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기론으로 지지율 흔들…양정철 비롯 전해철·김경수 등 주목 대상
‘개국공신 등판설’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친문(친문재인) 실세들의 전면적 등장은 당내 분열의 도화선은 물론, 비선 논란의 데자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뾰족한 수가 없다.” 가까스로 열린 문 앞에서 선 당·청의 속내다.
9월 1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에서 프랑스 마크 롱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역대 정권이 위기론에 휩싸일 때 내놓은 효과적 카드는 ‘인사 개편’이다. 특히 대야 관계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정무라인 재점검’에 돌입했다. 측근 등용문인 ‘특임 장관’이나 ‘특보 체제’도 신설했다. 이명박(MB) 정부 때 실세였던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박근혜 정부 때 친박(친박근혜) 중의 친박인 진박(진짜 친박근혜) 윤상현 정무특보 인선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정무라인은 ‘1수석(전병헌)·3비서관(진성준·한병도·나소열)’ 체제다. 전병헌 정무수석은 친문이지만, 뿌리는 ‘정세균계·DJ(김대중 전 대통령)’다. 현역 의원 시절 정세균계 핵심이었던 전 수석은 DJ가 1987년 만든 평화민주당의 당보 편집국장을 맡은 당직자 출신이다. 친문 중 친문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진 비서관은 친문, 한병도·나소열 비서관은 친노(친노무현)계에 속한다.
특히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포함, 총 6명의 인사 참사 등 다수는 사실상 청와대 인사시스템 부실에 따른 ‘예고된 인재’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측근의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 지점과 맞물려있다. 민주당 한 의원도 “대통령 측근 인사 검증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등으로 낙마한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은 2012년 대선 패배 직후 결성한 ‘삼천회’ 멤버로, 문 대통령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청와대 정책실세인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과 최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같은 모임 멤버다.
‘위장 결혼’ 의혹 등으로 낙마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주식 대박’ 논란 끝에 자진 사퇴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역시 대표적인 인사 검증 실패다.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참여정부 인사=프리 패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우편향 논란’에 휩싸인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간 유명무실했던 인사추천시스템이 ‘반쪽 운영’됐다. 청와대 공식 라인이 아닌 ‘설’로 알려져서다.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 핵심 실세와 거리가 먼 문 보좌관의 이름이 거론되자, 청와대 일부 인사가 특정인을 희생양 삼아 난국을 돌파하려는 게 아니냐는 출처 불명의 알력다툼설도 돈다.
관전 포인트는 최측근 등판 여부다. 이 지점에선 두 갈래로 나뉜다. 특임 장관·특보 신설 등 공식 라인의 쇄신과 비선 등판을 통한 ‘핫라인 구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가 판을 전면적으로 바꿀 가능성은 낮다. 특임 장관 신설 여부는 정부조직법 개편과도 맞물려있는 만큼, 통과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직전 정부 때 친박계 주호영·윤상현·김재원 당시 의원들이 특보로 지명됐지만, 줄사퇴했다. 이른바 ‘특보의 저주’에 시달린 셈이다.
최측근의 등용은 당내 권력구도와도 직결한 문제다. 김대중(DJ) 정부 때 폐지했다가 이명박(MB) 정부 때 부활한 정무 장관 형태의 조직이 부활한다면, 그간 강경 노선을 폈던 ‘추미애 대표·우윤근 원내대표’ 힘 빼기의 신호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야권 시절 특임 장관 신설 등에 반대, 추진의 당위성을 찾기도 어렵다. 한 분석가는 개국공신 전면 등장 가능성에 대해 “‘전병헌 카드’ 등을 내다 버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친문 실세와 추 대표, 비문(비문재인)계 의원들 간 권력 다툼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 정국에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여소야대 덫에 걸렸다. 인사 검증은 번번이 실패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표류 중이다. 경제라인은 청와대 실세와 어공(어쩌다 공무원) 장관, 패싱 당하는 경제부총리 등이 어정쩡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던질 수 있는 친문 실세의 등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중진 그룹 사이에선 대통령 눈치 보기를 하는 참모형 그룹 대신 대통령의 복심 중 ‘미스터 쓴소리’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직언할 참모그룹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대상자가 누구냐를 놓고는 중진 그룹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문 대통령의 복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사는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이다. 이 중 현역은 전해철 의원뿐이다, 전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 후보자로 거론된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민정수석을 각각 맡았던 양 전 비서관과 이 전 수석은 정부 출범 이후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양 전 비서관은 지난 7월 잠시 귀국해 “자리를 탐하고 권력에 취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뉴질랜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민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재인 위기론이 고조될수록 양정철 역할론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보좌관도 “정권의 ‘최후 보루’는 위기 때 나타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2012년 대선 직전 <문재인의 운명> 출간과 SBS <힐링캠프> 출연 기획은 물론, 지난 5·9 대선에서 캠프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양 전 비서관은 출국 이후에도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과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보좌관은 “정치를 재개한다면, 비선보다는 공식라인에 서야 한다. 괜히 비선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주목할 인사는 현역·전직 의원 출신의 정치인 친문 인사다.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대통령의 입인 김경수 의원, 당 정책을 총괄하는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주러시아 대사 때마다 후보자로 올랐던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대표 격인 오영식 전 의원도 주목할 대상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인 송영길 의원과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인 김진표 의원 등도 언제든 ‘전진 배치’될 수 있는 인사다. 이 그룹에 포함되는 전병헌 전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 노영민 전 의원은 주중대사, 이용섭 전 의원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현미 전 의원은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 임명된 상태다. 이 중 다수는 86그룹인 신 친문이다. 친문과 86그룹이 전면적 결합을 꾀할 경우 당내 권력구도를 둘러싼 알력 다툼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개국공신 등판설의 딜레마인 셈이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은 ‘십상시’, ‘최순실’ 등 비선라인의 존재였다. 정권 초반 박근혜 정부와 대비되는 기저효과로 고공행진 지지도를 맛봤던 문재인 정부로선 이를 무력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실패의 원인도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난파선에 직면했던 이유도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단초로 작용했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참모는 필요하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십상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이다.
윤지상 언론인
탁현민 둘러싼 여권 내 복잡한 기류…‘언급 주의령’ 청 눈치 보는 중 ‘안 하나, 못 하나.’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거취 얘기다. 탁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의 ‘왕 행정관’으로 불린다. 여성관 논란으로 뭇매를 맞아도 탁 행정관 위치는 흔들림 없는 산성이다. 당·청 내부에서도 당분간 ‘고’하는 것으로 사실상 정리됐다. 그는 2007년 출간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해냄출판사)에서 “남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대상은 모델같이 잘 빠지고 예쁜 여자들이 아니야. 수학 시간에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발목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은 선생님들”이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범야권이 청와대를 향해 탁 행정관의 해임을 촉구해도, 내각에 참여한 장관이나 여권 인사들의 우려가 표출돼도 탁 행정관의 존재감은 변함없다. 탁 행정관의 입지는 요지부동이다. 그간 청와대의 굵직한 행사를 주도하며 ‘왕 행정관’ 존재감을 한층 각인시켰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대국민보고대회, 문재인케어 발표, 기업인 호프 미팅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출범 직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등에서 보인 문 대통령의 공감 행보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북 콘서트’와 지난 5·9 대선 전 ‘히말라야 트레킹’ 등에서도 기획력을 발휘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문 대통령보다 김정숙 여사가 탁 행정관을 더 챙긴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8월 말 청와대에 탁 행정관 사퇴를 건의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일부 누리꾼들은 정 장관 해임 청원을 포털사이트에 올렸다. 정 장관은 8월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이와 관련해 “결과는 무기력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 인사권이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선 곤혹스럽다는 반응이 엿보인다. 친문(친문재인)계 한 당직자는 “대통령 권한이 아니냐”라며 “행정관 검증을 요구하는 것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많은 의원들은 정권 초기인 데다, 높은 대통령 지지도 탓에 청와대 눈치 보기를 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탁현민 언급 주의령’이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다음) 정기인사 때 정리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청와대도 (비판 여론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내각 2기 개편이 불가피한 만큼, 그 전후로 탁 행정관도 자연스럽게 교체할 것으로 본다. 다만 아직까지는 희망사항이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탁 행정관 거취에 대해 “개돼지 발언을 한 공직자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실장은 이 발언으로 공직에서 쫓겨났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