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발 정계개편론 “선거 위한 이합집산” 비판…3인방 리더십 한계도 걸림돌
둘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를 지렛대 삼아 포스트 별로 떠오르든지, 정치적 내상을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든지. 1차 승부처는 내년 6·13 지방선거다. 모든 패는 까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3인방의 생존기도 마찬가지다.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을 날릴지 알 수가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박은숙 기자.
통상적인 정계개편 결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의 구도를 흔드는 정계개편이다. 1990년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1997년 DJP(김대중 전 대통령·김종필 전 국무총리) 연합, 2002년 노·정(노무현 전 대통령·정몽준 전 의원) 단일화 등이 대표적이다. YS의 승부수와 DJ의 귀환은 기존 정치질서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이회창 대세론’에 맞선 노·정 단일화 역시 수세 국면을 단숨에 뒤집었다. 안 대표의 지난해 4·13 총선 승부수였던 국민의당 창당도 당시 이 같은 평가를 받았다. 안 대표의 승부수로 여의도는 16년 만에 여소야대·20년 만에 3당 체제의 시대를 열었다.
다른 하나는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이다. 이들은 판만 흔들 뿐, 기존 정치질서를 뒤바꾸는 역동성도 혁신성도 없다. 1997년 DJP 대항마 카드였던 한나라당 창당은 직선제 이후 이합집산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와 조순이 이끈 민주당의 합당은 그해 12월 대선 패배로 끝났다.
현재 민주당 계보를 잇는 2003년 열린우리당과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충청과 호남의 맹주를 각각 노리던 심대평의 국민중심당이나 구민주계 인사의 평화민주당 등도 이 길을 걸었다. 이들의 특징은 ‘반대 프레임’이다. 정치 구도를 단숨에 제압하는 정치적 수단 없이 특정 당·인사나 모든 정치권을 구태로 몰아넣는 식의 정치 문법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는 정계개편 성패를 가르는 1순위로 ‘시대정신’을 꼽았다. 실제 3당 합당은 ‘군사정권 종식’, DJP 연합은 ‘산업화·민주화의 결합’이란 시대정신을 관통했다. 현재 야권발 정계개편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보수 정계개편에 대해 “선거 승리를 위한 이합집산”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문(반문재인)·반박(반박근혜)계 프레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선 패배 3인방의 리더십도 문제다. 11월 20일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으로 출국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해외일정보다 특수활동비(특활비) 등 국내 정치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홍 대표는 출국에 앞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부 취재진과 만나 법무부의 검찰 특수활동비 의혹과 관련해 “국가정보원(국정원)의 특활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같은 달 18일 자신이 여당 원내대표 및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2008년 특활비 4000만 원 중 일부를 야당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에 이어 연타를 날린 셈이다. 적폐청산의 정치보복 논란을 일으키고 바레인으로 떠난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야당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받아치자, 베트남 일정 중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 부분은 내 기억의 착오일 수가 있다”며 “이것은 사쿠라(사기꾼) 논쟁을 일으킬 만한 일이 아니고 국회의 오래된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애초 주어 없이 ‘기억의 착오’라고 말했던 홍 대표는 논란이 일자 ‘내 기억의 착오’라고 수정했다. 원 의원은 “평소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홍 대표가 유독 이 일에 대해서는 모호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했다”고 꼬집었다.
홍 대표의 오발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홍 대표는 10월 9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군과 검·경 등 국가기관에서 자신의 수행비서관의 휴대전화 통신 자료를 조회했다며 ‘정치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수가 박근혜 정권과 탄핵 정국 당시 이뤄진 것으로 확인, 논란의 불씨는 일시에 꺼졌다. 홍 대표가 DJ정권 시절 자행된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오발탄에 그친 셈이다.
홍 대표의 극단적 발언도 리더십 약화에 한몫한다. 그는 19대 대선 유세 기간 중 “보수 우파들이 못 이기면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며 극단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여당 한 보좌관은 “양 진영이 결집하는 선거 때는 유효할 수는 있어도 지금은 대선 때만큼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바른정당 분당 과정에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9명이 탈당한 직후 “이제 문 닫는다”며 스스로 외연을 좁혔다.
정치권 안팎에선 바른정당 분당 이후 양당 체제로 회귀하던 정계개편이 홍 대표의 리더십 한계로 ‘4당 체제 유지’ 및 ‘보수정당의 분파’ 등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보수진영의 대구·경북(TK) 쟁탈전은 불가피하다. 보수진영에서 제기된 홍준표 대권 시나리오인 ‘2019년 당 대표 재선→2020년 총선 승리→2022년 대권 탈환’도 요원할 전망이다.
정계개편 시계추는 양당 체제가 아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소극적 연대를 전제로 한 4당 체제로 흘러가고 있다. 변곡점은 11월 21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의총)였다. 친안(친안철수)계와 호남파는 이날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을 놓고 5시간 30분간 끝장 토론을 벌였지만, “통합론으로 당이 분열되면 안 된다. 우선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자”는 취지의 원론적인 합의선에서 끝냈다. 호남파인 정동영 의원이 안 대표에게 공개 사과를 촉구하고 조배숙·유성엽·황주홍 의원 등은 ‘안철수 책임론’을 제기했지만, 양측은 전략적인 일시적 대오를 형성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YS의 3당 합당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선 “내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거듭 통합 의지를 드러냈지만, ‘평화개혁연대’를 구성한 호남파 설득에는 실패했다. 안 대표는 의총 전날 박지원 전 대표를 비롯해 박주선 전 비상대책위원장, 주승용 전 원내대표, 김동철 원내대표 등 전·현직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통합 논의에 ‘거리 두기’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연대→선거연대→당대당 통합’ 등의 3단계 통합론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철수 정치’의 민낯이 재연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안 대표의 어정쩡한 봉합 이후 호남파와 안철수계는 서로 “우리가 다수파”라고 주장, 통합론 제2라운드를 전개했다. 친안계인 최명길 최고위원은 “통합 찬성 9명, 통합 반대 9명, 연대 우선 9명, 유보 3명”이라며 이른바 ‘9·9·9·3’론을 펼쳤다. 친안계 박주원 최고위원도 통합 및 안 대표 재신임을 위한 국민여론조사를 하자고 반격에 나섰다. 반면 호남파 맹주 박지원 전 대표는 “(의총에서) 30명이 발언해서 20명은 통합 논의를 중단하자고 했다”며 ‘10·20’론으로 맞섰다.
안 대표의 통합 연결고리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이와 관련해 “새롭게 찾는 길에 우리 당과 공통점이 많으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묻지마식’ 통합보다는 속도 조절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도보수통합 핵심 두 축의 리더십이 느슨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의당 호남파의 세 결집 현실화와 바른정당 2차 분당 가능성이 맞물린 상황에서 결기 없는 리더십으로 존재감 약화만 자초했다. 명분만 쫓다가 타이밍도 실리도 잃고 있는 셈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철수·유승민 대표의 리더십 한계로 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의 ‘포스트 문재인’, 유 대표의 ‘보수정당 대표주자’라는 플랜도 물 건너갈 처지다.
전문가들은 “지방선거 정계개편 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정계개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타이밍과 내용이 중요하다”면서 “청와대로 이슈가 쏠린 상황에서 야권이 정계개편 이슈를 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기득권 내려놓기 등 주목도 있는 이슈의 전환 없이 기존 구도의 이합집산으로는 안 된다. 지방선거 정계개편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패배 3인방이 인위적인 정계개편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