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하지 못한 정치, 잘못된 인식이 맞물린 결과
장애아동에게는 학교가 필요하다.
이 영상을 본 시민들이 크게 분노하면서 같은 지역주민인데 한 쪽이 무릎까지 꿇는 장면을 만든 용의자 찾기가 벌어졌다. 용의 선상에는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해야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해당 지역구 의원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올랐다. 특히 서로를 특수학교 지연의 책임이 있다고 지목하면서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 교육감과 김 의원의 공방이 계속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요신문>은 두 사람의 말을 팩트체크해봤다. 조 교육감이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김 의원이 훨씬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물론 김성태 의원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돌변했다”며 비판했지만 애초에 썩 납득이 가지 않는 발언이다. 애초에 특수학교 설립이 지연된 결정적인 이유인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적극 추진한 게 김 의원이기 때문이다.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이 주민 반대에 부딪힌 건 지난 2013년부터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특수학교 설립을 주민들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이미 특수학교가 있는 강서구 대신 양천구에 특수학교를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이 논의는 양천구에 적절한 부지가 없다는 답을 끝으로 양천구 안은 폐기된다.
그러다 2015년 공진초 부지에 한방병원을 설립한다는 김성태 의원의 공약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역주민들을 둘로 가르는 결정적인 공약이었다. 앞서 언급한 국립한방병원 건설이다. 국내에 아직 한 곳도 없는 국립한방병원을 공진초 부지에 유치하겠다는 공약은 지역주민에게는 환호를, 특수학교 설립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절망을 줬다.
김 의원은 보건복지부가 추진했고 타당성 조사 끝에 공진초 부지가 1위로 나왔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지여서 병원을 짓기 위해서는 용도 변경도 해야하고, 이미 특수학교 건립이 추진되는 땅이 1위라는 결과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당시 김 의원의 위치를 고려해봤을 때 더욱 그렇다. 공교롭게도 보건복지부에 당시 타당성 조사 예산을 내려준 예산 결정권자가 김 의원이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새누리당 간사가 김성태 의원이었이기 때문이다. 예결위는 정부의 예산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2015년 한 언론보도에서 김성태 의원실 관계자는 “공공의료는 대부분 양방위주여서 한방이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한방의료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복지부에 국립한방병원 건립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 국립한방병원 추진과 함께 공진초 부지 대신 대체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안이 검토되기 시작한다. 김 의원은 ‘주민 반대에 부딪힌 조 교육감이 대체 부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서울시교육청 측에서 대체 부지를 찾게 된 이유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서울시의원들이 서울시 교육청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게 된 대체부지가 마곡지구다. 이때 검토된 곳이 마곡지구 내 농업역사박물관 부지를 활용하는 안이다.
하지만 마곡지구는 애초에 문제가 많았던 땅이다. 원래 교육부지도 아니어서 학교를 지으려면 교육부지로 전환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근에 변전소가 있어 학교 설립 허가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특히 기존 박물관이 지어지기로 한 곳이기 때문에 지하와 1층에 특수학교를 세우고 그 위에 박물관을 만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방안이었다. 이 안에 대해 교육계 관계자는 “박물관과 특수학교가 하이브리드된 형태가 전 세계 어디에 있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공원부지에 짓는 안도 있었지만 땅도 매입해야 하고 용지 변경도 해야 했다. 기존 개교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었다. 또한 공간도 너무 협소해 수용인원도 기존 부지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측됐다. 결정적으로 이 곳도 주민 반대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몇몇 서울시의원들도 서울시의회에서 공진초 부지 대신 대체부지를 찾아야한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2017년 2월 대체부지 논의를 보다 못한 특수학교 설립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대체부지 논의를 중단해달라는 청원을 서울시의회에 전달한다. 결국 3월 그 청원이 통과돼 공식적으로 대체부지 찾기는 중단됐다. 의회 차원에서 아예 못을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국립한방병원이 설립이 추진됐고 결국 그날 무릎꿇는 어머니들까지 나타나게 됐다.
김 의원 측은 ‘대체부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주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데다, 대체 부지를 거의 찾았는데 조 교육감 때문에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에서 양천구 건설을 검토해본다거나 마곡지구에 대체부지를 찾으려는 노력이 혼란스러움을 가중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적극적으로 반대하면 무산시킬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줬을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지난해 8월 서울시 교육청이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행정예고를 한 이후에는 대체부지 찾기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특히 서울시의회에서 ‘특수학교 대체부지 찾기 논의 중단’ 청원이 통과되면서부터는 이 같은 입장이 확실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 설립 논의가 힘을 받자 일각에서는 2014년의 주장처럼 ‘강서구에 이미 한 곳 있기 때문에 한 곳 더 짓는 것은 불필요하다는’는 주장도 다시 나온다. 강서구에 한 곳이 있는데 왜 또 필요할까. 강서구에는 장애인 학생이 650명 정도 있다. 하지만 강서구 유일 특수학교인 교남학교 정원은 10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럼 나머지 550명은 어디로 갈까.
100명 정도는 구로구에 있는 특수학교로 보낸다. 구로구는 통학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팔팔한 직장인도 출근 1시간에 진이 빠지는데 씻고 준비하는 행위 자체가 힘든 장애아동이 통학하기가 얼마나 힘들지 쉽게 상상이 간다. 한 특수학교 학생 학부모는 “그나마 구로구 특수학교도 정원이 부족해 한 명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넘쳐난다. 특수학교는 한 반에 정원이 7~9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학교 정원이 늘 모자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350명 중 일부는 일반학교 특수반에 보내고 그 나머지는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 공진초 부지에 새롭게 특수학교를 설립하려고 하는 까닭이다. 학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은 이유도 학교가 없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장애학생을 향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가장 큰 요인은 집값에 있다. 특수학교가 세워지면 정말 집값이 떨어질까. 교육청이 특수학교가 세워진 1km 반경 내와 그 이외 지역을 두고 집값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나를 조사했지만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집값의 상징인 강남구에도 특수학교가 있다. 이곳에는 특수학교와 함께 문화공간 등 주민시설도 건립하면서 큰 불만 없이 운영되고 있고 집값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찾기 어렵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강남구처럼 이번 공진초 부지에도 문화공간을 같이 만드는 계획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김 의원이 한방병원 공약 대신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주민을 설득했다면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국립한방병원 추진이 애초에 상당히 힘든 공약이라는 점도 이 같은 아쉬움을 짙게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국립한방병원 안을 검토했으나 현재는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추진할 부처도 없는데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공진초 부지 선정 과정에서 장애학생 측을 도왔던 교육봉사단체인 ‘꿈꾸는 나누미’ 김승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애학생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다. 헌법에도 제31조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은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에 나온 ‘교육 받을 권리’에 대해 동의, 지지하시는 분들을 모으기 위해 현장 지지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지역 주민 중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시는 분도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역시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국민의 의견을 잘 모아내고, 화합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가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 법적 절차를 준수한 특수학교 건립 뿐 아니라 환영 받는 특수학교, 지역사회에 제대로 적응하는 장애학생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한다. 이제는 ‘인식의 전환’ 이뤄져 관련 시설물과 사회 서비스를 넘어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할 때가 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