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규, 윤석열 임명 문제 제기…윤장석, ‘돈봉투 만찬’ 안태근과 잦은 통화 도마위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노 전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검찰 개혁에 나섰다. 법무부 문민화, 검찰의 정치적 중립 등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일환으로 노 전 대통령은 판사 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내부에서 노 전 대통령 인사를 성토하는 기류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의 공개 대화를 추진했다. ‘평검사와의 대화’는 온 국민의 관심 속에 2003년 3월 9일 열렸다.
이 자리엔 김영종 수원지검 검사 김병현 울산지검 검사 김윤상 법무부 검사 박경춘 서울지검 검사 윤장석 부산지검 검사 이석환 인천지검 검사 이옥 서울지검 검사 이완규 대검찰청 검사 이정만 서울지검 검사 허상구 서울지검 검사 등 평검사 10명이 참석했다. 토론회는 TV로 생중계됐다.
검사들은 대통령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하는 등 맹공을 퍼부었다. 김영종 검사는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취임 전에 부산 동부지청에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왜 검찰에 전화를 했는가”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박경춘 검사는 고졸이었던 노 전 대통령에게 대학교 학번을 거론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다”라고 했다.
대화가 끝난 뒤 검사들의 행태를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검사들을 비꼰,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상대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일부 검사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참모들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검사와의 대화를 밀어 붙였던 노 전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그 어떤 부당한 조치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던 10인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문 대통령 인사를 두고 5월 19일 검찰 내부 전산망에 문제를 제기한 이완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은 평검사 시절 노 전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이 지청장은 “이번 인사에서 제청은 누가 했는지, 장관이 공석이니 대행인 차관이 했는지, 언제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글을 남겼다.
이 지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이 지청장은 2010년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혐의 무죄 판결 뒤 검찰 개혁 문제가 화두가 되자 “검찰을 부인하는 정도의 개혁이나 수사권 약화는 검사의 국민보호 역할을 약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엔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검찰 수뇌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며 사표를 제출했지만 반려됐다.
이 지청장은 2012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시절 정치 웹진 운영자인 신 아무개 씨를 협박죄로 불구속 기소해 논란이 됐다. 신 씨는 대검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서자 게시판에 ‘독고탁’이라는 필명으로 ‘이명박 야 이 ○○○야’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협박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가 있을 때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인 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피해자인 이 전 대통령 처벌 의사를 확인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김윤상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혼외자 논란으로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호위무사로 통했다. 김 변호사는 채 전 총장의 사의 표명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다. 김 변호사도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에 강한 불쾌감을 내비쳤다. 김 변호사는 5월 18일 SNS에 ‘돈 봉투 만찬’ 감찰 지시와 관련 “노무현한테도 개기고 박근혜한테는 사표 던지고 나왔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나도 현직에 있을 때 총장, 장관, 고검장, 검사장, 검찰국장, 법무실장, 차장검사, 부장검사로부터 격려금을 많이 받았다”면서 “현 정권에 밉보여 좌천될 것이 분명한 안 국장 수하의 과장들한테 (격려금을) 준 게 인사 청탁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총칼만 안 들었지 권위주의 정부와 뭐가 다르냐. 참신한 인사와 탈권위주의 행보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 점령군 행태를 벌써 보인다”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을 지낸 윤장석 검사는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 때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돈 봉투 만찬’ 핵심 인물인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과도 자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나 도마에 올랐다. 이뿐만 아니라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지난해 10월 29일 박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여섯 차례 통화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병현 검사는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검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이른바 ‘삼성 X파일’ 수사에 참여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핵심 인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해 ‘삼성 봐주기’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15년에도 노동조합 무력화 계획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혐의로 고발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이정만 변호사는 2007년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를 맡았다. 2015년 검찰을 떠난 뒤 20대 총선에서 광명 갑 선거구에 새누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예비 후보에 출마했으나 경선에서 떨어졌다. 이석환 제주지검장은 대검 중수부 2과장 시절이던 2009년 중수 1과장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다. 2011년 삼화 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공안통’으로 통하는 허상구 검사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수사에 참여해 경찰의 과잉 진압 및 불법 행위 방조를 수사했다. 현재는 수원지검 부장검사로 근무 중이다. 노 전 대통령 앞에서 ‘학번’ 얘기를 했던 박경춘 검사는 법무법인 <대유>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다. 김영종 검사는 현재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이다. 김 지청장은 2010년 대검찰청 범죄정보 담당관, 2013년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이옥 변호사는 검찰에서 나와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몸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양제상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때하곤 상황이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힘이 뒷받침이 안 됐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탄생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문제도 있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도 검찰이 미지근하게 수사했던 부분도 있었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정치적 명분이 생겼고 국민도 검찰 개혁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당분간 검찰 내부 반발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 양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서 수사권을 내주는 것은 칼자루를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허니문 시기고 내각이 완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검찰 개혁 반대 세력도 조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돈 봉투 만찬’으로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