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요리” 못박아도 레시피 계속 만지작
지난 3일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가 푸드트럭 상표권을 출원했다. 특허정보넷 키프리스 캡처.
그러나 일부에서는 BBQ가 프랜차이즈 갑질에 이어 청년·영세상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 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 더욱이 푸드트럭 사업은 2014년 청년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사업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푸드트럭 시장에 자본력을 갖춘 프랜차이즈 업체가 뛰어들면 개인 사업자들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이유로 영업자 선발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업체 선정을 지양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 역시 일자리 창출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업체의 푸드트럭 사업 진출은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일인 것이다.
청년·영세 상인들의 푸드트럭사업을 지원해온 서울시는 아예 BBQ를 명시하며 사업 진출을 차단했다. 서울시는 지난 16일 ‘푸드트럭 영업자 모집 공고’를 내고 “최근 제너시스BBQ 등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푸드트럭 사업에 진출 움직임을 보이면서 청년창업자와 영세업자들의 대표적인 사업영역인 푸드트럭이 프랜차이즈업체에 잠식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공개 모집하는 영업지는 프랜차이즈 업체 신청을 제한한다”고 못박았다. 또 개인 창업자의 이익 일부가 프랜차이즈 업체로 귀속되거나 푸드트럭 운영자와 실질적 대표가 다른 기업은 아예 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 관계자는 “이전에는 행사와 축제의 푸드트럭 입점 관리를 각 재산관리부서에서 하다 보니 담당자가 잘 모르는 때도 있고 사실 과외 업무의 성격이 강해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오기도 했다”며 “빠르면 올해 내로 프랜차이즈 업체의 푸드트럭 사업 진출을 제한하는 조례가 지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입장을 명확히 하자 BBQ가 지금으로선 푸드트럭 사업 검토를 전면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BBQ가 상표권을 등록한 시기는 서울시의 발표가 나기 전인 데다 이미 BBQ는 실제 푸드트럭 모델도 제작해 놓은 상태기 때문이다. BBQ 관계자는 “서울시와 상관없이 내부 결정에 따라 푸드트럭 관련 업무를 중단했다”며 “영세상인들의 푸드트럭 사업을 돕기 위해 단 한 대만 제작해 놓은 것일 뿐 한 번도 운영하지 않았고 다른 업체들도 푸드트럭을 제작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네치킨 등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가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의 푸드트럭은 대부분 행사나 축제에서 홍보용으로 사용된다. BBQ처럼 관련 사업을 위해 따로 상표권을 등록한 경우는 없다.
지난해 BBQ는 한국푸드트럭협회와 푸드트럭을 주제로 업무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푸드트럭협회 관계자는 “미팅 과정에서 BBQ가 궁극적으로 식자재 납품을 염두에 두고 푸드트럭 사업 진출을 모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영세업자로 이루어진 푸드트럭 시장에 프랜차이즈가 개입하면 불합리한 가맹점-본사의 관계를 재현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의 개입이 푸드트럭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앞의 협회 관계자는 “전 처리가 잘 돼 몇 분 만에 조리 가능한 제품에 대한 말도 들린다”며 “프랜차이즈 음식점처럼 거의 완성된 제품을 데우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재료를 구해 바로 조리하는 현 방식이 음식 맛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협회를 방문했던 BBQ 미래성장전략실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은 사회 현상에 주목하는 부서이니만큼 푸드트럭 시장에 대한 자료를 구하러 갔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비록 BBQ가 현재로서는 사업 진출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앞으로 프랜차이즈 업체나 대기업이 푸드트럭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울시, 부산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푸드트럭 관련 조례 자체가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서울시만 영업자 모집 공고를 통해 프랜차이즈 업체의 개입을 제한할 뿐 다른 지역에서는 프랜차이즈 업체 역시 푸드트럭 사업자 지원 자격을 가진다. 부산시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최종 검토는 영업장소 관리 기관에서 하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업체 입점 역시 해당 기관에서 판단한다”며 “다만 선발 과정에서 청년을 포함한 일부 계층에는 가산점이 부여돼 선발에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드트럭을 아예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해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업체의 진출을 사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의 서울시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원회와 서울시에서 푸드트럭을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하자는 얘기는 실제로 꾸준히 나오고 있고 지금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들의 진출 가능성을 아예 막는 건 지나친 시장규제라는 반박도 있다.
서울에서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근처 미술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만 장사가 되는 편인데 이 자리마저도 경쟁이 심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업체가 푸드트럭 사업까지 한다면 개인 사업자로선 두려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