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라고 하기엔…자살한 용의자 ‘좀도둑’ 전과뿐
로니 체이슨의 젊은 시절. 존 트래볼타와 모건 프리먼 등도 그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가 됐다.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난 로니 체이슨은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오빠인 래리 코헨의 영향으로 영화 홍보 일을 시작한다. 래리 코헨은 액션이나 호러 전문인 영화감독. <폰 부스>(2002)의 각본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녀는 단순히 영화 개봉 때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인 시절 존 트래볼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모건 프리먼도 로니 체이슨을 통해 전세계적인 배우가 됐다.
1993년엔 메이저 영화사인 MGM의 간부가 되었고, 이후 할리우드 최초로 영화음악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전문으로 하는 퍼블리시스트가 된다. 한스 짐머나 토머스 뉴먼 같은, 오스카 시상식 단골 음악가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체이슨 덕분이었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모든 파티와 시사회와 자선 행사에 참석하는 마당발이었다. 20대 때 잠깐 결혼 생활을 했지만 이후 3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았으며 아이도 없었던 그녀에겐 클라이언트가 전부였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던 체이슨은 할리우드의 숨은 실세 중 한 명이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2010년 11월 16일 자정이 조금 넘은 12시 28분, <버레스크>(2010) 시사회에 참석한 뒤 파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향하던 로니 체이슨은 휘티어 드라이브에서 선셋 대로로 좌회전하는 사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인근 주민들은 다섯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검시 결과 네 발의 총알을 맞았다. 심장 부분에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400미터 정도를 운전했던 그녀는 신호등에 충돌했고, 잠시 후 인근 가정집에서 911 신고를 하자 경찰과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녀는 사망한 상태였다.
로니 체이슨
수사가 시작되자,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팜스프링스영화제 측은, <아메리카스 모스트 원티드>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범인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한 사람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이때 익명의 제보자가 전화를 했다. 산타모니카 대로 주변에 있는 하비 아파트먼트에 사는 해롤드 마틴 스미스라는 남자가, 자신이 체이슨을 죽였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사건 발생 2주 후인 12월 1일, 경찰은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경찰이 온 것을 안 스미스는 아파트 로비에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해 버린 것이다. 일주일 뒤 경찰은, 스미스가 사용한 총과 체이슨의 살인에 사용된 총이 같다며, 스미스가 체포될 것이 두려워 자살했으며 그가 범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에 관심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니 체이슨에게 누가 총을 쏘았는가. 사실 많은 추측이 있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원한을 가진 사람이 킬러를 고용했다는 설도 있었고, 도박 빚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차 안에 미지의 동승자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로드 레이지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범인이 되기엔 너무나 부적절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건 장소에서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자동차가 없었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약 4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와 그런 범죄를 저지른다?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롤드 마틴 스미스.
게다가 총기 전문가들은 체이슨을 죽인 건 매우 침착한 킬러의 솜씨라고 분석했는데, 스미스는 청부살인업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경찰 자료가 유출되었는데, 여기엔 자살한 권총과 범죄에 사용된 권총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할 확률이 60~70퍼센트 정도라는 기록이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을 때 체이슨의 손가락에 있는 금반지는 그대로였다. 강도를 하려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면, 그럴 리 없었다.
새로운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미스가 자신이 체이슨을 죽였다고 떠벌린 건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관심을 받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의 제보자가 돈을 노리고 거짓 제보를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살한 걸까? 당시 그는 두 번 감옥에 갔다 온 상태였고, 다시 체포되면 종신형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무직이었던 그는 인근에서 몇 번의 절도 사건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경찰에 발각되었다고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은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런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베벌리힐스 경찰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후 7년의 시간이 흐르며, 체이슨의 죽음은 미제 사건 아닌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