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막고 뒤로 베끼기…“이대로 당할 순 없다”
# <함부로 애틋하게> 행사 취소, 한한령의 서막
지난해 8월 초 배우 김우빈·수지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중국 공식행사가 취소됐다. 두 한류스타가 출연한 이 드라마는 일찌감치 중국에 팔렸다. 한류 콘텐츠 수입이 급증하자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 건 중국의 입맛에 맞춰 사전제작된 드라마인 터라 이제 중국에서 방송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본 중국 측에서 먼저 행사 진행을 중단했다.
당시만 해도 <함부로 애틋하게>를 보며 “부럽다”던 이들이 많았다. 그나마 이 드라마는 중국에 정식 수출된 후 한한령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화제를 모았으나 출연 배우들이 개별적인 중국 내 활동을 할 수 없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드라마 ‘함부로 애특하게’는 중국에 정식 수출된 후 한한령이 시작된 까닭에 출연 배우들이 개별적인 중국 내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한한령 직전 막차를 탄 작품은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다. 이 드라마는 중국 동영상업체 유쿠(優酷)로부터 회당 40만 달러(약 4억 5000만 원)가 넘는 대우를 받으며 수출됐다. 이는 <태양의 후예>와 <함부로 애틋하게>가 기록한 회당 25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중국 원작을 바탕으로 한 리메이크작인 터라 중국 내 관심이 높았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가 회당 3만 달러에 팔린 이후 10배 넘게 한국 드라마의 몸값이 폭등했으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들떴다. 중국의 시장성과 한류 스타를 향한 중국 인민들의 호응을 고려했을 때 점점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이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을 간과한 관측이었다. 사드 설치 결정 이후 양국 관계가 경색되며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한류 차단 조치를 내리자 양국 간 거래는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0’으로 바닥을 쳤다.
한국 드라마를 사겠다는 문의가 뚝 끊겼고 투자도 막혔다. K-팝 그룹들의 중국 공연 및 행사는 줄줄이 취소됐고, 내로라하는 한류 스타들의 중국 팬미팅도 사라졌다. 이민호, 김수현, 송중기 등은 중국 CF를 찍었으나 거리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중국 예능에 출연한 한국 연예인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 앞으론 막고, 뒤로는 베끼는 중국
한류 콘텐츠 수입을 막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중국에 더 큰 손해를 끼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에서는 판권에 대한 대가를 받는 수준에 그치지만, 이를 수입한 중국 업체들은 어마어마한 부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하더라도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5000만 인구가 사는 한국에 비해 26배가량 시장이 크기 때문에 한류 콘텐츠를 활용해 무궁무진한 가치를 일굴 수 있다.
하지만 한한령으로 인해 한류 콘텐츠를 정식 수입할 수 없게 된 중국 측은 점점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방송된 tvN 드라마 <도깨비>와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공유, 이민호, 전지현 등 톱A급 스타가 출연한 드라마라 중국 내에서 관심이 높았다. 한한령이 아니었다면 역대 최고가로 수출됐을 만한 작품이었지만 어느 중국 업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방송이 시작되자 두 드라마의 해적판이 중국에서 나돌기 시작됐다. 중국의 대표적인 SNS 웨이보(微博)에서 두 드라마의 관련 페이지 누적 조회수는 50억 뷰를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두 드라마의 불법 영상 콘텐츠가 판을 쳤고, 드라마 속에 등장한 물품을 베낀 ‘짝퉁’이 활개를 쳤다. 웨이보 상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중국 유명 연예인까지 <도깨비>의 명장면을 패러디하는 영상을 올릴 정도였다.
tvN ‘윤식당’을 베낀 중국 방송의 ‘중찬팅’.
중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묵인했다. 정식 수입은 불허하면서도 한류 저작물이 불법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의 베끼기는 보다 과감해졌다. 한국 연예인들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섬에 음식점을 차린다는 콘셉트의 tvN <윤식당>이 큰 인기를 모으자 판박이 같은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인 <중찬팅>을 만들었다. JTBC <효리네 민박> 역시 중국의 무분별한 베끼기에 당했다.
# 한한령, 언제까지 이어질까?
“과연 언제 끝날까?”라던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요즘 “과연 끝날까?”라고 말하곤 한다. 북핵 사태로 인해 감정이 고조되면서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완고한 대응에 한국 정부 역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민간 차원에서의 대응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제작사협회, 연예제작자협회, 영화프로듀서조합, 가수협회 등 22개 단체가 참여하는 ‘문화산업정책협의회’가 공식 발족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협의회는 한한령 외에도 일본 및 타 국가와 외교적 문제로 인해 문화계가 피해 입는 것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단체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가 풀어야 할 일을 민간 차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찾도록 촉구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각국 대사관에 협조하는 등의 상징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