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주변 샅샅이 훑어 비리 포착…이명박-박근혜 독대 후 ‘스톱’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6월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에서 이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2012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대선에서 승리하자 정치권에서는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 교체라는 반응이 나왔다. 친이계 내부에선 “박근혜보다 차라리 문재인이 낫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같은 당 소속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부터 시작된 친이와 친박계 간 앙금 역시 쌓여만 갔다. 친이계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이후 대대적인 정치 보복을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친이계 주변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당연히 목표는 MB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친박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통령으로선 2007년 경선 때 육영재단과 최태민 목사 등 개인적인 치부를 끊임없이 공격했던 MB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박 전 대통령은 경선 패배에 대해 승복을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마자 한 게 무엇이냐. 바로 2008년 총선 때 친박을 상대로 공천 학살을 단행한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MB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라고 떠올렸다.
정권 초 사정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지난 정권 비리들을 캐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와 MB에 대한 정권 실세들의 부정적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그 강도는 상당히 셌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다스와 관련해서는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달라붙어 자료를 모으는 등 공을 들였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 사정라인 고위 인사는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별로도 (MB만) 담당하는 팀이 있었다. 거기에서 청와대로 올라오는 자료를 취합해 민정수석에게 보고를 했다”고 귀띔했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담당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고, 친 MB기업으로 알려졌던 롯데 포스코 농협 등에 대해선 검찰의 첩보 및 회계분석 파트에서 면밀한 내사를 진행했다. 이들 기업은 박근혜 정부 들어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도 들여다봤다. 앞서의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큰 집(청와대)에서 주도했다. 목적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잡는 것이었다”면서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하고 있는 적폐 청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도 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MB 측에서 문재인 정부 움직임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더 이상 나올 게 있겠느냐”며 되묻는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 친이계 의원은 사석에서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이나 제2롯데월드 인허가 등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는데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엄청 ‘세게’ 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우리나 MB를 봐줬겠느냐. 그런데도 잡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개국공신이기도 한 정두언 전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MB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굉장히 신중하고 약았다. 자국 같은 것은 잘 안 남기고, 웬만하면 밑으로 책임을 다 떠넘기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MB를 향한 박근혜 정부의 표적 사정은 실패했다는 게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핵심 친박 및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이른바 ‘MB 파일’로 불리던 자료가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갔고, 언제든 ‘오케이’ 사인만 나면 MB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게 골자였다. 이 파일엔 MB뿐 아니라 친이계 핵심 실세들의 비리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 중 일부는 실제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MB와 관련해서는 친인척 비리, 특정기업과의 부적절한 커넥션, 인허가 특혜 의혹 등을 입증할 만한 정황들이 담겨있었다.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친이계 쪽에선 ‘MB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라고 자신만만해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100% 완전범죄는 없다”면서 “이 전 대통령 재산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고, 의미 있는 결과가 제법 발견됐다. 정식 수사 개시만 남겨뒀었다”라고 귀띔했다. 당시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한 MB 측에서도 친박 실세들을 접촉하는 등 상황 파악에 분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MB는 박근혜 정부 포위망을 유유히 뚫고 나갔다. 취재를 위해 접촉했던 인사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 ‘모종의 딜’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도 들렸다. 친박계 실세로 통했던 한 의원은 “MB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하고 난 후 분위기가 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MB를 직접 겨냥했던 사정 드라이브가 사실상 멈췄다. 이유는 둘만 알 것이다. MB 파일 자체도 그 후론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친박과 친이는 5년 내내 갈등을 빚었지만 적어도 박근혜-이명박, 계파 보스 간의 ‘핫라인’은 은밀하게 가동됐었다고 한다.
현 정권 들어서도 박근혜 정부 초반 때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MB 시절 무리한 검찰 수사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친노 진영 기류는 강경하기만 하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그 중심엔 MB가 있다. MB 측은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별다른 반격 카드가 없어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권 초반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MB 파일’이 새삼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 민정 라인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확인 작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문 의원은 “적폐 청산 핵심 타깃은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MB 쪽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많은 의혹이 있는데도 박근혜 정권에서 은폐를 했다. 현재 MB에 대해 국정원과 검찰 등에서 조사를 하고 있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다. 일단 시간이 많이 흘렀다. 또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MB가 뭔가를 남겨두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박근혜 정권 초기에 MB와 관련된 자료와 제보들이 쏟아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내용들을 우리 쪽에서도 확보하면 적폐 청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