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만 뒤져도 흠 나오는 인물도…‘검증하긴 한 건가’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 동의안이 가까스로 통과됐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 과정도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임명동의안의 찬성률이 역대 최저치였기 때문이다. 고작 53.7%. 1948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회 승인 이래 역대 이뤄진 대법원장 인준절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거치며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인사 검증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을 문재인 대통령. 그가 ‘사인을 한’ 인사에서 왜 이리 잡음이 많은 것일까. 문 대통령의 과거 청와대 경험은 헛된 것이었단 말인가.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참사에 대해 부실 검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 인사가 만사, 지지율 하락세
축구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의 개인기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역대 정치인 최고의 개인기 보유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애칭인 ‘이니’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니 열풍’이 불 만큼 그의 인기도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필자가 대통령 근접 취재를 나가보면 피부로 느낄 정도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진정성이 보이고, 이를 본 국민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대통령이 나가는 현장마다 휴대전화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대통령은 그때마다 기꺼이 인파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문 대통령 인기도는 요즘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발표도 그러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통령에 대한 험담이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외생적 변수라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고, 내생적 변수라면 단연 부실한 인사였다. 인선된 공직자 낙마 사태가 잇따른 가운데 마지막 장관 후보자였던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까지 자진사퇴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넉 달이 넘었지만 ‘1기 조각(組閣) 퍼즐’을 다 맞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인사, 도대체 어땠기에
문재인정부 초대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후보자 가운데 벌써 7명이 낙마했다. 인사 검증의 턱을 못 넘고 중도 하차한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숫자만 따지면 역대 정부 중 가장 많다.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의 차관급 이상 낙마자 6명을 넘어섰다.
각종 구설로 사퇴(6월 5일)한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시작으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비하 저서와 강제결혼 논란,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과 사외이사 불법 겸직 논란으로 스스로 물러났다.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황우석 사태’ 연루,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유정 변호사는 미공개 정보 주식거래 논란 등으로 각각 자진사퇴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역시 국회 임명동의안이 사상 처음으로 부결되면서 또 한 번의 고위직 낙마 사태가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 구성 과정에서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이춘호 여성부 장관·남주홍 통일부 장관·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이 날카로운 검증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었다.
이렇다 보니 첫 번째 내각을 완성시키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9월 24일 기준으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138일째 내각 완성을 못하고 있다. 기록으로 따지면 김대중 정부 때(174일) 이후 두 번째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해 국회 임명동의를 거부, 대통령 취임 후 174일째인 1998년 8월 17일에야 내각 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중기부 장관을 물색 중인데 인사 검증, 국회 인준 절차에다 추석 연휴가 열흘 안팎에 이르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최소 한 달 이상 임명 과정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 때의 기록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없었던 문재인 정부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박근혜 정부는 출범 52일째, 이명박 정부는 출범 18일째에 내각 구성이 끝났다. 차관급 이상의 내각 구성도 그러하지만 9월 11일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박한철 헌재소장 퇴임(1월 31일)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헌재소장 공백도 이미 8개월째로 들어갔다.
#부실 검증, 대통령 책임 가장 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인사검증은 역대 가장 깐깐했던 민정수석인 저 문재인이 잘할 수 있다(3월 19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회)”고 자부했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다르게 흘렀다.
‘인사 참사’라는 말까지 나오는 문재인 정부에서 그 책임을 문 대통령 스스로가 피해가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낙마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를 비롯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문제를 일으킨’ 인사 추천 대상자 상당수가 문 대통령의 출신지인 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퇴는 안했지만 부산 출신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끊임없이 사퇴 압박에 시달릴 만큼 ‘부실 인사’ 논란을 부추겼다. 류 처장은 부산대 약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시약사회장을 지내는 등 부산에서 줄곧 활동해온 부산 사람이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 표결을 통과한 김명수 대법원장도 부산고 출신이다. 중도 낙마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부산고를 나왔다.
대통령 고향 사람들을 비롯해 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하다 보니 화를 갈수록 키웠다. ‘콕 찍어’ 인선을 하니 인사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문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안경환·조대엽 전 후보자 등은 내정 단계에서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는 게 민주당 측 인사들의 전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최측근들이 청와대로 가지 않았다. 때문에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처럼 대통령 외의 특정 실세가 내각이나 청와대 참모 인선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민주당 내부에서 당장 책임론을 제기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대선 패배 후 야당 생활을 하던 과정에서 도움이나 조언을 받게 돼 챙겨줘야 할 사람도 있었을 테고, 정치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인재라고 느꼈을 사람도 있는데 이런 분들을 참모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직접 인선했을 것이다. 인수위가 없어 절대적 검증 시간이 짧았던 것도 낙마자가 많았던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청와대 민정 라인에서 인사 검증을 했던 경험자는 “대통령이 ‘이 사람은 꼭 쓰겠다’는 메시지를 알아채고 민정 라인이 검증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통령의 메시지에 맞추면 결국 국회 검증에서 100% 낙마한다. 특히 후보자들이 민정 라인의 조사에 대해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이 부분을 꼭 잡아내야 한다. 이 정부에서 이렇게 낙마가 많은 것은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수박 겉핥기로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분은 청와대도 조금은 인정했다. 실제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낙마한 뒤인 9월 4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까지의 인사를 되돌아보면서 인사 시스템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약속드린 대로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이 협의해서 인사원칙과 검증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단순히 검증 시스템 부실이라기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황도 많이 나타났다. 쉽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나 인터넷만 뒤져도 확 드러나는 약점을 가진 인물도 버젓이 인선 대상에 올랐던 것이다. 이는 검증 라인이 부실했다기보다 아예 무력화됐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음주운전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물러난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나 이른바 ‘시중에 도는 구설’로 인해 물러난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경우, 청와대가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버젓이 지명이 되고 결국 낙마 사태로 이어졌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