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파탄에 가산 탕진 ‘쇠고랑’까지…생활패턴 유지하고 안전 자산에 묶어둘수록 탈 없이 안락
동생과 같은 번호로 구매한 로또 2장 모두 1등에 당첨됐다며 올린 인증 사진. 사진=로또리치
부동산이나 사업을 하면서 발생한 대출금을 갚고 10억 원이 넘는 당첨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여생을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것. 당장 목돈을 쓰지 않겠다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가까운 친척과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겠다는 따듯한 이야기도 간간이 등장한다.
실제 로또 당첨자들은 ‘부동산 구입’을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또 당첨자들을 응대하는 농협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내서 관리하지는 않지만, 로또 1등 당첨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분들이 가장 많다”며 “그 다음이 부동산 등으로 발생한 대출을 상환하겠다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로또 당첨자들은 재테크도 안정적인 것을 우선한다. 은행 측은 펀드나 적금을 당첨금 수령 현장에서 당첨자들에게 권하는데 ‘예·적금’을 부동산 대출 상환 다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일단 거액을 예치하면서 천천히 투자 계획을 짜겠다는 것인데, 펀드를 가입할 때 역시 높은 수익률의 공격적인 성향 펀드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성향의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농협은행 관계자는 귀띔했다.
하지만 모든 당첨자들이 로또 덕분에 ‘안락한 제2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로또 당첨을 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첨자들의 조언’을 어겼다가 집안이 ‘분열’된 이도 있다. 비교적 고액에 속하는 40억 원 상당(실 수령액 27억 원)의 로또에 당첨됐던 50대 남성 A 씨가 대표적이다.
부산에 살던 A 씨는 지난해 7월,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맛봤다. 일용직에 종사하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어렵게 사느라 70대 노모를 챙기지 못했던 A 씨. 그는 경남 양산에 아파트를 알아보는 동시에 당첨 사실을 가까운 가족들에게 알렸다. 노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것. 하지만 이 사실이 ‘악재’의 시작일 줄은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오빠 A 씨가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안 B 씨 등 여동생 두 명의 태도는 단호했다. “A 씨가 이혼한 뒤 손자와 손녀를 노모가 대신 키워줬다”며 당첨금 중 일부를 어머니와 자신들에게 나눠 달라고 주장한 것. 그러면서 A 씨가 어머니를 모셔가는 것을 막았다. 고성과 험한 욕설도 오간 것은 당연했다.
노모도 B 씨의 편에 서서 A 씨를 압박했다. A 씨는 가족 갈등으로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단 자녀를 데리고 갈등의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울리는 B 씨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B 씨는 멈추지 않았다. B 씨 등 여동생들은 A 씨의 자녀들에게 따로 연락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 A 씨를 만나겠다며, A 씨가 사는 아파트로 쳐들어왔다. 열리지 않는 전자 도어록을 열기 위해 열쇠수리공을 부른 이들은 잠금장치를 부수고 강제로 A 씨의 집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결국 이들을 경찰에 신고한 A 씨. 40억 원이라는 거액의 로또 당첨금 앞에 모자, 남매의 우애는 무너졌다.
아들 A 씨를 비난하며 양산 시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노모. 사진=SNS
검찰은 B 씨와 B 씨의 남편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는데, 울산지법은 최근 공동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된 B 씨 등 A 씨의 여동생 2명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특히 이 과정에 참여한 여동생의 남편인 C 씨에게는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족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며 범행상황을 꾸며내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어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별다른 전과가 없고 협박 혐의를 자백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매제인 C 씨는 법정구속됐다. ”대표로 나서 열쇠수리공을 부르는 등 범행을 모의하고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피해자의 집 문을 강제로 개방할 때 그 장소에 있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등 태도가 매우 나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재무 관리 능력이 없어,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고도 ‘사기꾼’으로 전락해버린 사연도 있다. 로또복권 사상 역대 2번째로 많은 1등 당첨금인 242억 원(실 수령액 189억 원)을 받은 40대 김 아무개 씨. 갑자기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손에 쥔 김 씨는 거침없이 주식과 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는 잇따라 실패했고, 심지어 병원 설립에 35억 원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면서 5년 만인 2008년 말 당첨금을 모두 탕진했다. 결국 이를 무마하기 위해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에게 사기를 치려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2012년 7월에는 43세 김 아무개 씨가 로또 1등으로 받은 당첨금 18억 원으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자 자살하고 2006년에는 13억 원 규모의 로또 1등 당첨금을 받은 당시 26세 김 아무개 씨가 휴대전화를 훔치다가 쇠고랑을 차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커진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당첨금을 모두 탕진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모든 로또 투자자들이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역대 1위 로또 당첨금을 받은 행운아는 춘천경찰서의 박 아무개 경사였는데, 그는 1회 2000원이던 2003년, 한 차례 이월됐던 407억 원(실수령액 317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됐다. 그는 당첨 직후 경찰서 장학회 재단에 10억 원의 거금을 쾌척했고, 얼마 뒤 경찰직을 떠났다. 춘천 일대에서 살고 있는 그는 빌딩 등에 당첨금을 투자한 뒤 안정적으로 이를 관리하며 제2의 삶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종사자는 ”언론에 안 좋은 사건들만 노출돼서 그렇지 로또에 당첨되고 나서도 안정적으로 당첨금을 관리하는 분들이 더 많다고 들었다“며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투자 계획만 잘 세우고 유지해 나가면 안락한 제2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당첨금 찾을 때 정말 위험한가요? ”폰뱅킹으로도 쏴 줘…걱정 뚝“ ‘주변에 알리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로또 748회 1등 당첨자가 한 커뮤니티에 올린 당첨 후기인데, 로또 사진과 농협은행 본점 방문 사진으로 당첨을 인증한 그는 비교적 상세히 로또 당첨자로서의 조언을 전했다. 로또 1등 당첨자가 농협은행 본점을 찾아 당첨금을 찾았다며 올린 인증사진. 사진=로또 커뮤니티 우선 사람이 붐비는 월요일은 피하라는 게 그의 설명. 그는 특히 “주말이 끝난 뒤 일처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월요일 날 오후에 갔다가 2시간 30분이나 대기해야 했다며, 월요일에 가려면 본사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가야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장 궁금해 하는 ‘당첨 후 생활 변화’에 대해서도, 주변에 알리지만 않으면 당첨자를 노리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령하고 한 달 보름의 시간이 지났지만 어디에서도 찾아오지 않고 연락도 오지 않는다“며 “친구와 지인들에게 시기와 구걸을 받고 싶지 않다면 알리지 않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안에 빚이 있어,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지만, 주변에 ‘빚 청산’ 때 함께 생각할 변명거리도 함께 말씀드렸다”고 팁을 전했다. ‘술을 마시고 충동적으로 얘기할 뻔했던 적은 있다’고 털어놓은 그였지만, 생활 패턴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같은 곳에서 근무하며, 정해진 한도 안에서만 소비를 하고 있다는 그는 ”로또 1등 당첨됐다고 흥청망청하지 않기 위해 5000만 원만 자유롭게 쓰려고 남겨 놓고 나머지는 공부를 해서 적금과 펀드에 분산 투자했다, 절대 패가망신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글을 마무리했다. 일각에서는 ‘매주 월요일 본점 앞에 로또 1등 당첨자를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농협은행 측의 설명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요새는 OTP를 설치하면 스마트폰 뱅킹으로 5억 원까지 한 번에 주고받을 수 있다”며 “계좌를 만들어서 계좌에 당첨금을 전부 넣어주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별도의 경비를 고용해 당첨자의 신변을 보호할 필요 역시 없다”고 당부했다. [서] |
“운명의 번호 찍어 줄게” 사기꾼만 돈벼락 ‘로또 1등에 당첨돼서 허덕거리지 않고 살고 싶다.’ 많은 직장인, 학생들이 매주 돈을 아껴가며 로또를 사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심리를 노린 범죄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운명의 번호’를 추천해 주겠다는 이들에게 가입비로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얼마 전 경찰에 검거된 것이 대표적이다. 복권사이트 운영자 39세 유 아무개 씨와 36세 프로그래머 황 아무개 씨 등 10여 명이 꾀를 낸 것은 2013년 1월. 이들은 지난해 10월까지 로또 예측 사이트 4개를 차려놓고 회원 1만여 명으로부터 가입비 명목으로 총 49억 5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시스템은 겉으로는 상당히 치밀해 보이게끔 만들었다. 가입비는 회원 등급에 따라 무료에서 최대 660만 원까지 다양했다. 상위 회원에게 더 좋은 번호를 주겠다고 꼬드긴 것. 하지만 정작 회원들에게 간 로또 추천 번호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무작위 로또번호 생성기에서 나온 번호였다. 당첨되지 않은 로또 복권 사진을 포토샵 등 사진편집 프로그램으로 조작해 마치 당첨 영수증인 것처럼 당첨 후기와 함께 사이트에 게재해 로또 구매자들을 현혹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든 게 로또 당첨이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여성 S 씨는 2010년,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로또 1등에 당첨됐다, 당첨금 13억 원을 찾으려고 하는데 내 통장으로 받으면 대출금과 이자로 모두 빠져나가게 돼 언니 우체국 통장으로 송금했다, 이 돈을 찾기 위한 작업비를 빌려주면 이자까지 1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당첨 시 농협은행에서 새로 통장을 만들어 해당 통장에 세금을 제하고 당첨금을 입금해 주기 때문에 애초에 작업비가 들 일이 없는 상황. S 씨는 실제로 로또 1등에 당첨된 사실도 없었고 정작 사채업자로부터 채무 변제를 독촉 받는 처지였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를 알지 못했고, 결국 2010년 12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2900만 원을 건넸다. 결국 법원은 사기죄로 고소된 S 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로또에 당첨되려고 ‘여성 속옷’을 모으고 다니다가 덜미가 잡힌 남성도 있다.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난 50대 남성 K 씨. 그는 부인과 이혼한 뒤,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을 하며 딸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던 중 솔깃한 조언을 들었다. 삶이 답답하던 차에 찾은 한 점집 무속인이 “여성 속옷을 훔쳐 입으면 로또에 당첨돼 재기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준 것. 이에 K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여성 속옷과 금품을 훔쳤다. 20여 차례에 걸쳐 속옷을 훔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 당첨은 되지 않았다. 초조해진 K 씨는 ‘로또 당첨’을 위해 또 다시 속옷을 훔치러 가정집에서 들어가 돈에까지 손을 댔다가 피해자가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K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주 여성 속옷을 훔쳤다”고 털어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회가 힘들어질수록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로또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를 이용한 사기 범죄도 더 기승을 부린다”며 “문제는 로또 관련 사기 범죄의 피해 대부분이, 로또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소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