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선수 수당 고작 하루 10만원” “부상 입고 소속팀 돌아가면 죄인신세”
김연경(29·상하이)의 ‘작심 발언’을 취재하던 중 전화 연결이 닿은 농구선수 A는 김연경으로 인해 여자배구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현실이 내심 부럽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인 김연경이 아시아 여자배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필리핀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작심한 듯 “이번 대회에는 이재영(21·흥국생명)이 들어와야 했다”며 “팀에서도 경기를 다 뛰고 훈련까지 소화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빠졌다. 결국 중요한 대회만 뛰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해 국가대표팀 차출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고 김연경의 지목을 받았던 이재영은 팬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더 거셌다. 김연경이 오죽했으면 대한배구협회 대신 직접 나섰겠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부터 선배가 후배를 콕 집어 비난한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며 김연경에게 화살을 돌리는 여론도 있었다.
2017 국제배구연맹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2그룹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의 김연경 등 선수들이 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은 대회가 열리기 전 대표팀 명단 제출 마감 시한을 앞두고 밤잠을 설쳤다. 일찌감치 최종 명단 28명을 공개했지만 수술과 사건 사고 등으로 빠진 선수들을 채우느라 머리를 싸매었던 것. 새벽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아침에 조간신문을 펼쳐들 때마다 긴장된 마음을 부여안게 된다는 그에게 힘을 준 선수들은 해외파였다. 추신수는 김인식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표팀 참가 의사를 밝혔고(나중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반대로 대표팀 합류가 무산됐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절치부심 중이었던 이대호도 김인식 감독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이대호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전한 바 있다.
“김인식 감독님이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대표팀 합류하는 것과 관련 도장을 찍었다고 표현하셨더라. 대표팀 합류에 도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능력이 되면 가는 거지. 몸도 마음도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이대호는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다. 이미 그 전 해 프리미어12대회 이후 곧장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쉼 없이 몸을 만들었고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시애틀 매리너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서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했었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다. 몸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빨리 몸을 만들면서 조금 일찍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걸 핑계대면서 대표팀 합류를 미루고 싶지 않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한국 야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나.”
2017 WBC 대표팀. 사진=KBO 공식 페이스북
이대호는 2008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그는 그 고마움을 야구로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국제대회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그런 그도 대표팀 운영에 대해선 불만이 많았다. 몸값 비싼 선수들이 뛰는 대표팀인데 물리치료사, 마사지사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수의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을 관리하고 대우하는 대표팀 시스템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대호니까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프로농구의 베테랑 선수인 A는 대표팀 경력이 많은 편이다. 그는 김연경의 발언에 깊이 공감하면서 선수가 처한 상황에 따라 태극마크를 받아들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선수라면 프로 처음 시작하면서 항상 가슴에 태극마크의 꿈을 품고 운동을 한다. 그런 희망을 안고 성장을 거듭하다 어렵게 태극마크를 달게 되면 그 자체가 영광이고 기쁨이었다. 그런데 대표팀에 오면 소속팀에서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물품도 지원이 잘 안되고, 연습복도 제때 제공되지 않는다. 한번은 연습복이 찢어졌는데 여유분이 없어 새로운 연습복이 올 때까지 꿰매 입은 적도 있었다. 이게 대표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후배들 보기 민망할 때가 많다. 협회는 항상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사명감을 갖고 대표팀에서 뛰는데 협회가 돈 문제로 지원에 소극적이라면 선수는 왜 태극마크를 달고 뛰어야 하나. 앞으로 선수한테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라면 안 된다.”
A 선수는 대표팀에서 뛴 선수가 몸 상태에 따라 구단과 연봉 협상 때 불이익을 받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만약 대표팀에서 뛰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치자. 그런 몸으로 소속팀으로 돌아가면 순식간에 죄인이 된다. 프로 경기에 뛸 수 없을뿐더러 경기에 나가지 못한 상황이 연봉 협상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나이가 있는 선수들은 선수로 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데 부상이라도 당하면 수명이 단축된다. 정말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A 선수는 대표팀보다 프로팀의 시스템이 훨씬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선수들로선 대표팀 합류를 반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연봉에 반영돼야 한다. 피드백이 없는 대표팀 운영은 절대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대표팀 선수들이 받는 수당이 하루 얼마인 줄 아나? 10만 원 정도이다. 모두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인데 하루 10만 원을 받고 부상 위험을 감수하면서 뛸 수 있다고 보나. 협회는 대표팀 운영을 현실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지난해 은퇴한 여자농구 선수 출신의 B는 엄청난 운동량도 문제라고 말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선 새벽부터 오전 오후 야간 운동까지 네 타임을 돌린다.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하루 종일 훈련만 하는 셈이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모른다. 나이 먹은 선수들은 꾀병 부린다고 할까봐 훈련량을 조절해 달라는 말도 못한다. 그러다보면 부상으로 이어진다. 농구 엔트리는 12명이다. 대회에 나가면 뛰는 선수들만 뛰기 마련이다. 그렇게 대회를 마치고 팀으로 돌아가면 부상이나 체력 난조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대표팀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B 선수는 여자농구도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신장에 따라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에 차이를 뒀다고 말한다.
“신장이 190cm 이상이면 비즈니스석, 190cm 이하면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난 190cm가 안 돼 개인 돈을 들여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이코노미석에서 10시간 넘게 타고 갔다가 바로 게임하고 돌아온다고 상상해봐라. 선수들 몸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2017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이 2그룹 준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대표팀 선수들을 뽑을 때마다 구단 관계자들은 소속팀 선수들이 한 명이라도 덜 차출되길 바란다. 국제대회가 대부분 비시즌 중에 열리지만 비시즌 동안 손발을 맞추면서 시즌을 준비하는 팀 입장에선 소속팀 선수가 많이 빠져나가면 나갈수록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프로축구 K리그의 C 구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전과 달리 대표팀에 소집되는 선수가 많을수록 축구협회에 불만 섞인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축구는 부상을 당하면 대부분 수술을 필요로 하는 큰 부상이라 대표팀 경기에 뛰는 선수가 많을수록 팀 입장에선 손해이다. 부상은 대표팀에서 당하고 치료는 소속팀에서 하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다. 선수들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구단으로선 소속 선수의 대표팀 차출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서 가끔은 ‘편법’을 쓸 때가 있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선수가 있다면 회복 기간을 길게 잡고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는 것이다.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강경하게 맞선다면 협회에서도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선수를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나 다름 없다.”
남자 프로배구단의 한 관계자는 “부상으로 빠지는 선수가 있다면 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병역이나 연금 등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에는 아파도 출전을 강행하지만 혜택이 없는 국제대회에는 온갖 핑계를 대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는 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농구 대표팀의 현실을 토로했던 A 선수는 대한농구협회와 KBL이 공동으로 대표팀을 운영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협회가 대표팀 운영을 KBL한테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이건 배구 대표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남자 배구단의 한 관계자는 “대회의 중요도에 따라 대표팀 선수 선발에 차등을 뒀으면 좋겠다”면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대회에는 나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중요도가 높은 대회에는 주전급 위주의 선수들로 선발하는 것이다. 뛰지도 않을 선수들을 뽑아 놓고 그냥 돌려보내는 것보단 그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김연경과 이재영, 그들은 사이좋은 선후배 2014-2015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은 이재영은 데뷔 전부터 ‘제2의 김연경’으로 불렸다. 두둑한 배짱과 남다른 승부욕은 김연경 못지않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재영은 고교시절 숙소 라커 문 안쪽에다 포스트잇으로 ‘제2의 김연경이 되자’라고 써놨다고 한다. 그에게 김연경은 우상이었다. 이재영이 태극마크를 처음 단 시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선수권대회였는데 이재영은 대표팀에서 처음 만난 ‘우상’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로 삼았던 선배와 함께하는 대표팀 생활. 그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다음은 이재영이 기자에게 전했던 김연경 관련 일화이다. “2015년 5월 중국 톈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의 치킨 회식 자리가 열렸다. 연경 언니가 바로 내 옆에 앉았는데 그분의 아우라에 눌려 시간 30분 동안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치킨만 먹었다.” 김연경(오른쪽)은 이재영을 아끼는 후배로 꼽는다. 이재영은 여전히 김연경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일요신문 DB 이재영은 김연경이 아무리 자신을 편하게 대해줘도 그가 우상이기 때문에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미디어에서 자신을 가리켜 ‘제2의 김연경’으로 부르는 데 대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 타이틀을 달기엔 내가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연경 언니를 닮고 싶지만 아직은 따라가기 버거운 선배이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연경 언니에게 자랑스런 후배가 되고 싶다.” 이전 기자와 만났던 김연경은 ‘제2의 김연경’으로 꼽히는 이재영 관련 질문에서 “재영이는 신장이 크지 않은 대신 뛰어난 점프력과 파워가 있어 공격수로선 흠잡을 데가 없다”라는 의견을 나타냈었다. “재영이의 단점은 리시브다. 수비에선 굴곡 없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재영이가 프로 입단 후 실력이 많이 늘었다. 재영이처럼 감각이 뛰어난 후배들이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싶다.” 김연경은 선수 생활 내내 짊어진 대표팀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다고 토로했다. 대표팀 생활을 하며 얻은 게 많지만 체력적인 부담으로 인해 더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시간이 분명 올 거란 얘기도 덧붙였다. 이번 김연경의 ‘작심 발언’은 이재영이란 실명이 거론되는 바람에 본질 대신 가십만 난무했다. 김연경도, 무릎과 발뒤꿈치 부상으로 재활 중인 이재영도 큰 내상을 입었다. 분명한 건 이재영은 여전히 김연경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연경도 이재영을 아끼는 후배로 꼽는다. 대한배구협회의 무능한 행정력으로 애꿎은 선수들만 피해를 입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