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미안해.
오늘 너와 같은 반이었던 동급생 15명이랑 그 아이들 부모님이 너 조문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 진심이 담긴 사과 편지도 손에 다들 들고 왔다 더라. 널 괴롭힌 사람이긴 하지만 진짜 반성한다면 용서해줘도 좋을 것 같아. 승민이는 착하니까. 그렇게 아플 때도 아빠 걱정할까 봐 속으로 끙끙 앓던 아이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삼촌은 어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가해학생에게 경위서를 두 장 쓰게 해서 조작한 한 장은 상부 보고용으로 제출하고 진실이 담긴 한 장을 폐기한 학교 사람들은 용서가 안 된다. 네가 학교폭력으로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아이들 모아놓고 “승민이 우울증 약 안 먹어서 죽었다”고 말한 교사들도 그냥 놔둘 수가 없다. 제발 좀 만나달라는 네 목소리를 무시한 경찰도 난 그냥 놔두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 한 번 듣지 않고 열려 버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내린 자치위원회의 결론을 그대로 인정해 재심을 기각한 울산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지역위원회는 “학교폭력 맞아요. 말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가해학생의 증언조차 무시했더라. 학교폭력 아니었대. 가해학생이 인정하고 자책하는데도 어른들은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대. 추가 유서가 나오니까 “그 유서를 왜 이제 보여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 어른들. 난 도저히 이 사람들을 가만 둘 수가 없네.
그런데 승민아. 정말 미안해. 공부 못했던 삼촌이라 미안해. 공부를 조금 더 잘했다면, 만약 내가 검사였다면, 아니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널 그렇게 만든 사람 많이 혼내줬을 거야. 삼촌이 게을러서, 머리가 나빠서 그럴 능력이 부족해서 정말 미안해. 이제 사법고시도 없어져서 그런 사람들 직접 혼내려면 법학전문대학원 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삼촌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학점도 안 좋아서 거의 불가능이야.
승민아. 그래도 내가 하나 약속할게. 다른 기자 삼촌, 이모들이 너 같은 아이 이야기 대충 듣고 짧은 기사 써 낼 때 조금 더 들여다 보고 조금 더 뛸게. 경찰서도 가고 교육청도 가고 학교도 가고 하면서 정말 다 돌아 다녀 볼게. 하나씩 숨겨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또 파고 또 파서 또 다른 피해가 어른들에게서 나오지 않도록 해볼게. 머리는 나쁜 삼촌이지만 부지런한 삼촌이 돼 볼게.
지난 14일 울산 울주군에서도 또 한 명이 하늘나라에 갔대.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어. 8월에 열린대. 경찰 수사하느라 위원회가 늦게 열린대. 법에서 14일 안에 열라고 하는데 어른들끼리 말이 잘 안 통하나 봐. 기다려 보는 중이야. 또 가야 할지도 몰라.
울산은 참 멀어. 천리길이더라고. KTX 타고 도착해서 작은 차 빌려야지 시내까지 갈 수 있어. 그래도 또 가야 한다면 가볼게. 그래야 그 친구도 한이 풀려 승민이랑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삼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야. 둘이 서로 잘 지내면서 나 소풍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줘. 나중에 보면 꼭 인사하자. 승민이가 좋아했던 게임 잔뜩 넣은 휴대전화 꼭 챙겨 갈게.
훈민 삼촌 씀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