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개발비 없이 ‘뚝딱’…국내 AI 개발환경 양적·질적으로 역부족
한국형 AI 개발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결과물은 신통치 않다.
지난달 31일 ‘인간 vs 인공지능’이라는 타이틀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스타)’ 대회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엄청난 충격을 줬던 이세돌 vs 알파고를 연상케 하는 대결이어서 관심이 높았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5판의 대국이 벌어진 것과 달리 한 명의 인간 대표가 상대한 인공지능은 4개였다. 전세계 인공지능 1위 호주의 ZZZK와 2위 노르웨이의 TSCMO, 세종대학교에서 만든 한국의 MJ봇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만든 CherryPi였다. 하지만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인간 대표로 출격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송병구 선수가 압승을 거두며 4 대 0으로 이겼기 때문.
인공지능을 향한 찬사는 없었다. 오히려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경기결과를 떠나서라도 송병구 선수가 상대한 4개 인공지능의 성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외국 인공지능은 프로게이머 사이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완전 도박성 전략인 ‘4드론’을 꺼냈다. 이 같은 전략은 프로게이머인 송 선수에게 간단히 제압당했다.
‘세종대 알파고’인 MJ봇은 나머지 세 인공지능과는 달랐다. 유일하게 테란 종족을 골랐고 초반 도박 전략 대신 중장기 운영인 ‘원팩 더블’ 전략을 택했다. 물론 다른 인공지능처럼 송 선수에게 제압당하는 건 다르지 않았다. MJ봇도 초반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경기를 본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들은 ‘MJ봇에 20억 원이나 들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정도면 횡령수준’이라고 분개했다. 20년 전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 내장된 인공지능과 큰 차이도 없는데 20억 원을 어디에 썼느냐는 주장이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유저들은 인공지능이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으로 송병구 선수와 예측불허의 게임을 예상했는데 실수 연발에 무너지니 한심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나마 프로게이머가 아닌 일반인과의 대결은 6전 5승을 거뒀는데 이마저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일반인의 실력이 프로게이머 실력은 아닐지라도 아마추어 고수급은 돼야할 텐데 레더 1100점으로 아마추어 사이에서도 하수 정도였기 때문이다. ‘레더 1100점을 이기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고 홍보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번 인공지능을 개발한 김경중 세종대학교 교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잘못된 루머가 퍼졌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이번 인공지능은 올해 6월부터 대회 당일까지 4개월 정도 개발했다. 항간에는 20억 원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개발비는 전혀 없었다. 세종대가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으로 선정돼 연 평균 20억 원을 지원받는 사실과 혼동돼 이번 인공지능 개발에 20억 원이 들었다고 퍼진 것 같다. 그 사업과는 무관하게 이번 행사를 위해 준비했다“라며 ”또 20억 원이 아닌 1억 원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게임을 이용한 인공지능 개발, 딥러닝 적용 등 관련 연구에 1억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구와 이번 스타크래프트 인공지능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인공지능이 4드론을 쓰는 이유는 AI 대회에서 승률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대 인공지능의 경기는 풀리그전이라 평균 승률이 가장 높아야 하는데 의외성 전략인 4드론이 깜짝 전략으로 승률이 높아 유행처럼 번졌다. 우리는 인간과의 대결을 상정해 새로 인공지능을 만들었다”며 “이번 대회에서는 딥러닝을 사용하지 않은 인공지능이었지만 각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딥러닝을 적용하고 있다. 매년 8월 스타크래프트 인공지능끼리 대결하는 대회가 열린다. MJ봇도 내년 8월 이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김경중 교수와 송병구 선수. 사진=세종대학교 홍보실 제공
그렇다면 바둑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해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왜 아직도 걸음마 단계일까.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엄태웅 워털루대 연구원은 “이번 스타크래프트 인공지능은 데이터 기반의 딥러닝 방식이 아닌 기존에 하던 룰베이스라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엄 연구원은 “스타크래프트는 바둑하고 차원이 다르다. 바둑은 19X19의 선택지가 정해져있고, 스타는 마우스 클릭점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바둑은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는 상태에서 하지만, 스타는 상대의 정보가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 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상상해서 대처를 하는 거라 훨씬 어렵다. AI가 개발된다고 해도 그때그때 전투는 잘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곳에서 한국형 인공지능 논란이 일기도 했다. ‘네이버 스포츠’에서 만든 승부예측 프로그램 ‘축봇’이 그 주인공이다. 네이버 스포츠는 ‘축봇’이 K리그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가올 경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이다. 네이버 스포츠는 축봇과 인간이 각각 승부예측을 내놓아 예측 결과가 누가 더 맞는지 대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내놓는 예측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댓글에는 조롱 일색이다.
‘축봇 그냥 고철장에 파세요. 의미 하나도 없다. 그냥 수산시장 가서 문어를 한 마리 사오든가’ ‘제주 포메이션 뭐지. 김수범 스리백, 알렉스 미드필더. 어설프게 할 거면 하지나 말지’ ‘김민재는 시즌 아웃이다. 축봇 한참 멀었다’ 등등의 악플이 달렸다. 비난의 배경은 축봇이 부상으로 인해 일본에서 수술 예정인 선수를 선발 명단으로 예측하거나, 상식 밖의 포메이션을 내놓으면서다.
축봇 측은 ‘아직 베타테스트 단계’이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축봇은 학습을 통해 더욱 정교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AI가 알파고만큼의 충격 대신 아쉬움만 주는 이유는 뭘까.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기반기술을 갖고 발전시켜 플랫폼으로 만드는 쪽은 미국 회사들이 계속 주도할 것이다. 그런 결과를 가능하게 하는 인재와 문화, 자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별 결과물을 안타까워하기 전에 환경이 비교가 안된다는 지적이었다.
인공지능 전문가 A 씨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연구자나 개발자들이 게임이나 스포츠 말고 다른 일 하느라 바쁠 거 같고, 두 번째로는 서버 자원이 구글, MS, 아마존처럼 여유가 있는 곳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서버 자원이 많아야 일단 실험을 많이 해 보면서 이것저것 개선이 가능한데 그게 아니면 어렵다. 구글 정도가 아닌 곳에서 알파고같이 엄청난 건 나오지 않았다”며 “특히 서버는 돈이다. 그 영향이 크다. 또한 개발자도 미국 IT기업과 최소 20배쯤 차이가 날 것 같다. 질 이전에 양이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