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대상 자유한국당에 손 내밀어야 할 판
전체 18개 상임위 가운데 야당 상임위원장은 9명이다. 자유한국당(7명)과 바른정당(2명)이 여당 시절 위원장을 맡았던 상임위들이다. 정보위, 법사위 등 핵심 위원회가 포함돼 있다. 이들 대부분 여당의 주요 입법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7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상임위별로 주요 입법 과제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개혁 입법 추진을 예고했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8월 7일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91개가 국회 입법이 필요한데 총 647건(법률 465건, 대통령령 등 하위법령 182건)의 법령 제·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개혁 법안들이 국회에서 원만하게 통과될 수 있도록 야당의 전향적인 자세를 당부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임위별 쟁점 현안과 입법을 놓고 여야 간 대치가 예상된다. 야권이 민감한 현안 대부분에 대해 부정적 입장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7개 상임위(운영위 법사위 정무위 기재위 방통위 행안위 정보위)에선 그 기류가 더욱 강경한 모습이다.
개혁 법안을 입법화하기 위해서는 소관 상임위 내 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돼야 하는 만큼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각 위원장이 법안 상정과 소위 회부 등을 거부할 경우 법안 논의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여당 보좌진은 “야당 위원장이 버티면 정책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정보위원회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 국정원법 개정안과 기획재정위원회의 ▲법인세 인상 등 세법 개정안 등을 놓고 여야가 맞붙을 것으로 점친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한 공수처 설치에 대해 자유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권 위원장은 “공수처 신설은 기존 검찰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또 하나의 검찰을 만들어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시대착오적 방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대변인은 “법사위 차원에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원내 전체에서 당 대 당으로 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다. 한국당 전체 차원에서 논의를 하고 그것이 법사위에서 논의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소속 이철우 정보위원장는 대공수사권 폐지 등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 위원장은 최근 “여당 원내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 우리 당에서 몸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철우 의원실 관계자는 “위원장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우리 당 차원에서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른정당도 100%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국정원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가 상당히 높다. 합의해서 통과시키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당 소속 조경태 기재위원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증세 방안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여당의 증세 추진 방식은 계층 간 갈등을 유발시킨다. 세법 문제는 공론화해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기업의 법인세 비율을 조금씩 낮추는 게 세계적인 추세고,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는 35%인 법인세율을 15%로 낮추겠다고 했다”면서 글로벌 추세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최대한 야당을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백혜련 적폐청산위원회 대변인은 “입법 과제 같은 경우엔 어쨌든 야당하고 같이 해야 한다. 지금 야당들이 협조적이지 않은 상태라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해왔던 것처럼 여당은 ‘협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가 매우 높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계속 설득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권은 “협치를 포기한 건 청와대와 민주당”이라며 강경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어 여권으로선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적폐 대상으로 치부해왔던 한국당에 손 내밀어야 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모양새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새 정부가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개혁법안 상정 및 소위 회부 등에 야당이 협조를 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야당 보좌진은 “문재인 정부의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첫 정기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게 중요하다. 그만큼 야당도 전략적으로 공세를 퍼부을 것”라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