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벌써 3억원, 누군 고작 천만원…모금 실적으로 보좌진 평가하기도
여의도 국회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예능 출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등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의원들은 후원금 한도를 순식간에 채웠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후원금을 모금한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리자 4일 만에 한도를 꽉 채워 화제가 됐다. 같은 당 손혜원 의원의 후원금 모금 속도는 더 빨랐다. 손 의원은 SNS에 “저도 후원금이 필요합니다”라는 글을 올리자 불과 4시간여 만에 한도를 채웠다.
2017년 상반기 후원금 모금 하위권을 기록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렇게 우리 의원실이 언급되어서 의원님께 참 죄송한 마음”이라며 “일부러 모금을 안 한 것은 아니고 의정활동에 전념하다보니까 모금 활동이 저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원님 재산이 거의 부동산이고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은 별로 없다. 그런데 후원금을 모금하려고 하면 돈도 많으면서 왜 후원금을 받으려 하냐는 반응이라 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억대 연봉을 받는 국회의원이 후원금까지 모금하려는 것은 욕심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겉보기만 화려하지 너무 힘들다”며 “부인이나 (여성 의원의 경우) 남편이 소득이 있어서 가정을 꾸려주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지역구 사무실 유지비와 직원 급여 등 특히 지역구 관리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보좌진 급여 상납 같은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이것”이라며 “잘나가는 의원이 아니면 자기 세비나 심지어 기존 재산까지 처분해 의정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 돈 가져다주는 의원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보좌관도 “요즘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 보좌관은 “예전엔 출판기념회라도 해서 숨통을 텄는데 이제 그것도 못하고 후원금을 받으려고 해도 입법로비다 뭐다 말이 많아서 다들 안하려고 한다. 내고 싶어도 겁이 나서 못 내겠더라. (정치후원금 문화가 정착되는) 과도기”라면서 “할 수 없이 동문이나 평소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후원금을 모으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최근 후원금 통로가 막혔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앞서의 보좌관은 “오세훈법, 김영란법에 입법로비, 출판기념회 금지 등 3중 4중으로 제재를 하고 있다. 게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후원금을 냈던 기업들이 대거 조사를 받으면서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것 같다”면서 “돈 나가는 것은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돈은 없으니 힘들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실에서는 후원금 모금 실적을 보좌진 평가에 활용하기도 한다. 의원 한마디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보좌진들 입장에서는 모금 실적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각 의원실은 한 푼이라도 후원금을 더 모으기 위해 매달 지로 방식으로 1만~2만 원의 소액을 기부 받거나 신용카드 포인트로 후원금을 기부 받는 등 모금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이마저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보니 일부에선 꼼수가 동원되기도 한다. 기업들을 직접 압박하는 방식이다. 앞서의 보좌관은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면서도 “국정감사 때 재벌총수를 증인신청하면 말하지 않아도 기업에서 후원금을 싸들고 온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되는 재벌총수들은 의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곤 했다. 이 같은 장면이 보도되면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는다. 그렇다고 불출석할 수도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 불출석했다가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신 회장은 2015년에는 10대 재벌 총수 중 최초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일부 기업은 후원금을 미끼로 의원실에 먼저 접근해오기도 한다. 한 의원실 보좌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원금을 대가로)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시정 및 처리요구사항을 결과보고서에서 제외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결과보고서를 채택하게 되는데, 여기에 올라온 사안은 기록에 남게 돼 피감기관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다.
이외에도 국회의원 후원금과 관련한 구설수는 끊이지 않는다. 후원금을 통한 입법로비 의혹으로 일부 의원들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고, 지역구 시의원이나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고액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300만 원 이상 고액 후원금 기부자는 그나마 명단이 공개되지만 300만 원 미만 기부자는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를 악용해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이 로비 방법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10만 원 이하의 정치 후원금은 환급이 된다는 이유로 회사나 단체에서 특정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강요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치 후원금은 권력에 민감하다. <문화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올해 1~5월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현황에 따르면 후원금 모금액 상위 10명 중 4명이 여당 소속이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각 2명으로 뒤를 이었고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각 1명씩이었다. 전체 모금액 순위 하위권엔 주로 보수야당 의원들이 포진했다. 한 보좌관은 “대가성 없는 후원금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여권에 후원금이 쏠리는 현상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선관위가 후원금을 일괄적으로 모금해서 의정활동 실적에 따라 배분한다든지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지역구 사무실 관리 비용을 보전해준다든지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에서 정치를 하다보면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