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다스 관련 제보 입수…한국당은 640만 불 수수 의혹 조준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6월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에서 이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 박근혜보단 이명박
표면적으론 지난 9년간 정부에서 벌어졌던 적폐들이 청산 대상이다. 하지만 현 정권 움직임을 살펴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보단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전선이 형성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박계보단 친이계가 적폐청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폐청산은) 퇴행적 시도다.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 입장은 단호하다. 보수 진영의 정치보복 주장에 대해선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이다. 강훈식 민주당 대변인은 한 라디오에 출연, “암세포를 걷어내야 건강해진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MB를 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러한 기류는 적폐청산 추진이 현 정권의 국정 운영과 직결돼 있다는 것과 맞물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6일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졌다가 없어졌던 반부패정책협의회를 부활시키며 “부정부패 척결에 성역이 없다”며 적폐청산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 친문 의원은 “인사나 안보 등에서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 지지율이 선방하고 있는 것은 적폐를 청산해달라는 국민들, 그리고 지지층의 요구 때문이다. 일각에서 적폐청산 피로감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로선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권의 태생적 한계이자 최대 장점 아니겠느냐. 적폐청산은 5년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권의 ‘반 MB 정서’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여권 주류인 친문 의원들 상당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MB 정권 시절 검찰 표적 수사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검찰 개혁을 부르짖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이미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MB 아킬레스건 친다
민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MB 정권 시절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언론장악 음모,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 비리 등을 본격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국정감사를 앞둔 10월 9일 4자방 비리를 거론한 뒤 “짓밟힌 공적 정의를 회복해 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치보복이라고) 호도한들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4자방 문제를 집중 다루기로 했다.
여권 내부에선 이 전 대통령을 검찰청 포토존에 세우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검찰이 수사 중이거나 국감에서 의혹이 제기된 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 개입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몸통은 MB다. 그런데 연결고리를 밝혀내는 일이 쉽지 않다.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만 놓고 봐도 원세훈 전 원장 그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친이계 핵심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조차 “MB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굉장히 신중하고 약았다. 자국 같은 것은 잘 안 남기고, 웬만하면 밑으로 책임을 다 떠넘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현 정권 사정당국이 ㈜다스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이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던 회사다. 이 전 대통령 아들 시형 씨가 다스에 입사, 초고속으로 승진했다는 점도 이를 부추겼다. 한 사정기관 고위 인사는 “정권 출범 후 다스 관련 자료를 꾸준히 모아 왔다. 기존에 갖고 있었던 것도 많았다. 회사 자체 불법은 물론 이 전 대통령 측과의 연관성 등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국감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가 다스와 관련된 제보를 입수, 확인 작업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사실상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더군다나 다스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은 물론 친인척들의 돈 흐름과 직결돼 있는 곳이다. 다스는 BBK에 투자했다가 소송을 벌이기도 했고, 이 전 대통령 출연재산으로 출범한 청계재단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스는 비상장회사라는 점 때문에 주요 정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선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현 정권 실세로 꼽히는 한 친문 관계자는 “다스가 지난 정권에서 받았던 특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안다”면서 “이 전 대통령과 다스가 어떤 관계인지 밝혀낼 것이다. 4자방 비리 등은 MB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겠지만 다스만큼은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 노무현·문재인 파일로 맞불
자유한국당은 10월 11일 정치보복대책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3선의 김성태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현 정부가 벌이는 과거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 공세를 저지하고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비판하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뇌물 수수 등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 정권의 적폐청산에 맞서 정치보복 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측도 추석 연휴 기간 측근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현 정권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한 친이계 전직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대책 회의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페이스북 글을 통해 사실상 출격 명령을 내렸다.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추석 때 몇몇 친이계 인사들이 이 전 대통령 사무실에서 여러 번 모여 나름대로 머리를 맞댔다”라고 털어놨다.
일단 친이계 의원들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적폐청산의 부당함을 국감에서 부각시키기로 했다. 시급한 안보 및 경제 위기 속에서 과거에만 얽매이고 있다는 논리다. 방어뿐 아니라 적극 공격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참사·안보무능 등을 신적폐로 규정하고, 국감에서 따져보기로 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감 대책회의에서 “한국당은 이번 국감을 ‘무능심판국감’으로 명명한다. 문재인 정권의 안보·경제·좌파·졸속·인사적폐 등 5대 신적폐에 대해 진상규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노무현 X파일’도 다시 꺼내들었다. 여권의 사정 칼날이 이 전 대통령으로 향하자 맞불을 놓은 셈이다. 강효상 대변인은 “(박연차 게이트 때 불거졌던) 권양숙 여사 등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의 640만 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홍준표 대표도 노 전 대통령 관련 특검 주장과 함께 “권양숙 여사 고발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밖에 ‘바다이야기’ 사건 등 노무현 정권 때의 또 다른 의혹들을 국감에서 점화한다는 계획이다.
자유한국당 주변에선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이름도 부쩍 자주 들린다. 신적폐로 꼽은 인사 문제 등과는 별개로 문 대통령 개인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추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MB 정권 말이던 2012년 청와대 민정실 주도 하에 대선 후보로 나섰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광범위한 자료를 모았는데, 그중 일부를 친이계 특정 의원이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이계 의원은 “문 대통령도 아들 취업 특혜를 비롯해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국감에서 꺼낼 만한 사안들이 몇 개 있다”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우리도 정권을 잡아봤던 사람들인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