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대표 ‘자기정치’ 86그룹 ‘세력화’ 등 하반기 당내 권력구도 주목
추경 정국에서 사실상 패자로 전락한 민주당 투톱의 순항 여부는 문재인 정부 1년차 하반기 정국 주도권의 분수령이다. 또한 추 대표의 ‘자기 정치’, 신주류로 부상한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 그룹의 위상 강화 등 민주당 내부 권력구도와도 직결한 문제다. 경우에 따라 내년 6·13 지방선거 앞두고 펼쳐질 여의도발 새판 짜기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추경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26명이 본회의에 불참한 사태와 관련,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발언하고 있다. 추 대표 옆은 우원식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터질 게 터졌다.”
‘추미애 vs 우원식’ 내전을 본 여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들의 승부는 추 대표가 먼저 패하고 막판 우 원내대표가 되치기를 당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1승 1패다. 추 대표는 국민의당이 대선 조작 게이트를 ‘이유미(당원) 단독 범행’으로 종결짓자,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를 향해 “꼬리 자르기가 아닌 머리 자르기”,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형사책임”, “침묵은 짧을수록 좋다”라며 연일 돌출 발언을 했다.
우 원내대표 측은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이 장기간 묶인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에 맹폭격을 가하자, 원내에서는 추 대표를 향해 “여당 내 야당”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핵심 관계자는 투톱 간 역할 분담론에 대해 “메시지 조율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당 대응 방침 기조는 의견을 나눴지만, ‘머리 자르기’ 등 돌출 발언에 대한 조율은 없었다는 얘기다.
추미애 발 파장은 정국을 일시에 덮쳤다. 청와대는 ‘추미애 패싱’으로 86그룹 신주류 우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추 대표는 정권 출범 초반 당·청 관계를 놓고 충돌했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리 사과로 ‘고립무원’ 처지로 전락했다. 반면, 우 원내대표는 대치 정국의 정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2∼3일의 시간을 달라”며 야당 설득에 나섰다. 우 원내대표의 시간벌기는 야권의 표적 대상자였던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끌어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시 “추 대표가 내상을 입은 것과는 달리, 우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야당의 가교 역할을 통해 입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1승 구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 원내대표는 7월 22일 추경 본회의 처리 때 1패를 내줬다. 자신이 주도한 추경 마지막 퍼즐 맞추기에서 삐끗한 것이다. “추경 반대는 문 대통령 흔들기”라던 민주당은 정작 본회의 표결 때 소속 의원 26명이 불참하는 사태를 맞았다. 민주당(120석)과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 의석수는 180석이지만, 본회의 개의에 4명이 부족한 사태를 맞으면서 자유한국당에 SOS를 보내야 했다.
‘추경 반대’ 선봉장인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가 막판 본회의에 참석, 개의 정족수를 채웠다. 친문(친문재인) 지지자 사이에선 “우원식 무능”, “적폐세력과 뒷거래”, “우원식 정계은퇴” 등의 말이 쏟아졌다. 우 원내대표는 7월 22일과 23일 주말 사이 친문 지지자로 추정되는 불특정 다수에게 비난성 문자폭탄을 받았다. 민주당 원내대표단 내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당에 긴급 수혈을 요청한 결정적 원인은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동에서 본회의 참석을 약속한 한국당이 돌연 불참으로 선회한 일종의 ‘약속 파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 토론 후 표결 불참’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는 점에서 우 원내대표의 전략 부재라는 지적이 많다.
이들의 기 싸움은 추경 통과 이후에도 계속됐다. 추 대표는 7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추경과 관련해 “야당의 반대로 중앙직 공무원 일자리가 사실상 반 토막 됐다”고 말했다. 추 대표가 책임론 주체를 야당으로 못 박았지만, 우 원내대표는 다음 날 “당 내외에서 (통과한 추경을) 반 토막, 누더기라고 폄훼하는 분들이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협상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모욕감마저 느낀다”고 반박했다. 당 안팎에선 “우 원내대표가 작심하고 추 대표를 비판한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둘은 추경 통과 홍보 플래카드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우 원내대표 측은 당의 적극적 홍보를 주장한 반면, 추 대표 측은 “26명 불참으로 당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라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추 대표와 우 원내대표의 갈등은 민주당 몫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선정 몫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통상적으로 원내대표가 판을 짰던 위원 선정에 추 대표가 개입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추경 정국의 패자는 민주당이지만, 가장 큰 피해는 국민이 보고 있는 꼴”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 원내대표가 되치기를 당하면서 ‘추미애 vs 우원식’ 주도권 싸움은 1승 1패가 됐다.
‘패싱 반전’을 꾀한 추 대표는 기세를 몰아 증세 정국을 주도했다. 문 대통령이 5개년 100대 과제에서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유지한 지 이틀 만에 추 대표는 법인세·소득세 증세안을 청와대에 요구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국무위원이 불을 지핀 ‘증세 카드’를 추 대표가 총대를 메고 선봉장에 섰다. 여당 내부에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답다”는 말이 나왔다. 이를 본 야권 관계자들은 “짜인 각본에 따른 시나리오에 몸을 맞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도, 추 대표의 증세안은 당·정·청 조율 끝에 나온 작품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당·청 갈등의 논란을 씻을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한 셈이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변수는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다. 시나리오는 현재와 같이 지지도가 고공행진일 때와 50∼60%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두 사람의 운명 등 4가지로 나뉜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내년 6·13 지방선거 국면까지 70∼80%대를 기록한다면, 두 사람의 갈등은 강도와 종류 등에 관계없이 ‘봉합’될 수밖에 없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인 추 대표는 문 대통령에 공조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최대 친문 지지-최소 친문 비토 무력화’ 전략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과의 이른바 ‘전략적 동거체제’ 유지다. 우 원내대표 역시 추 대표가 돌출 발언 등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86그룹의 정치세력화는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과 일치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고공행진 지지도의 ‘밑돌’이 빠졌을 때다. 이 경우 추 대표는 ‘자기 정치’에 재시동을 걸면서 당·청 갈등의 중심에 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당 내부에서 비문(비문재인)계 비판 목소리 제기→추 대표 동조→당·청 및 당 내부 알력 다툼’ 시나리오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할 경우 추 대표가 전면적으로 나서서 청와대 등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6·13 지방선거와 맞물려 당이 권력투쟁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86그룹의 앞날도 ‘먹구름’, 그 자체다. 공동 운명체로 묶여서다. 86그룹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신주류로 부상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필두로 86그룹이 청와대로 대거 포진했다. 당 권력구도의 핵심축으로도 부상했다. 문 대통령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지는 순간, 86그룹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86그룹은 대통령 지지도가 높으면 ‘호위무사’ 전락, 낮으면 ‘공동 책임론’에 처하는 운명이다. 전 평론가는 “문 대통령과 86그룹은 전체가 한 묶음으로 평가받지, 따로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때문에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할수록 86그룹이 대안세력으로 떠오를 자체적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
국회·청와대 여름휴가 양극화…보좌관들 ‘우린 부러워 할 뿐이고…’ “여름휴가요? 그게 뭔가요…”(15년차 국회 보좌관). 양극화는 소득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름휴가도 극과 극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름휴가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졌다. 대선 공약으로 ‘휴가 있는 삶’을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차 쓰는 대통령을 약속했다. 지난 6월 28일 미국 순방차 오른 대통령 전용기에서도 “연차 휴가를 다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옆에 있던 권혁기 청와대 춘추관장 등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15조에 따르면 6년 이상(19대 국회 4년+참여정부 비서실장 등) 재직한 문 대통령의 연차 수는 법적 최대치인 21일이다.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각 부처 장관 및 공무원들도 모처럼 장기 휴식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은 7월 11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장관과 공무원들도 휴가를 다 쓰라”고 지시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즉각 청와대 직원들에게 ‘여름휴가 5일 이상-연차 휴가 모두 소진’이란 특명을 내렸다. 여의도 국회 분위기는 다소 침울하다. 매년 공채를 통해 들어온 국회직 공무원과는 달리, 국회 의원회관에 상주하는 의원실 보좌관들은 여름휴가 시즌만 되면 노심초사한다. 각 당과 의원실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여의도에 발이 묶인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이는 ‘국회의원의 특수성’과 무관치 않다.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은 연차를 내도 결재권자가 없다. 그렇다고 못 쉬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영감(보좌관들이 국회의원을 부르는 은어) 마음대로 쓸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휴가가 회사처럼 윗선 결재를 받은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보좌관들의 휴가도 ‘고무줄 잣대’로 결정되기 일쑤다. 보좌관들이 여름휴가 때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어디야?”다. 보좌관들이 의원들의 전화에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여의도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의원실 인원수는 보좌관 2명(4급), 비서관 2명(5급) 등과 무급 인턴까지 합해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전 당직자는 “의원실은 일종의 소기업 형태”라며 “차라리 당직자가 낫다. 다들 번아웃 증후군(정신적·신체적 피로 등으로 인해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심리)”이라고 말했다. 8월 27일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당은 아예 휴가를 반납할 처지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도전에 나선 측근들은 물론, 중앙당에도 비상이 켜졌다. 당이나 의원실에서 여름휴가를 못 가게 하지는 않지만, 전대 준비하는 와중에 홀로 휴가를 가기가 쉽지 않다. 불똥은 국회 대관 업무를 맡은 기업체 직원들에게도 튀었다. 이들은 대다수 가을 이후로 휴가를 미뤘다. 유통업체 한 대관업무 직원은 “국회에 파견 나온 지 몇 달 안 됐다”라며 “국정감사 업무 파악 때문에 여름휴가를 못 쓸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듭된 여름휴가 질문에 “여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실 보좌관들이 만나주지를 않는다”라며 “윗선에 보고해야 하는데…”라며 국회 의원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