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논에 물대기’ 행보 ‘피박’ 혹은 ‘쓰리고’
▲ 박근혜(왼쪽 사진). 정세균(오른쪽 사진). | ||
당분간 정국의 최대 현안이었던 미디어법 처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 ‘미디어 정국’을 보낸 여야의 잠룡들도 그 후폭풍을 두고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대권 주자’인 이들이 보인 입장과 처신은 민심의 향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여야 ‘빅4’ 잠룡들의 ‘미디어 전쟁’ 손익계산서는 어떠한지 따져보았다.
이번 ‘미디어 전쟁’의 중심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있었다. 박 전 대표가 던진 말 한마디로 인해 미디어 정국은 큰 격랑을 맞이하는가 하면, 폭풍전야에 놓이기도 했다. 박 전 대표 특유의 ‘화술정치’가 이번에도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 이후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높일 것인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박 전 대표는 우선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7월 15일 ‘매체합산 점유율 규제’를 대안으로 내놓은 데 이어 19일에는 직권상정을 강행시키려던 당 지도부를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말로 막아섰다. 결국 당 지도부가 민주당과의 최종협상 과정에서 ‘박근혜 안’을 대폭 반영하면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로 찬성으로 돌아섰다.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바뀌자 친박계 의원들도 법안통과에 협조했고 직권상정 절차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박 전 대표는 최종수정안의 ‘방송진입을 금지하는 신문의 기준을 구독률 25%에서 20%로 줄이자’고 요구해 수정안을 다시 ‘수정’하게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번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한나라당이 원했던 미디어법 통과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점에 대해선 여권 주자로서 정치적 소득이 있 었으나 이것을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여의도 정치상에서는 소득이 될 수 있으나 향후 미디어법 정책의 전개과정에 따라 박 전 대표에 대한 국민여론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가 행한 영향력만큼 그 여파도 크게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판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오랜 숙원 과제였던 미디어법 협상에 관해 소극적 입장으로 한 발 물러서 있었다가 결정적 순간에 ‘끼어들기’로 자신의 지분만 챙긴 것 아니냐. 무책임하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등 야권의 비난도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부담감도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이번에 보니까 역시 기회주의적 행보로 곁다리 정치, 줄타기 정치를 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강래 원내대표 역시 “지금까지 정치행태를 보면 중요한 순간에 말 한마디로 모든 결과를 따먹는 얌체 같은 짓”이라고 비난했다. 야당가에서 박 전 대표가 주장했던 ‘합의처리’ 의사마저 처음부터 거짓행태였던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사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브랜드’를 내 건 친박연대 내부에서도 미디어법 처리에 동참한 것이 ‘미디어법 직권상정 반대 당론’에 위배된다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23일 긴급 간담회장에서 정하균 의원은 “미디어법에 관한 당론이 직권상정 반대 아니었냐. 그런데 왜 일부 의원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행사했느냐”고 따졌고, 이에 찬성 표결을 한 노철래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수정안에 공감 의사를 밝히는 등 상황이 바뀌었지 않냐”고 주장하는 등 격론이 오갔다. 심지어 이 자리에서는 “박 전 대표의 입장 변화가 국민들에게 언행불일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를 존중한다면 실수한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고 바로잡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까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야당뿐 아니라 친박연대의 비판마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더구나 향후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 비판이 계속될 경우 이에 대한 책임론에도 휩싸일 것으로 보여 이번에 얻은 ‘정치적 자산’보다 대 권주자로서의 ‘대국민적 호감도’ 면에서는 잃은 것이 더 많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여야 협상을 위해 여당 강경파를 견제하고 수정안을 이끌어 낸 점, 결국 여권의 숙원 법안을 처리하는 데 일조한 점 등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사뭇 다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역시 이번 미디어 정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는 미디어법 통과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한계론에 직면하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세균 대표는 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나 미디어법 처리과정에서만큼은 강한 면모를 보이기 위해 애써왔다. 올 초의 ‘미디어법 전쟁’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1승’을 거두었던 정 대표는 그간 미디어법 강행처리 저지에 사활을 걸어왔다. “단식농성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왔던 그가 결국 단식을 불사하면서까지 전면에 나섰던 것에 대해 당내에서도 호응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7월 24일 그는 미디어법 직권상정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약속대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장외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정 대표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다. 지난 20일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정세균 대표의 단식농성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응답이 49.0%, ‘정치인으로서 단식농성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40.4%로 나왔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답변이 70.2%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된 여론조사에서도 ‘미디어법 처리를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거세졌다. ‘유보해야 한다’가 62.9%(KSOI 6월 25일 조사)→78.9%(7월 16일 조사), ‘처리해야 한다’가 28.7%(6월 25일 조사)→18.5%(7월 16일 조사)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미디어법이 통과된 현 상황에서 향후 민주당의 대응방향이 중요하며, 그 결과에 따라 ‘야당 리더 정세균’의 입지도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그동안 미디어법에 관해 대중들은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나의 관심사는 귀에 잘 들리는 ‘칵테일파티 효과’를 겪어왔다. 언론을 통해 미디어법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칵테일파티 효과는 시효가 길지 않다. 지난해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지금은 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칵테일파티 효과가 사라지고 실제로 미디어법 전개 과정이 생각보다 큰 우려가 없다고 생각되면 현재의 반대여론도 사그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주요 언론들이 긍정적 효과를 가시화해 ‘스토리텔링’ 효과를 더하게 되면 미디어법에 대한 반감이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미디어법 처리 이후’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그의 행보와 여야 대치 정국이 오는 10월 재보선과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 노 전 대통령 서거 변수의 효과가 줄어든 시점에 미디어법으로 국면 돌파의 키를 만들려던 민주당으로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난제가 남게 된 상황이다.
▲ 정동영(왼쪽 사진). 정몽준(오른쪽 사진). | ||
정 의원은 지난 7월 22일 “국민의 상식을 짓밟은 몰상식은 반드시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 만큼, 국민과 함께 반드시 바로 잡겠다”며 미디어법 통과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정동영 복당불가’ 입장에 변함없는 정세균 대표와의 관계가 복원되지 않는 한 정동영 의원의 ‘나 홀로 행보’가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조용히 물밑 행보로 ‘복당 여론’을 살펴왔던 정동영 의원으로서는 미디어법 정국 여파로 당내 ‘정동영계’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난관이다. 정동영계 초재선 의원 모임으로 알려진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 측에서도 “정 의원의 복당문제는 지금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의원으로서는 향후 친노 세력과의 규합 등 ‘범민주 세력연합’이 가시화될 경우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고 민주당 복당의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정몽준 최고위원 역시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입지 구축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간 정 의원은 미디어법에 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다소 방관적인 자세로 임해왔다. 지난 7월 21일 미디어법 최종안을 확정 발표하기 이전 비공개로 진행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금지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원희룡 의원의 발언에 대해 “원 의원 같은 문제인식이 중요할 수 있다. 선진당과 절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정도의 ‘소극적’ 발언을 내놓는 것으로 그쳤다. 일각에서는 그가 현대중공업 대주주로서 대기업의 미디어시장 진출과 관련된 발언을 조심스러워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재벌 기업 출신으로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역풍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 같은 ‘무색무취 행보’를 놓고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아 미디어정국에서 정 최고위원이 대권 주자로서 마이너스 효과를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