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대표 낙마 타격 크지만…특급 ‘구원투수’ 등판 땐 전화위복 될 수도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9월 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 전체회의에서 당대표 사퇴을 밝힌 뒤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혜훈 전 대표는 국회의원 전체회의에서 “안보와 민생의 야당 대표로서 막중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 못한 불찰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어려울 때 대표직을 떠나게 돼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다만 모든 진실과 결백을 검찰에서 떳떳하게 밝힐 것이며, 바른정당이 개혁보수의 길을 굳건히 갈 수 있도록 지지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수천만 원대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20대 총선 과정에서 여성사업가 옥 아무개 씨로부터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현금과 명품가방 등 6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이 전 대표와 관련한 의혹은 옥 씨가 지난 8월 31일 ‘이 대표의 금품수수 의혹을 밝혀 달라’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졌다.
이 전 대표는 “돈을 빌린 적은 있으나 모두 갚아 문제 될 게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8월 31일 ‘바른정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옥 씨는 지난 총선 때 정치권 원로를 통해 소개받았다”며 “사이가 좋았을 때 빌리고 갚는 등 총 6000만여 원이 오고 간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차용증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옥 씨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옥 씨가 이 전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당 내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이 전 대표는 결국 사건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현재 옥 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피해 사실을 정리하며 고소장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전 대표는 논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당 전면에 배치해 구설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인재영입 1호 인사로 박종진 전 채널A 앵커를 영입한 뒤 서울 송파을 당협협의회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전 대표는 박 위원장에 대해 “홍길동의 쾌도가 아닌 박 위원장 본인이 원조가 된 쾌도난마의 ‘쾌도’ 같은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해 물의를 일으킨 박희태 전 의장 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자신이 진행하던 <박종진의 라이브쇼>에서 패널로 출연한 황상민 박사에게 “성매매특별법 만들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 때 그 이전엔 성매매 하셨죠”라고 물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자질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박인숙 의원은 박 위원장 영입에 반발해 서울시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정문헌 바른정당 사무총장 임명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역임한 인사로 과거 도당위원장과 현직 원외위원장의 경험을 살려 사무처뿐 아니라 17개 시·도당 그리고 원외위원장과 유기적인 소통과 화합을 위한 최적임자”라며 정 전 의원을 치켜세웠다.
정 사무총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정 사무총장은 청와대 통일비서관 재직 시절인 2009년, 국가정보원에서 2급 비밀로 보관하고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접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2012년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 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존재를 밝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포기를 구두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같은 주장을 반복한 정 사무총장은 2015년 ‘대화록 유출죄’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금품수수 의혹으로 ‘이혜훈 리더십’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며 “이 전 대표는 정치적으로도 후퇴한 것은 물론 앞으로 개인 정치인으로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선 오히려 바른정당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야당 보좌진은 “옥 씨가 물증도 다 확보했다고 하고 진술도 일관되게 하고 있어 이 전 대표에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전 대표 개인으로선 위기가 되겠지만, 바른정당엔 이번 기회에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 구원투수가 돼 당이 변모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새 지도부 구성 논의 착수…자강론자 유승민 전격 등판? 이혜훈 전 바른정당 대표가 사퇴하면서 바른정당은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당 안팎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권한대행체제를 유지하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주장부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의견까지 감지된다. 이 과정에서 바른정당의 최대주주라 할 수 있는 김무성 고문과 유승민 의원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 내 대표적인 통합론자인 김 고문과 자강론자인 유 의원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 고문은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과 함께 지난 7일 ‘열린 토론 미래’ 토론회를 열고 북한 핵 위협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토론회에 앞서 “토론모임이 정책연대로 시작해 양당 통합의 베이스로 가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고문은 “그런 고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김 고문은 “비대위원장을 맡을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하지 않겠다. 뒤에서 돕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반면 유 의원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당의 총의를 통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실제 당 일각에선 “대선에 패배했던 홍준표 대표와 안철수 대표도 모두 전면에 나선 만큼 유승민 의원도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갑자기 떨어져 ‘야당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된다’는 국민적 바람이 생기지 않는 이상 통합으로 갈 명분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며 ”내용 면에서도 보수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떤 지향점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가 없는 현재로선 자강론으로 가는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힘이 약한 상태기 때문에 주장이 매우 공허해 외부에서 모멘텀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