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 9년간 예산 홀대…“특단대책 필요”
전남 광양항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관심과 예산 홀대로 물동량이 계속 감소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광양항은 동북아시아의 중심과 유럽 및 미주를 연결하는 주·간선항로에 있는 데다 깊은 수심과 방파제 없이도 연간 360일 이상 하역작업이 가능한 정온수역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항만이다. 지난 2003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의 위력에도 하역을 멈추지 않았다. 일자형(ㅡ) 컨테이너부두를 비롯한 광양제철 관련 부두, 여수석유화학단지 관련 부두, 일반부두 등을 갖춘 광양항은 모든 화물을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완비된 종합항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양항은 경부 축에 몰려있는 우리나라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분산시키고 유사시에 항만 파업 등에 대비한 대체항만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광양 컨테이너부두는 정부가 1986년 12월 부산항과 함께 국내 컨테이너화물의 균형처리를 위해 투-포트 정책을 도입키로 함에 따라 1998년 개항했다. 여기에다 북중국의 항만들이 재래식 부두에다 주 간선 항로상에서 멀리 위치해 있어서 환적항이 필요하다는 경제논리가 더해지면서 광양항은 부산항과 함께 양항으로 육성키로 해 발전 가능성을 한층 높여줬다.
당초 광양항은 2011년까지 24선석을 건설, 연간 528만TEU를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개발계획은 북중국의 환적화물과 부산항의 수출입 화물이 급증하면서 2011년 다시 율촌에 9선석을 건설, 총 33선석으로 늘려 연간 930만TEU를 처리하는 동북아 중추항만으로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변경됐다. 특히 광양항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부산항과 함께 양대 국가중추항만인 소위 ‘투포트(Two-port)’로 육성됐다.
그러나 개항 이후 4조 3000억 원이 투입됐지만, 물동량 증가세가 시원치 않았다. 명색이 ‘투포트’지만, 컨테이너 물동량은 부산항의 11%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간 컨테이너 물동량이 나 홀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물량 증가 없이는 상부공사를 준공시킬 수 없다는 정부의 트리거-룰(Trigger-Rule) 정책 때문에 부두 건설은 사실상 중단상태에 빠져 있다. 더 부두확장을 하고 싶어도 화물난으로 트리거 룰에 걸려 지금은 부두확장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대로 지속되면 광양항은 허브포트(Hub Port)는커녕 피더포트(Feerder Port)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국내 3위 항만으로 추락
광양항이 국내 3위 항만으로 추락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2015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인천항에 2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올해로 3년째 3위로 밀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당초 광양항은 컨테이너 화물 처리를 시작한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줄곧 인천항에 앞서며 국내 2위 컨테이너항만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인천항이 시설 확장을 통해 물량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두 항만의 격차는 2013년 12만 4038TEU에서 2014년 3396TEU로 급격히 축소됐다.
결국 2015년 광양항이 232만 7335TEU를 기록하면서 인천항(237만 6996TEU)에 뒤처져 3위로 전락했다. 광양항이 인천항에 뒤진 것은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광양항이 한진해운 파산 여파로 주춤하면서 2위 인천항과의 격차는 42만 9921TEU로 더 벌어졌다. 국내 1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부산항 다음으로 광양항을 많이 이용했다.
올해도 지난 8월말까지 부산항이 1364만 8079TEU로 1위를 차지했고, 인천항과 광양항이 각각 2·3위로 뒤를 이었다. 인천항은 올해 누적 처리 컨테이너 물동량은 198만 3905TEU로, 전년 동기 대비 17.4% 증가했다. 반면 광양항은 같은 기간 145만 711TEU로 전년 동기 대비 5.8% 감소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도 광양항이 인천항에 뒤질 것으로 전망된다.
# 보수정부 9년 무관심과 예산 홀대
이러한 배경에는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관심과 예산 홀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의 제3차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2016∼2020년)에서도 광양항의 예산 홀대가 드러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광양항의 새로운 도약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전남 광양항 모습.
실제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항만 예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동안 해양수산부의 예산이 부산과 인천항에 집중됐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최근 3년간(2015∼2017년) 부산항 예산은 7935억 원, 인천항 예산은 4510억 원인 반면 광양항 예산은 655억 원에 그쳤다. 부산항과 인천항이 광양항보다 각각 12배, 7배가 많았다. 내년도 예산안 또한 부산항이 1770억 원, 인천항 1045억 원인데 반해 광양항은 215억 원에 그쳤다.
제3차 항만기본계획 수정 계획(2016~2020)상 항만별 사업비 투자 계획에서도 전체 투자액(14조 6412억 원)의 34%(4조 9847억 원)가 부산항에 집중됐으며 11.3%(1조 6526억 원)는 인천항에, 4.3%(6347억 원)는 광양항에 투자하도록 돼 있다.
반면 광양항은 고작 4.3%(6347억 원)에 그쳐 부산항과 인천항에 대한 투자액이 광양항 투자 보다 8배, 2.6배가 각각 많았다. 1985년부터 항만 정책의 기조였던 부산-광양 양항체제가 지난 9년 보수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지면서 부산항 중심의 원 포트 정책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해양수산부 고위직 간부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영남 출신들로 채워졌다. 해수부의 부산항 예산 집중이 심각한 이유가 영남 편중 인사인 셈이다. 황주홍 의원에 따르면, 해수부 장·차관과 실·국장 17명 중 영남 출신이 10명으로 절반을 훨씬 넘는다. 산하 공공기관장과 임원 35명(공석 제외) 중 15명(43%)도 영남 출신이다.
역대 해수부 장관들도 20명 중 13명(65%)이 영남 출신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해수부 인사의 영남 편중은 심각한 상황이다. 호남 출신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장승우 전 장관이 유일하다. 황 의원은 “해수부 주요 간부들과 산하 공공기관들 인사를 보면 영남 편중이 심각하다”며 “이렇게 인사가 특정 지역으로 편중되다 보니 예산도 부산항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정 지역만 키우고 다른 곳은 홀대한다면, 해양 강국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면서 “부산 지역 출신 장관이기에, 장관의 광양항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황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부산항을 글로벌 환적 허브항으로 육성하고 다른 항만들은 특화해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양항 제2도약을 위해 개발이 중단된 부두 및 수역시설 등 기반시설 확충을 비롯해 해양산업클러스터 지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분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분원 이전 추진, 초경량 마그네슘 소재부품단지 조성 등을 약속했다.
박칠석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