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호남파 “탈당 불사” 외치자 통합서 선거연대로 턴…선거연대도 회의적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대표가 지난 대선 때 토론회에서 참석, 악수하는 모습.
‘유 의원의 국민의당 호남파 백기투항 요구→호남파 탈당 움직임→국민의당 중진 의원 정책·선거연대 제안→안 대표의 수용….’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정치권 한 관계자는 “예상했던 수순”이라고 잘라 말했다. 양당의 이질적 요소인 ‘호남·햇볕정책·이명박(MB) 전 대통령’이란 세 개의 큰 산을 넘지 못했다. 친문(친문재인)계·친박(친박근혜)계·호남파 등 ‘3각 패싱 플랜’에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 과정은 파열음의 연속이었다. 여의도 안팎에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주도의 정계개편 흐름에 제어가 필요했던 안 대표와 유 의원의 ‘맞불 전략’과 ‘아마추어 리더십’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양당에 필요한 것은 존재가치 증명을 위한 ‘현상 유지’ 전략이었다.
중도보수통합 직전 정계개편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연정,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의 합당으로 이원화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계와 바른정당 자강파의 통합 논의가 촉발했다. 돌출 변수 이후 보수대통합 정계개편은 시계 제로에 빠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탈당 등 친박 청산을 놓고 갈등을 빚은 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폭로전을 전개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파의 헤쳐 모여가 사실상 무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연정도 마찬가지다. 이 모델은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김태년 정책위의장이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제안하고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호응하면서 물꼬를 텄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이를 ‘민주당의 장난질’로 규정하며 단칼에 잘랐다.
그 전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자강파의 통합 논의가 정치권을 뒤덮었다. 유 의원의 ‘박지원 출당 요구설’을 시작으로, 정국이 중도보수통합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딱 거기까지였다. 유 의원은 즉각 “출당 요구한 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당 호남파 의원과 동교동계 원로그룹은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김동철 원내대표와 주승용·조배숙·박준영 의원 등은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조찬 회동하고 ‘선 선거연대’로 뜻을 모았다. 사실상 중재안이다.
안 대표는 즉각 수용했다. 통합에 선 긋는 움직임은 바른정당 내부에서도 감지됐다. 자강파인 하태경 의원은 같은 날 한 라디오에 출연,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결과 당일 저녁 안 대표와 경쟁자였던 손학규 전 대표의 회동 사실을 전하며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밝혔다. 안 대표와 상의한 손 전 대표는 9월 하 의원을 만났다.
주목할 부분은 안 대표의 메시지와 유 의원의 반응이다. 안 대표가 당시 손 전 대표에게 전한 메시지는 통합이나 합당이 아닌 ‘전략적 협력’ 등에 그쳤다. 하 의원도 “합당까지는 생각을 안 한 것 같고 연대는 생각했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손 전 대표와의 만남에 앞서 당 지도부급과 상의했던 하 의원은 “유 의원은 시기상조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과 김무성 의원은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었다가, 최근 유화론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 중도보수대통합 추진은 ‘현상 유지’를 위해 강력한 블로킹이 필요했던 양당 창업주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맞불 작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과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다. 이 시기 양측이 민주당과 한국당 주도의 원심력 제어를 위한 승부수가 필요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이들이 한배를 타기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산적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햇볕정책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 MB로 향하는 적폐청산 논란 등은 양당의 화학적 결합은커녕 분열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디테일의 한계를 드러낸 안 대표와 유 의원의 리더십도 중도보수통합 급제동에 한몫했다. 정계개편 새판 짜기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정계개편 원투펀치인 이들이 보인 것은 중도보수통합의 판 깨기를 염두에 둔 ‘미필적 고의’에 가까웠다. ‘박지원 출당 요구설’에 휩싸인 유 의원은 10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의 원칙은 개혁 보수”라고 잘라 말했다. 유 의원이 박 의원의 출당을 안 대표에게 요청했다는 의혹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이다.
논란이 일자 안 대표는 “내부용 메시지”라고 선을 그었지만, 유 의원의 발언은 박 의원 등 호남파에 대한 백기투항 요구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는 중도보수통합에 브레이크가 걸린 단초로 작용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대표와 유 의원의 리더십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실제 보수통합을 외친 유 의원과 안이한 대처에 나선 안 대표의 조합은 국민의당 내부에 기름을 부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은 10월 24일 민주당 소속인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을 만나 통합 논의에 나섰다. 권 고문 측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면, 동교동계는 100% 탈당”이라고 안 대표를 압박했다. 당내 호남파와 동교동계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을 ‘보수통합’으로 규정한 뒤 안철수계를 전방위로 포위했다.
국민의당 중진그룹에서는 국정감사 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까지 거론했다. 초선인 이상돈 의원도 비대위 전환 여부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가세했다. 안 대표의 승부수가 당 원심력만 가중시킨 셈이다. 안 대표가 통합 움직임을 하면 할수록 내홍에 휩싸이는 반작용의 결과다.
이들이 가까스로 교집합을 찾은 정책·선거연대의 순항 여부와 시너지 효과 등도 회의적이다. 정책연대 효과를 높이는 전제조건은 민주당과의 차별화다. 그러나 양당은 대북 정책 등에서 현격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정책연대 과정에서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민주당에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선거연대는 더 큰 난제다.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양당 간 후보단일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다자구도는 피할 수 없다. ‘민주당 vs 한국당 vs 중도보수단일화’ 구도다. 승리를 담보할 수 없는 구도다.
전계완 평론가는 “한국당과의 통합을 전제하지 않고는 1 대 1 구도가 될 수 없다”며 “다자구도로는 선거연대가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와 유 의원의 시너지 조합도 판을 흔들 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리얼미터>가 10월 26일 공개한 통합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모든 정당 통합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38.7%로,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17.1%), ‘민주당과 국민의당 통합’(16.3%),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13.9%) 등을 압도했다. 이번 조사는 tbs 의뢰로 10월24일과 25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5.3%였다.
윤지상 언론인
정동영 천정배, 이번에도 존재감 미미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의 제2라운드가 펼쳐졌다. 판은 중도보수통합 정계개편이다. 맞짱승부 대상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호남계 대표주자인 정동영·천정배 의원이다. 이들은 지난 8월 전대에서 맞붙어 안 대표가 과반 득표(51.09%)를 획득, 정동영(28.36%)·천정배(16.60%) 의원을 꺾고 제1 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했다. 한때 이들은 반문(반문재인)계 핵심축이었다. 안 대표는 지난해 4·13 총선에 앞서 호남발 정계개편을 주도했다. 정동영·천정배 의원은 2015년 4·29 재보선을 앞두고 전격 탈당, 각각 국민모임과 무소속으로 일전을 치렀다. 정 의원은 낙선했지만, 천 의원이 광주 서구에서 조영택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체면을 살렸다. 이후 정동영·천정배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 직전 안 대표와 손을 잡았다. ‘양당 체제 혁파’와 ‘호남 기득권 타파’를 명분으로 내걸었으나, 사실상 반문 연대의 시작과 끝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실험은 성공했다. 그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광주 8석·전북 7석·전남 8석 등 호남 28곳 가운데 23곳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녹색 돌풍은 지난 5·9 대선에서 멈췄다. 안 대표(21.4%)는 문재인 대통령(41.1%)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24.0%)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안 대표는 광주(30.1%)·전남(22.9%)·전북(23.8%)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세 지역에서 각각 61.1%·59.9%·64.8%를 기록했다.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뒤집기 한판에 성공한 셈이다. 국민의당 녹색 돌풍이 사그라지면서 호남파 의원들의 입지도 축소됐다. 정동영·천정배 의원이 지난 8·27 전대에서 맥을 못 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분석가는 “당원들이 두 의원을 대권주자로 평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불과 두 달 전 안 대표에게 참패를 당한 이들은 중도보수 정계개편에서 ‘배제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안 대표의 리더십 한계와 호남파의 강한 반발 등으로 중도보수통합이 어그러졌지만, 두 의원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국민의당 호남파도 정동영·천정배 의원보다는 박지원 의원에게 쏠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당 개혁을 주도한 ‘원조 정풍운동’의 핵심이다. 신기남 전 의원과 함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으로 불렸다. 참여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풍 운동을 일으킨 이들은 참여정부에서 각각 당 의장(정동영·신기남), 장관(천정배) 등 주요 직을 맡았다. 이후는 말 그대로 ‘권불십년’이었다. 탈당과 복당 등을 반복한 이들은 어느새 구정치인으로 전락했다. 당내 호남파의 반발로 중도보수통합론은 사실상 무산됐지만, 이들의 탈당 불사론이 향후 정치적 입지를 얼마나 넓힐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황태자로 불렸던 정 의원과 개혁의 상징이었던 천 의원이 대권주자로의 부상 등 정치적 활로를 넓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