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징발이 아니라 동원…고장 적은 신차 위주 지정”
전쟁이 발발하면 민간인 소유의 SUV 차량을 국가가 징발한다는 소문이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다. ‘비즈한국’이 관련 법안을 검토하고 국토교통부와 국방부에 직접 확인해봤다. 그래픽=이세윤 디자이너
정부와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짜뉴스의 확산을 잠재웠지만, 논란 이후 두 달이 지난 최근까지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한 얘기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SUV 차량을 국가가 징발한다’는 내용이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한 누리꾼은 지난해 12월 경기도지사의 직인이 찍힌 ‘중점관리대상물자지정 및 임무고지서’를 통보받았다며 인증사진과 함께 ‘기분이 묘하다’는 심경을 담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다. ‘국민안전처가 자동차, 선박 등 연간 17만 대의 비상대기 자원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동원 목적과 동원 수요에 따라 차량이 지정되고 특수목적차량은 거의 동원지정차량이다. SUV는 동원지정차량 수량에 비하면 100분의 1’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긴 누리꾼도 있다.
이 얘기는 사실일까. 아니면 그럴듯한 가짜뉴스일까. ‘비즈한국’이 관련 법안을 검토하고 관계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국방부에 연락해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해봤다. 관련 법안인 비상대비자원관리법과 비상대비자원관리법 시행령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국토교통부는 효율적인 비상 대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민간인의 차량 중 물적자원으로 활용할 차량을 지정 및 관리한다. 물적 자원으로 지정된 차량 소유주에게 그에 따른 임무를 기재한 고지서(중점관리대상물자지정 및 임무고지서)를 송달하게 되는데, 이 업무는 국민안전처가 담당한다. 또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국토교통부는 물적 자원으로 지정된 차량을 국방부에 지원해준다. 동원예비군과 민방위대 등의 인력 자원도 위 법안에 의해 지정 및 운용된다.
관련 법안에는 물적 자원으로 지정되는 차량의 종류, 연식, 규격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국가가 비상사태 발생 시 SUV 차량을 징발한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긴 하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사 기밀이라 구체적인 법안에 대해 밝힐 수는 없지만 전시와 관련된 법안이 한 가지 더 있다”며 “이 법안에는 필요한 물적 자원의 세부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SUV 차량이 국가의 물적 자원으로 쓰인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징발’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SUV, 트럭, 버스 등의 특수목적 차량을 물적 자원으로 지정되며, 멸실이나 훼손될 경우 실비 변상 및 전시 보상이 이뤄진다. 따라서 국방부가 물적 자원 지정 차량을 징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교통부에 의해 ‘동원’된다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 또한 중점관리대상물자지정 및 임무고지서를 받은 차량만 동원 대상이 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모든 특수목적 차량이 동원되는 게 아니다. 일부 차량에 국한되며, 국민안전처가 차량 소유주에게 사전에 임무를 고지하고 있다”며 “험지 이동이 가능하고, 군인과 전쟁 물자의 운반이 가능하면서 잔고장이 비교적 적은 편인,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차 위주로 지정되고 1년에 한 번씩 지정 대상 차량이 변경된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측에 전시 물적 자원으로 지정된 차량의 수치와 차종별 비율 등을 문의했으나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보유한 차량이 부족하다 보니 전시 관련 법안에 따라 민간인의 차량이 병력 및 물자 수송 목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라며 “군사 기밀 유지를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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