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함께 약물 복용? 경찰의 관리 소홀? 상태 과장한 의료진?…의문점만 늘어
폭풍 속 중심에 선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이자 배우 탑(30·본명 최승현)의 이야기다. 오는 29일 예정된 마약 혐의 첫 재판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해야 하는 탑에게 이번 응급실행은 건강을 되찾으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응급실행에는 여전히 남겨진 의혹은 많다. <일요신문>이 그의 주치의의 브리핑과 경찰, 그리고 소속사의 주장과 증언을 통해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세 가지 의혹들을 짚어봤다.
탑이 6일부터 9일 오전까지 입원해있던 이대목동병원의 응급중환자실의 모습.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 탑이 복용한 약물은 ‘술’과 복용하면 호흡부전 올 수 있어
지난 7일, 탑이 입원한 이대목동병원 측은 언론브리핑을 통해 탑의 상태를 두고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 과량 복용으로 인한 저산소증·고이산화탄소증에 따른 딥 드로우지(Deep Drowsy, 기면 상태) 또는 스투퍼(Stupor, 혼미) 상태”라고 밝혔다. 환자의 의식수준상태 5단계 가운데 각각 2단계와 3단계로 분류되는 이 상태는 의식이 온전하지는 않으나 이로 인해 아주 심각한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의료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날 의료진들은 탑이 얼마나 많은 양의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약물검사를 통해 벤조디아제핀 성분을 검출해 냈다고 밝혔다. 벤조디아제핀은 비교적 적은 양으로 효과를 볼 수 있고 다른 수면제 또는 신경안정제에 비해 안전하다는 점이 검증돼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된다.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제공되는 경구형 의약품의 경우는 그 안정성이 더욱 보장돼 있다.
그런데 탑은 그 안전하다는 약물을 복용하고 의식 불명의 상태로 발견됐다. 타 약물과의 혼합, 이른바 ‘칵테일 요법’ 부작용으로 인한 의식 불명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의료진들은 “11가지 약물반응 검사를 했는데 벤조디아제핀 외에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벤조디아제핀은 아편, 대마 등 다른 향정신성의약품과 함께 복용할 경우 위험성이 높아지는데, 체내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벤조디아제핀만 복용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은 의식 불명에 이르렀다.
의료관계자들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단일 복용했을 때 위험에 빠질 가능성으로 술을 지목했다. 벤조디아제핀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데 술 역시 이와 동일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벤조디아제핀 단일로 복용했을 경우에는 위험성이 낮지만 술과 함께 복용했다면 중추신경계가 강하게 억제되면서 호흡근육의 움직임에까지 작용해 무호흡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실제로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된 탑에 대한 의료진들의 “저산소증, 고이산화탄소증”이라는 진단은 호흡부전에 대한 것이다. 약 복용 후 수면하면서 호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탑이 소속된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 측에 따르면 탑은 사건 발생 전날인 5일, 4기동단으로 전출된 뒤 중대장 면담과 부대내 심리상담관과의 상담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증상만 놓고 볼 땐 5일 밤 탑이 4기동단에서 누군가와 함께 술을 마신 뒤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4기동단 측은 “탑이 5일 밤 음주를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혀왔다.
더욱이 탑은 지난 2008년 술과 함께 ‘감기약’을 복용했다가 실신해서 응급실에 간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탑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도 처방받아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사건의 흐름이 9년 전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번 응급실행을 두고도 음주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탑은 평소 술을 즐기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08년에도 생일이라 지인들과 소량의 술을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정상 처방받은 자기 약인데 뭐” 확인도 안한 경찰
음주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남은 것은 탑이 의식 불명 상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양의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의무경찰 신분인 탑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약물을 소지하고 있었느냐가 의문으로 남는다. 벤조디아제핀이 안정성이 보장된 약이라고는 하지만, 신경계통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부작용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 때문에 처방을 받더라도 처방 이유와 제공된 약물의 양 등은 국가 관리 하의 마약류 DB에 기록된다.
탑은 입대 전부터 서울 서초구의 한 정신의학과 병원에서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받아왔으며, 이는 경찰 측도 인지하고 있었다. 입대 후 환경의 특성상 번번이 외출해서 담당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약을 조금 넉넉히 처방받았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따라 정확한 양은 파악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재 탑이 소속된 4기동단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기동단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탑이)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어떤 약이고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우리로선 모른다”고 답했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신경억제 계통의 약물이 부대 내로 반입됐음에도 이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 측은 이를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4기동단 관계자는 “부대원이 감기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그걸 일일이 관리하지는 않지 않나. 개인 약이라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 부분 역시 의무 경찰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입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문제 대원’이었다고는 하지만 경찰의 이 같은 태도는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일 수밖에 없다. 당초 경찰은 탑의 상태에 대해 “꼬집거나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하는 등 완전한 의식 불명 상태가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라며 사건을 축소시키는 듯한 발언을 해 탑의 어머니에게 강도 높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의료진들의 브리핑을 통해 단순 수면이 아니라 의식 불명이 맞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원 관리 소홀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 같은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이례적인 병원 브리핑, 왜 강행됐나?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병원이 직접 주치의부터 다른 과 전문의들까지 나서서 언론 브리핑을 연 것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기소된 직후 벌어진 사건이어서 ‘자살 시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기 때문에 병원 측의 이런 행동은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일반적으로 유명인의 자살 또는 자살미수와 관련된 사건에서 병원은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날 브리핑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경찰 측의 주장을 전면으로 반박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미 YG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약물 사건으로 곱지 않은 세간의 눈초리를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여기에 최근 탑의 대마초 흡연 사건이 터지면서 YG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응급실에 실려간 직후 가족과 YG를 통해 상태가 심각하다고 알려졌지만 몇 시간 뒤 경찰이 “의식을 완전히 잃은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고 밝히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더욱 들끓었다.
여기에 어머니가 나섰다. 탑의 어머니는 7일 오전 직접 경찰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아들이 다 죽어간다. 병원 측에 따르면 상태가 심각하고 뇌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경찰은 왜 다른 말을 하느냐”며 눈물을 보였다. 함께 면회를 왔던 4기동단 중대장에게 직접 따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YG도 어머니에게 힘을 보탰다. “어머님이 ‘(발견 당시) 의식이 있었다’고 한 경찰의 말에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다. 탑은 산소마스크를 끼고 의식이 없는 상태”라며 탑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7일 오후 7시 마지막 면회 시간에 탑의 어머니가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이대목동병원 응급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김태원 기자
결국 탑은 브리핑 이튿날인 8일 의식을 회복했다. 이튿날인 9일 오후에는 비교적 또렷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던 취재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만을 남긴 채 중환자실에서 퇴실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이나 어머니의 우려와 달리가 빠른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탑의 회복세는 “하루 이틀 지나 몸에서 약 성분이 모두 빠지면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다”던 경찰 측 입장에 더욱 가까웠다.
한편 탑은 오는 29일 마약 혐의와 관련한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탑의 상태에 따라 이 재판에 출석할 수 있을지, 재판 기일을 연기할 수 있을지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병원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탑의 상태가 매우 심각했고, 후유증까지 우려될 수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됐으니 이를 감안해 재판 일정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다.
한편 탑은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새로 이송된 병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이대목동병원을 떠났다. 1인 병실이 있는 해당 병원에서 재판 전까지 계속 진료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