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은 거짓으로 밝혀져, 기부도 유명세 통해 받은 돈 꽤 있어
오래된 격언이 들어맞는 모습이다. ‘청년 버핏’이라는 이름으로 화제를 모았던 경북대 재학 중인 박철상 씨의 말이 과장 혹은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400억 원대 자산을 모았고 수십억 원의 기부를 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지난 2016년 인터뷰에서 박철상 씨가 언론사에 제공한 사진.
박 씨가 처음 유명세를 탄 것은 대학생인 그가 2013년 모교인 경북대에 ‘정외과 장학기금’이란 이름으로 1억 원 상당 장학기금을 만들면서부터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경북대와 인터뷰를 갖는다. 언론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홍콩에 투자사를 설립하고, 200만 원으로 수백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한 주식투자 커뮤니티에 “저는 홍콩에 투자사를 설립한 적도, 200만 원으로 수백억 원을 벌어들인 적도 없습니다. 본문에서도 기사가 왜곡되었다는 말씀을 분명히 드렸습니다”라고 해명 글을 올렸다.
기사의 파장은 컸지만 상대적으로 해명은 작았다. 여러 신문에 보도된 인터뷰와 달리, 해명 글은 일부만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해명을 했다는 박 씨의 글과 달리 수백억 원대 부자, 400억 원대 투자가의 꼬리표는 떼어지지 않았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 씨는 2015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년 동안 3억 6000만 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대구에서 대학생 최초 아너소사이어티 타이틀로 또 다시 화제가 됐다. 언론에서는 그를 ‘투자의 신’ 워렌 버핏을 따 ‘청년 버핏’이라고 칭했다.
2016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계기로 이제까지 견지해온 ‘익명 모드’를 접었다. 제한적이나마 방송이나 매체 노출을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2016년을 기점으로 언론 노출은 점점 늘어났다. 그는 강연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강연에 노출될 때마다 박 씨는 오래 전 사실과 다르다고 했지만 매번 400억 자산가로 포장돼 있었다.
2017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기부도 늘려갔다.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9년간 기부한 자산이 20억이 넘는다고 밝혔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그는 14년째 경북대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다. 군대 기간을 감안하고라도 4년제 대학교를 14년째 다니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순항하던 박 씨는 최근 처음으로 큰 장애물을 만났다. 지난 3일 주식투자 전문가인 신준경 씨가 박 씨를 ‘저격’하고 나섰기 때문. 신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제로 400억 원을 주식으로 벌었다면 직접 계좌를 보게 해달라. (박 씨의) 말이 맞다면 원하는 단체에 현금 1억을 약정 없이 일시불로 기부하겠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공개적인 ‘1억 빵’ 내기는 SNS에서 화제가 됐다. 특히 신 씨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에 의혹을 제기해 그가 구속되는데 영향을 끼쳐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사진=신준경 씨 페이스북 캡처
신 씨는 기부도 실제 기부한 액수가 아닌 ‘약정’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약정만하고 내지 않는 경우는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 기부단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억을 10년에 걸쳐 내겠다고 약정만 하고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계약도 아니고 선의에 의한 약속이니 문제삼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신 씨 주장에 박 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군가가 저를 의심하거나 미워한다고 해도, ‘절대 어느 누구도 원망하거나 섭섭해 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다짐하며 살아왔다”면서 일방적 ‘난도질’에 비유했다. 그는 계좌 인증은 황당한 요구라면서 대신 국세청에서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행정자치부에선 ‘국민포장’ 수상을 제의해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신 씨는 계좌 인증 대신 어색한 해명을 한 박 씨를 향해 검증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신 씨는 계좌 내역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제시한 1억을 3억으로 올려 ‘베팅’했다. 이와 함께 기부했을 뿐 얻은 게 없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신 씨는 “아니 왜 생긴 게 없어. 어느 누가 GS칼텍스와 SKC회장의 초대를 받아서 독대를 할 수 있을까. 개미들 돈 끌어 모은 이희진과 달리 대기업 회장과 연이 닿았다. 400억을 주식으로 번 기부천사 이미지로 얻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생각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신 씨와 함께 박 씨 의혹을 제기한 주식전문가 최우혁 동부증권 차장은 “박 씨가 1주일에 1번 사모펀드 운용을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홍콩 투자회사로 출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 씨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확신했다. 아직 졸업도 안 한 학생을 취업과 함께 매주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는 회사는 없다”며 “홍콩 기금펀드와 국내펀드, 개인주식을 병행해서 운용했다는데 이는 이해상충금지규정 때문에 불법이다. 인터뷰에서 자랑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거짓임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박철상 씨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신 씨의 자극을 통해 크게 번질 것으로 보였던 ‘인증전’은 예상외로 허탈하게 마무리됐다. 박 씨가 자신의 치부를 공개하면서다. 한 투자커뮤니티 유명 유저 N 씨가 박 씨와의 대화를 공개했다. N 씨와의 대화에서 박 씨는 “주식투자로 번 돈은 수 억 원에 불과하다”며 “현재 24억 원을 기부한 것은 맞지만 그 중 10억 원은 자신의 기부철학에 동참한 몇몇 분들이 보내주신 돈을 자기 이름으로 기부했다. 현재 투자자금은 5억 정도다”라고 밝혔다. 200만 원으로 400억 원을 만든 ‘한국형 워렌 버핏’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박 씨는 신 씨와의 대화에서도 “자신은 400억 원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기자가 왜곡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소식에 해당 커뮤니티 또 다른 유저는 “이 문제는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답이 뻔한 문제였다. 그 어디에서도 박 씨의 주식투자 실적을 검증하지 않았고, 오직 본인의 말에만 의존해서 청년 버핏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며 “본인의 말 외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믿어서는 안 됐다. 박 씨 말에서 너무나 명백한 거짓이 새어나올 때 거짓임을 의심하는 게 완벽히 합리적인 생각이었다”며 언론과 SNS를 비판했다.
기자 탓만 하기에는 박 씨의 행적에 비판받을 구석이 꽤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면서도 대중을 향해 책을 읽으면 된다는 주식 비법을 전수했다. 또한 신 씨의 주장에도 거짓 해명으로 대응했다. 한 주식전문가는 “책을 내고, 강연회에 다니고 와튼스쿨 입학 결정이 났는데 안 갔다는 이야기를 믿기 힘들다. 결정적인 거짓말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국세청에서 납세자상을 준다고 하는 걸 고사했다고 하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사업이 아닌 단순 주식투자로 납세자상을 받는 게 상식과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최 차장은 “2013년 최초 400억 보도가 나왔을 때 기자 탓을 했고, 노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부자>라는 책에서 또 다시 박 씨는 ‘400억 원을 만든 노하우’라고 자신을 포장했다. 책 특성상 고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고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와의 대화 내역을 공개한 N 씨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거짓이라 할지라도 그의 기부철학은 훌륭했다. 제가 받은 충격만큼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욕설과 돌팔매질보다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청년을 보듬어줬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