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은 MB-우병우’ 소문…오너 리스크 털고가는 전화위복 계기 될 수도
지주사 전환을 통한 경영권 강화를 추진 중인 효성그룹이 예상 밖 암초에 부딪혔다. 사진 서울 마포구 효성 본사 전경. 박정훈 기자
앞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에 배당된 ‘효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조사2부에 재배당하고 내사를 벌여왔다. 수사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조사부 인력 대부분이 효성 수사에 투입됐다”며 “기존 고발건 외에 자체 입수한 첩보들이 꽤 있고, 내용도 꽤나 구체적”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지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신임을 받는 현직 최고 ‘칼잡이’(특수통)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맡았다. 윤 차장은 2014년 효성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신분으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과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을 직접 기소한 바 있다. 효성으로서는 이번 수사를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다. 효성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대해선 아직 밝힐 내용이 없고, 추측성 의혹에 대해선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재계 및 검찰 사정에 밝은 인사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수사의 ‘키맨’은 조현준 회장의 친구로 알려진 홍 아무개 씨다. 명지대 출신으로 효성 계열사 임원을 지낸 홍 씨는 2008년 효성이 만든 벤처투자사의 대표를 역임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홍 씨가 대표로 있거나 해당 벤처투자사가 지분을 가진 회사들을 효성 위장 계열사로 판단했다. 다만 공정위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 상호채무보증 등 위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효성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홍 씨가 대표를 지낸 부동산 개발 회사 ‘펄슨’은 효성의 보증을 받고 사업을 영위하다가 2008년 12월 보유 부동산을 비싼 값에 효성에 매각했다. 2007년 12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08년 1141억 원으로 증가했다. 또 2010년 설립된 건자재 유통 회사 ‘헨슨’은 효성 계열사 간 거래 과정에 개입해 중간 유통 마진 30억여 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헨슨은 ‘칼슨’으로 사명이 바뀌었고, 홍 씨는 회사 설립부터 헨슨 대표를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홍 씨는 2000년 설립된 ‘벤슨’이란 무역회사의 대표도 지냈다. 펄슨, 헨슨과 주요 임원진이 같은 벤슨은 조 회장에 대한 첫 번째 검찰 수사가 끝난 시점인 2014년 법인 해산 절차를 밟았다. 검찰은 이들 회사의 실소유주가 조 회장이라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홍 씨는 벤슨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세와 지방세 등 8억 5000만 원을 체납했다. 만약 조 회장이 벤슨 실소유주라면 2차 납세 의무가 생긴다. 이밖에 홍 씨는 조 회장과 공모해 2008년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 생긴 수백억 원대 손실을 효성에 떠넘기도록 한 의혹도 받고 있다. 효성 측은 “내부 확인에 시간이 걸린다”며 즉답을 피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 공소시효 등을 고려해 이르면 12월 중순께 조 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수사 때처럼 사건을 장기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조 회장은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이 1300억 원대 탈세 및 5000억 원대 분식회계 등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을 당시 법인카드를 사적 용무에 쓴 혐의가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 결과에 따라 진행 중인 항소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효성 내부는 이번 수사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 10년 전이라 대부분 자료가 남아 있지 않고, 2013년 검찰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중요 자료 등을 이미 폐기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더구나 7900억 원대 경영 비리 의혹을 받았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 조 회장의 경영 비리 총액은 미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법원은 재벌 경영 비리에 대해 오너 일가가 그 손실액을 보전할 경우 사실상 ‘면죄부’를 내렸다. 재계 관계자는 “횡령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너 일가 입장에선 회사가 자기 것인데 회사 돈을 일부 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것이 왜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의 단초는 2014년 효성가(家) ‘형제의 난’ 당시 조 회장과 갈등을 빚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제공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 전 부사장은 회사 지분을 정리하고 그룹을 떠나면서 계열사 임원들을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효성에 따르면 효성 측과 조 전 부사장은 이후에도 30여 건에 가까운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다. 이 가운데 법원은 지난 8월 조 전 부사장이 효성 측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또 조석래 명예회장은 지난 7월 경영 퇴진을 선언하고, 그룹 후계자로 장남 조 회장을 낙점했다. 다가올 임원 인사에선 조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약진할 것으로 전해지며, 추진 중인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이 완료될 경우 조 회장의 경영권은 훨씬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검찰 수사란 돌발 변수를 제외하고 조 회장에게 남은 악재는 동생 조 전 부사장과의 송사밖에 없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남은 오너 리스크를 털어내면 ‘조현준 체제’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효성처럼 ‘형제의 난’을 겪은 롯데의 경우 수사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신동빈 체제’가 확고해졌다. 또 효성은 롯데와 비교해 ‘형제의 난’에 따른 수사 강도가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 착수 타이밍과 윤석열 지검장, 윤대진 차장 등의 성향 등을 고려해 이번 효성 수사와 정치권을 엮는 시각이 적지 않다. 먼저 조석래 회장과 MB가 사돈관계기 때문에 효성 수사에 대해 ‘MB 압박용’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현 검찰 수뇌부 ‘핵심 타깃’으로 알려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사로 영입돼 ‘형제의 난’에 개입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 전 부사장과 ‘한 팀’을 이룬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미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조 회장은 박 전 대표 2심 공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수사의 대외적인 목표는 조 회장이지만 검찰이 칼끝을 바꿔 조 전 부사장을 겨눌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검찰 최대 관심사는 (효성이나 MB가 아닌) 우병우”라고 했다. 효성 측은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일축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