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이미지 벗기·친박 아우르기 나서…‘바른정당 흡수 뒤 대권 차지’ 큰 그림
홍준표 대표가 7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 홍 트럼프 맞아?
홍 대표는 국회의원·광역단체장을 거치는 정치 인생 속에서는 물론, 지난 대선 때도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막말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다. 뿐만 아니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마치 하대하는 듯 반말투를 보이는 것도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불쾌해하는 점이다. 국회의원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한 정치인은 홍 대표가 거침 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홍 트럼프’로 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홍 대표가 예전에 국회의원 할 때는 이따금 그런 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요즘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남도지사를 하면서 사람이 좀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광역단체장에 대한 의전 탓으로 생각된다. 국회의원이야 보좌관 몇 명 데리고 의정활동을 하지만 광역단체장은 도청 공무원들에다 출자·출연기관 직원까지 더하면 수가 엄청나다. 이런 의전을 받다보니 막말이나 고압적 자세가 더 심해진 것 같다. (홍 대표를) 오랫동안 지켜봐왔지만 알려진 것하고는 다르게 격의 없고 남의 말도 귀 기울여 열심히 듣는 좋은 정치인이다.“
다선 국회의원 출신의 한 원로 정치인도 “지난 대선에서 보수표가 결집할 수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크게 패한 것은 보수의 기질을 홍 대표가 오판했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 정치인들처럼 입이 가볍거나 행동이 경솔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보수다. 보수는 점잖아야 한다. 그 속에서 위엄을 뿜는 것이 보수다. 그래서 보수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막말은 보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보수의 명예를 떨어뜨린다. 막말이나 반말은 점잖은 보수층으로 하여금 큰 실망감을 준다”라고도 했다. 홍 대표의 ‘막말’을 꼬집은 셈이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부드럽고 유연하며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말을 인용해 “좀 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상대방 가슴에 못 박는 얘기는 가능하면 삼가 달라”고 홍 대표에게 직접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예전에 페이스북에 올리듯이 국민이 듣기에 거북스러운 말씀을 계속한다면 당은 굉장히 어려움에 있을 것이다”, “혀로는 사람의 마음을 벨 수 있다”며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표현했다.
당 안팎에서 비롯해 이런 말들이 나와서일까. 홍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일단 말을 아끼고 있다. 회의 주재를 할 때도 그렇고 페이스북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 주재 때도 대표 의견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가급적 삼가고 회의 진행자로서의 역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6일엔 ‘비판 자제 선언’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방문 기간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홍 대표는 “이게 예의에 맞다.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자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 친정체제 구축, 과거 아픈 기억 때문?
홍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당이 바뀌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하게 조직이 움직여야 하고, 대표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조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홍 대표는 6일 당직 인선을 통해 지난 대선 기간 자신을 도운 측근 그룹을 대거 발탁했다. 친박근혜(친박)계는 단 한 명도 주요 당직을 맡지 못했다.
우선 전략기획부총장으로 임명된 김명연 의원은 대선 기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으로 홍 대표를 수행했다. 대변인으로 임명된 강효상 의원은 미디어본부장을 맡아 홍 대표의 TV토론을 책임졌고, 전희경 의원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다. 무엇보다 홍 대표의 최측근으로 대선 후보 수행단장을 역임한 김대식 동서대 교수가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게 됐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홍문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서용교 전 의원을 조직부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특이한 대목이다. 바른정당에 합류했다가 한국당으로 복당한 홍 의원이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는 것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홍 대표의 ‘아픈 기억’이 이번 인사에 반영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홍 대표는 그해 7월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됐지만 각각 다른 계파의 지원을 받고 있던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 등으로부터 세력을 얻지 못해 당 운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직 인선에서도 당시 홍 대표는 진땀을 뺐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홍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다 ‘디도스 사건’ 등이 겹치면서 선출 5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2011년과 달리 홍 대표가 별다른 충돌 없이 친정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 대표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당헌·당규도 한몫했다. 2011년 당시에는 당직 인선을 하려면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지만, 현재는 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협의만 거치면 되기 때문이다. 일단 큰 잡음은 없지만 적잖은 의원들이 홍 대표의 인사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독불장군 인사’라는 것이다.
김태흠 의원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요즘 밖에서 홍 대표의 문고리 3인방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알고 있나. 최고위원, 여의도연구원장 등의 자리에 자기 사람만 심는 인사가 어디 있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이 당헌·당규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규에 여의도연구원장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추경호 전 원장이 4개월 만에 중도하차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흡수 시도 언제쯤
홍 대표는 당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마이너스’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박 청산 등 인위적인 특정 세력 잘라내기는 시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철우 최고위원은 “지역구민이 뽑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을 아무리 당 대표라고 해서 나가라 할 수 있나. 그럴 수는 없다. 홍 대표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친박 청산 등을 내세워 의원들을 당에서 나가라고 하는 말은 홍 대표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도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선출직 청산은 국민이 한다. 소위 핵심 친박들은 당 전면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1월 초부터 운영해 친박이 장악한 당에서 내가 72.7%를 득표했다. 이미 친박 정당이 아니다. 새로운 한국당의 구성원으로서 전부 함께 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우선은 당의 세 불리기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친박도 일단 홍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친박 좌장으로 통했고 아직도 세력을 무시 못 한다는 평가를 받는 최경환 의원은 5일 최고위원과 중진의원 간 상견례를 겸한 연석회의에서 “‘영라이트 운동’을 벌여 지지층을 젊은층으로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홍 대표가 당을 두루두루 아울러줄 것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을 아우른 홍 대표는 다음 목표로 바른정당 흡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당직 인선에서도 이런 ‘수’가 읽힌다. 홍 대표는 바른정당과 관련해서 ”바른정당도 어차피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한국당에) 흡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대표 취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바른정당을 흡수해 지방선거를 보수 대 진보의 양당 대결로 치르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홍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차기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는 것이다. 홍 대표가 6월 28일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정치 인생 마무리를 대구에서 하고 싶다”고 밝힌 것도 보수의 심장이자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사실상의 고향 대구를 기반으로 또 한 번의 보수 정권 창출 주역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홍 대표는 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딱딱하고 관료 냄새 풍기지 않는 이른바 ‘재미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단기 목표를 세웠다. 청년과 여성의 관심을 끌어오는 방법으로 보수의 변신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