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국회 깜짝방문하며 개혁 현안엔 미온적 태도…딴 속셈 있나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첫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인사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문무일 검찰총장이 파격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 총장은 지난달 25일 검찰총장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나흘 만인 같은 달 28일 이철성 경찰청장을 만났다. 문 총장은 이날 경찰청에서 이 청장과 검찰과 경찰의 협업을 강화하자는 의견을 나눴고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의 경찰청 방문은 역대 최초다. 심지어 이번 방문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고 검찰 측이 먼저 방문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에 이어 국회를 방문하는 행보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3일 동안의 국회 방문 일정 동안 문 총장은 정세균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과 회동을 가지면서 검찰의 쇄신을 약속했다. 정치권에서 검찰개혁에 공감하고 있으며 국회 차원의 개혁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문 총장이 국회를 방문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 문 총장은 “내부적으로 제도가 변화하는지 잘 살피겠다. 변하고 또 변하겠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문 총장의 이번 국회 방문을 앞으로 진행될 검찰 개혁을 위해 정치권과 스킨십을 시도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문 총장은 그동안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검찰개혁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받아왔지만 이번 행보를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이어 검찰총장이 임명됐음에도 그동안 강조돼 왔던 검찰개혁에 드라이브가 걸리기보다는 3일이라는 시간을 국회 방문에 투자하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심지어 문 총장에게 향후 정계진출을 위한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청장과의 만남도 보여주기 식이었다는 비난이 잇따른다.
검찰개혁 과제로 주목받는 것은 크게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특수부 축소 등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내세웠던 공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적으로 가져야 수사의 주체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으며 검찰의 비리와 잘못을 제대로 수사할 주체가 생기게 된다”고 밝히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구조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청문회 기간 중 문 총장이 국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 ‘검사가 수사하지 않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이 공개됐다. 이에 여당 의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것인지를 질책하자 문 총장은 경찰에 수사권을 전부 넘겨주긴 힘들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찰 수사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고, 검찰이 보완 조사나 추가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 이어 문 총장은 ‘검찰 수사에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답했지만 당시 후보자였던 문 총장의 언급은 경찰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문 총장은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 총장이 국회를 방문한 지난 3일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나름 생각은 있지만 제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수처 신설을 검찰 개혁의 우선과제로 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 총장과 조 수석이 추구하는 검찰 개혁의 방향성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문 총장은 내부 쇄신을 통한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 조 수석 역시 검찰에 관여를 안 하겠다며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 아니고 정권의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의 상징인 특수부 역시 검찰 개혁의 시점에서 축소될 가능성이 커 보였지만 최근 현상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부 네 군데 중 한 군데가 일반 형사부로 바뀌고, 공안부도 축소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수부의 수사가 검찰 개혁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고위공직자와 대기업을 수사할 사안이 많아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 청산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문 총장이 과거 특수부 검사 출신이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특수통 출신인 문 총장이 검찰총장직에 임명되면서 친정인 특수부를 축소하는 것이 우선과제로 떠올랐었다. 그러나 특수부 축소가 무산되는 쪽으로 가닥 잡히면서 친정에 칼날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로 끝나버렸다.
검찰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문 총장의 미온적인 태도와 함께 신속한 검찰 개혁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 수석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검찰개혁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조 수석이 내년 부산시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부산시장 출마설’이 돌면서 검찰개혁에 더 힘이 빠지고 있는 모양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