카에다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투쟁 양식 역시 기존의 과격단체와는 사뭇 다르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안사르 알 이슬람’ 등 대규모의 과격단체와 협력은 하되 소규모의 게릴라성 조직을 구축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알-자르카위,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본명은 파델 나잘 알-할라일레. 빈 라덴과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진 그와 빈 라덴의 공통점이라면 같은 수니파 무슬림이라는 점,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함께 전쟁에 참가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성장 배경은 전혀 다르다. 사우디 건설 부호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빈 라덴과 달리 요르단의 작은 마을인 자르카이에서 태어난 알-자르카위는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9남매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소일하다가 당시 수많은 아랍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울분을 토하면서 전쟁터로 뛰어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돌변해 하루의 대부분을 코란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 당시 “나라의 불안을 조장한다”는 죄목으로 아프간의 퇴역 군인들에 대해 요르단 당국의 탄압이 시작되자 주모자들과 함께 붙잡힌 그는 7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1999년 출옥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요르단의 체제를 전복하고 이슬람국가를 건설하자는 한 성직자의 영향을 받아 ‘내란죄’ 및 미국, 이스라엘 관광객 살해 혐의로 다시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고국인 요르단을 등지고 파키스탄으로 도주한 그는 숨어 지내면서 꿀 판매원으로 일하는 등 가급적 조용한 생활을 했다. 알 카에다와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무렵. 당시 생화학 무기 및 독가스 제조 전문가였던 그에게 알 카에다측이 직접 도움을 요청해 오면서부터였다.
▲ 미국인 참수 사건의 주범으로 알-자르카위(사진 위 원 안)가 지목됐다. 그는 지난 3월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아래)에도 연루된 것 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뉴시스 | ||
2001년 중반 무렵에는 알 카에다 기지가 위치한 칸다하르로 직접 찾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다는 조건으로 3만5천달러(약 4천만원)의 운영비를 지원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요르단인뿐만 아니라 추방된 이라크의 쿠르드족 단체와도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쿠르드족 이슬람 단체인 ‘안 사르 알 이슬람’ 단체와도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안 사르 알 이슬람’은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체로서 알 카에다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쿠르드족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쿠르드족 거주지 건설을 목표로 투쟁하는 과격단체다.
2001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 다리와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었던 그는 곧 30여 명의 측근들과 함께 위조 여권으로 이란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다시 이라크로 도주했다. 바그다드에 머물면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의족을 끼운 그는 얼마 후 조직이 재건되고 있던 이라크 북부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이때가 아들로부터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았던 때였다. 당시 아들은 ‘더 이상 집으로 돈을 못 부칠 것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한탄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200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행된 유럽 도처의 테러에 대해 현재 거의 대부분 그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는 요르단 암만에서 살해된 미국 외교관 로렌스 폴리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 요르단 당국은 그를 배후자로 지목하고 사형 선고를 내린 바 있다.
이밖에도 지난 2년 동안 급증하기 시작한 이라크, 파키스탄 등지의 미국인 상대 테러나 지난해 8월 나자프의 시아파 이슬람 사원과 바그다드 유엔 사무소 테러, 11월의 이탈리아 경찰본부 등을 상대로 한 테러 등도 모두 그의 조직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전 1주년에 즈음하여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테러, 즉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바그다드 시내 중심의 마운트 레바논 호텔 앞 차량 폭탄 테러, 시아파를 겨냥한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의 동시다발적인 연쇄 자살폭탄테러 등에도 그가 연루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군 특수부대의 끈질긴 추적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행방이 묘연한 그의 목에는 현재 현상금 1천만달러(약 1백18억원)가 걸려 있다. 하지만 그의 변장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 그리고 도처에 퍼져 있는 그의 조직망을 감안한다면 알-자르카위를 체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