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피해도 보전 않고 다시 판매 …소비자 우롱”
사진= 한국소비자원 제공.
2년 전 50대 여성 A 씨는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진단을 했을 뿐이었다. A 씨는 당시 먹던 백수오 제품에 이엽우피소가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소송 제기를 결심했다. 이후 업체 측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책임은 인정하지 않지만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환불해준다고 하다가 연락이 두절된 적도 있었다. 백수오를 구매했던 500여 명의 소비자들이 모여 내츄럴엔도텍을 포함한 백수오 제조업체, 유통업체 20여 군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5년 4월 한국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이 보관하고 있던 백수오 원료를 수거해 시험검사한 결과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내츄럴엔도텍은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소비자원을 상대로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한 달 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츄럴엔도텍 제품을 포함한 백수오 제품에서 이엽우피소가 혼합됐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
검찰 조사에서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식약처 기준인 ‘백수오등복합추출물 제조기준·규격’에 따라 제품에 백수오, 당귀, 속단만을 사용돼야 한다는 전제로 수사를 시작했으나 제품에 이엽우피소 혼입비율이 3%뿐이었고, 납품구조 및 검수과정에 혼입 방지를 위한 검증 시스템이 일부 미흡했지만 ‘고의’가 없었다며 무혐의로 결론을 내린 것. 또 이엽우피소의 유해성을 판단할 만한 연구자료가 부족했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알려졌다.
내츄럴엔도텍은 두 달 동안 영업정지를 당하고 이엽우피소가 혼합됐던 제품을 폐기처분했다. 그 후 다시 제품을 개발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다 지난달 31일 홈쇼핑 방송을 재개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 2회 만에 4억여 원 매출을 기록한 것. 그러나 피해자들은 소송이 진행 중인데도 문제가 됐던 백수오를 아무렇지 않게 판매하는 업체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이들은 “이제 진품이라며 아무런 제재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업체에게 한 번 더 우롱당하는 느낌”이라며 “방송과 광고를 불시에 접할 때마다 씁쓸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론의 관심에선 밀려났지만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5년 500여 명의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한 업자들을 상대로 4억 8000여 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피고들이 이엽우피소가 함유된 제품을 진짜 백수오를 함유한 제품인 것처럼 제조하거나, 가짜 백수오 제품을 갱년기 여성에게 매우 좋은 성분이라고 허위·과장해 선전했다”며 “제품 구입 비용을 반환하고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당시 피해를 주장하던 소비자들은 집단소송제를 통해 다수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지지부진이었고 피해보상 가능성은 불확실해 보였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1년 4개월 만에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실제와 다른 백수오를 구입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한다”고 했으나 사건 발생 2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손해배상 청구 이유나 입증 방법을 밝히지 못했다. 피고가 제조업체, 유통업체, 통신업체 등으로 구분돼 있으나 손해배상 청구 취지와 원인이 구분되지 않아 다시 준비해 오라는 수차례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백수오를 구입한 이후 피고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봤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면서 “이엽우피소의 유해성 여부가 쟁점 대상인데 유해하지 않다고 해도 백수오로 알게 하고 판매한 것을 원고 측에서 지적해야 할 것이며 제품마다 차이점이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피고 가운데에는 백수오를 판매한 업체와 이름만 비슷했지 별개의 업체인 곳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 소송은 피해자 측 변호사가 피해 사실관계를 입증할 부분을 준비해오면 다음 달 결심과 오는 10월 선고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 소송과 별개로 진행된 소송은 오는 9월 초에 선고가 예정돼 있지만 이 소송과 비슷하게 진행됐고 입증이 부족해 기각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모든 피해 사실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기존 의료사고나 이번 맥도날드 소송도 피해자들이 다 입증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 입증하기 쉽지 않아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반면 가짜 파동을 겪으면서 한약재 시장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백수오 제조업체가 눈에 띄는 매출을 달성하자 이목이 다시금 집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백수오 자체에 대한 반응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난번처럼 백수오에 다른 성분이 혼입돼 있을 개연성을 확실하게 없앴기 때문에 이번 상품에 대해선 믿을 수 있었다”며 “2년 전 백수오 매출이 높아지면서 재배하는 농가도 많아졌지만 가짜 논란 이후 수요가 줄어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돕는 취지로 이번 판매가 진행됐다. 재고 부족으로 완판이 됐고 재고가 마련되면 추후 론칭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