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재벌 사모님·재계 3세 등 모임 참여…“롯데 비토하는 분위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감사원이 7월 11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관세청은 2015년 7월과 11월 두 차례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롯데에 불리하게 점수를 산정,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관세청은 롯데가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점수를 부당하게 낮추는 방식으로 순위를 떨어트렸다. 그 결과 2015년 7월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호텔롯데를 제치고 신규 면세점으로 선정됐다. 11월엔 롯데월드타워점이 두산에 밀려 재승인을 받지 못했다.
또 감사원은 2015년 12월 박 전 대통령이 경제수석실에 서울 시내면세점을 늘리라고 지시하자 관세청이 기초자료를 왜곡하면서까지 이를 이행했다고도 밝혔다. 검찰과 특검은 롯데와 SK가 로비를 벌여 추가 면세점 입찰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인 바 있다. 감사원은 면세점 심사 자료를 파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천홍욱 관세청장과 2015년 심사를 담당했던 관세청 전·현 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 사건을 특수 1부에 배당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이원석 부장검사가 이끄는 곳이다. 검찰이 면세점 비리 사건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예전 수사가 면세점 탈락 업체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다시 입찰 기회를 받았느냐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왜 롯데가 부당하게 탈락했는지를 살펴보는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발표에 이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롯데 내엔 복잡한 기류가 흐른다. 우선 그룹에 큰 피해를 줬던 면세점 탈락이 정치적 이유에서 결정됐다는 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홍균 전 롯데면세점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업권 재승인에 실패한 뒤 내부에선 ‘정부 결정을 믿고, 내부에서 실패 원인을 찾아보자’고 노력했는데, 결국 우리가 정부에 속았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면서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분통이 터진다. 개인적으로는 민사소송이라도 제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다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도 롯데로서는 부담스럽다. 롯데의 한 임원은 “신 회장이 뇌물죄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 게 시급한 상황인데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은 향후 재판에서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탈락한 롯데 측이 뇌물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 했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우리가 피해를 보긴 했지만 검찰이 면세점 비리 수사를 확대할 경우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1차 목표는 롯데 면세점 탈락에 누가, 어떤 이유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얘기다.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롯데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물증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8월 경제수석실에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기업 독과점규제 방안을 마련하라”며 롯데에 불리한 지시를 내린 데 이어, 관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엔 “롯데에 강한 ‘워닝(경고)’을 보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선정 심사를 앞두고 롯데를 ‘콕’ 집어 탈락하도록 외압을 넣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2015년 두 차례 면세점 심사에서 고배를 마신 뒤 2016년엔 4개월가량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총수 일가 및 계열사 비리들에 대해 3개 특수부를 동원,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과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 등은 손도 대지 못하는 등 초라한 결과물을 냈다. ‘반쪽 수사’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고, 검찰 내부에선 ‘정권 차원의 하명으로 시작된, 무리한 수사’라는 자성이 들렸다.
이처럼 롯데가 박 전 대통령에 밉보인 이유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여러 얘기가 나온다. 특히 롯데가 ‘친 MB 기업’으로 꼽히며 승승장구했다는 것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태생적으로 박근혜 정권과 섞일 수 없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친이계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롯데, 효성, 포스코 등이 사정 대상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파다했었다.
이에 대해 친박 관계자들은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았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던 한 중진급 의원과 롯데 간 친분을 거론하는 인사들도 상당수였다. 한 친박 의원은 “롯데는 친이뿐 아니라 우리 쪽과도 관계가 좋은 그룹이다. 롯데 측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도 꽤 될 것”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도 부친과 신격호 회장이 가까웠는데 롯데를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라고 물었다. 박 전 대통령의 원로 멘토 인사 역시 “롯데가 친 MB 기업이란 이유로 수사선상에 포함될 것이란 말이 돌았을 때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정권 초 박 전 대통령과 롯데 사이는 오히려 돈독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박 전 대통령 모습은 분명히 롯데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롯데에 대한 박 전 대통령 스탠스가 변하게 된 이유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을 포착했다. 여기에도 최순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최순실과 재벌가 여성들 모임에서 롯데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강했고, 이것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됐다는 게 골자다. 이 모임엔 최순실을 비롯해 유력 재벌 사모님, 그리고 재계 3세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와 면세점을 놓고 경쟁했던 대기업 일원도 포함돼 있다.
이 만남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참석자는 “면세점 선정은 우리에게도 가장 큰 이슈였었다. 왜냐하면 면세점 입찰에 뛰어든 총수 일가도 모임에 나왔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롯데에 대해선 좋지 않은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면서 “최순실도 마찬가지였다. 최순실이 ‘롯데처럼 비도덕적이고 국민들 지탄을 받는 기업이 면세점을 따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한 것을 들었다. 이런 대화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로까지 전해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면세점 심사 결과, 그리고 그 후에 터진 국정농단 사건을 지켜보면서 최순실이 움직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도 이 모임에 대한 첩보가 입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자주 어울려 다니는 강남 고급 음식점 등에 대해 탐문이 이뤄졌고, 모임 참석자 일부에 대해선 내사가 진행됐다. 최순실과 기업 간 검은 커넥션에 대해 수사를 벌였던 것이다. 특검 전직 관계자는 “일부 재벌가 사모님들이 막후 실세로 소문나 있던 최순실과 가깝게 지냈던 것은 맞다. 이들은 자주 만나며 친분을 다졌다. 최순실이 모임에 참석했던 여성이 속한 기업에 특혜를 줬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그 모임에 구성원들 면면을 살펴보면 롯데에 불리할 것이라고 추정할 순 있었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과 가깝게 지냈던 한 사업가 역시 “(최순실이) 면세점 심사 발표 전에 롯데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엄청난 이슈였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설마 했는데 말한 대로 됐다. 그래서 농담 삼아 ‘주식이라도 사둘걸’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앞서의 모임 참석자 역시 “심사 발표 후 가진 첫 모임은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 이후 다들 최순실에게 잘 보이려 눈치싸움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면세점 비리 수사는 ‘국정농단 2라운드’ 성격이 짙다.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관련 지시를 내릴 때 최순실 의견을 참고했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면세점 수사는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2015~2016년에 걸친 면세점 입찰 비리에 얽히고설킨 대기업들 대부분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최순실과 재벌가 여성들 모임은 향후 수사 및 재판에서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