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호출에 ‘두문불출’…위기를 기회로 바꿀 노림수 있나
지난해 12월 최순실게이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간담회에 초대된 기업 중 삼성, 현대차, LG,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한진, 한화는 총수가 불참했다. 그러나 현대차, LG, 신세계, CJ, 한진은 총수 일가가 참석했고,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 중인 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 중이라 전문경영인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리를 메웠다.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대주주를 대신해 경영을 맡고 있는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이 참석했다. 정 이사장은 정계 입문 이후 30년 가까이 회사 경영과 거리를 두고 있다. 사실상 부득이한 사유 없이 간담회에 불참한 총수는 김 회장이 유일한 셈이다.
김 회장의 불참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재판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참석과 비교되면서 더 큰 궁금증을 낳는다. 재계 일각에선 “김 회장이 간담회 참석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지만 그룹 ‘2인자’인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부회장)과 논의 끝에 불참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화 경영기획실은 이제는 해체된 삼성 미래전략실과 같이 그룹 대외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앞서 김 회장은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도 동행하지 않으면서 재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손꼽히는 ‘미국통’인 김 회장은 국내 기업인 가운데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됐다. 또 문 대통령의 방미를 한 달 앞두고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 회장과 환담을 가졌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인맥이 넓어 활용가치가 높은 김 회장을 정부가 데려가지 않은 건 여러 모로 미스터리”라며 “청와대가 ‘어떤 문제’로 껄끄러움을 느껴 부르지 않았을 가능성과 김 회장 스스로 불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면세점이나 방산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이 한화로선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화는 현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 내부거래 사실이 적발됐고, 면세점 인허가 특혜 의혹 등에 휩싸이며 2019년 만료인 특허권을 자진 반납했다. 또 방산 비리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주요 주주이자 이사회 핵심 일원으로서 수사 확대 시 사정당국의 ‘타깃’이 될 여지가 있다. KAI 내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화가 카이 인수를 시도했지만 당장 여윳돈이 없어 계약이 뒤로 밀렸다”며 “만약 카이가 넘어갔다면 한화는 거대 방산업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기업인들과 호프미팅을 가졌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이 자리에 불참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반면 한화는 진행 중인 방산 비리 수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화 관계자는 “방산 비리는 대부분 해외 무기 도입 과정에서 벌어지는데, 우리(한화)는 방위사업청의 의뢰를 받아 국내에서 무기를 제조·납품하는 회사”라며 “방산 비리 연루설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초청 행사에 오너가 잇달아 불참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와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경영 현안에 밝은 전문경영인이 참석해 논의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 회장을 대신해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금춘수 부회장은 문 대통령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한화가 태양광 신재생에너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관심을 보였고, 금 부회장은 “입지 조건을 완화시켜달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탈원전 정책을 중점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로선 한화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7%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화도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올해로 37년째 그룹 총수를 맡고 있는 김 회장은 세 아들을 위한 경영권 승계를 준비 중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한화는 내부 거래를 통해 오너 가족 회사인 한화 S&C를 성장시켰다. 세전이익만 3000억 원에 달하는 한화 S&C가 매각되면 오너 일가는 수조 원의 ‘실탄’을 확보해 지주사 지분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인 금산분리 강화는 한화 S&C 매각과 지주사 금융 지분 해소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대기업에 날을 세웠던 초기와 달리 지금은 재벌을 무조건 개혁해야 된다고 보지 않는 기류가 형성됐다”고 했다.
방산 비리 수사로 시작된 국방개혁도 장기적으로는 한화에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자주국방에 필요한 방위력 증강을 위해 수차례 국방예산 증액을 공언했다. 국내 대표 방산업체인 한화는 그 수혜를 입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에 화답하듯 한화는 대통령간담회 직후 비정규직 8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재벌을 쉽게 손댈 수 없는 상황에서 한화의 ‘밀당’이 현재까진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