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30기 전후로 한 지붕 두 목소리…이일규 추념식·김관진 석방 등 이견 표출
하지만 젊은 판사들이 원하는 갑작스런 변화를 피라미드 상층부에 위치한 간부급(고등 부장판사) 대부분은 ‘잘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해 논란을 만든다’며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작은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의견을 SNS나 내부 인트라넷 같은 곳에 올리는 게 잦아지면서, 두 세대 간 의견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최근 이런 갈등에 김명수 대법원장 아들이 한몫 보태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판사 사건을 놓고 시끄러웠던 법원에 다시 작은 ‘파동’을 불러왔다.
사건의 발단이 된 행사는 12월 1일 열렸다. 대법원이 인혁당 사건 시 유일한 소수의견 제시자 이일규 전 대법원장 별세 10주기를 맞아 추념식을 개최한 것.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를 통해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군사독재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소신 있는 법관‘이라고 명시했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릴 때 유일하게 소수 의견을 낸 판사라는 점을 업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정보기관 요원의 법원 출입은 예삿일로 통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시국, 공안사건에 대한 중형 선고에 10여 차례나 소수의견을 내는 등 외부의 압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 판결을 위해 노력한 판사’라고 이 전 대법원장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를 놓고 ‘부적절한 행사와 홍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허용구 대구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7기)는 법원 내부망에는 비판 글을 올리고, 대법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인혁당 사건은 최악의 ‘사법살인’이라 불릴 만큼 피해자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 사건인데, 사법부로서는 사죄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를 한 법관의 치적이나 법원의 홍보 용도로 거론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허 부장판사는 또 군사정권에서 삼권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의 장을 지낸 사람을 추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추념식을 정부에서 거행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을 비판하는 글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아들이 곧바로 나섰다. ‘반박 댓글’을 단 것. 김 대법원장의 아들인 김한철 전주지법 판사(사법연수원 42기)는 허 부장판사의 글에 긴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대법원을 옹호했다. 그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유일한 소수의견이 이일규 대법원 판사였다는 점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며 “(대법원장 시절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 급으로 매도할 정도의 분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거다”라고 설명했다.
또 “아마도 법원에서 2007년에 최초로 법원장으로 장례식을 진행하기도 하였기에 대법원에서 추념식을 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시대를 판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이며 ‘대법원 행사는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내에서는 대법원장 아들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실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위치를 감안할 때 부적절한 글이었다는 것. 서울고등법원 A 부장판사는 “허 부장판사도 그렇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아들도 그렇고 둘 다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서도 “아버지가 우리 조직(사법부)의 장인데, 그런 글을 공개적으로 올려 대법원을 옹호하는 것은 단순히 평판사의 생각으로만 해석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등법원 B 부장판사 역시 “글을 올린 허 부장판사에 비해 기수도 한참 낮고 법원에 들어 온 지도 얼마 안 되지 않았냐. 한참 어린 평판사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평판사들 사이에선 “기수와 관계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게 좋은 분위기 아니냐”며 “허 부장판사도, 김 판사도 둘 다 ‘근거 있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게 더 건강한 조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얘기가 나온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했다. 연합뉴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적부심 판결을 놓고도 판사들 사이에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젊은 판사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얘기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문제 삼는 반면,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아주 좋은 판결’이라며 칭찬하는 분위기다.
앞서 국방부 심리전단 정치 댓글 관여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둘 다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됐다.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담당하는 형사합의51부 구속적부심 재판부는 두 명 모두 “구속할 필요가 없다”며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을 뒤엎고, 석방을 결정했다.
김동진 부장판사 페이스북 캡처
비판은 SNS를 타고 여러 매체에 기사화되기까지 이르렀다.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페이스북에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의 3회에 걸친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에 대해 동료 법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납득하는 법관을 한 명도 본 적 없다”며 “법관 생활 19년째지만 구속적부심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등부장 판사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앞선 A 부장판사는 “최근 구속적부심 결과를 놓고 ‘여론의 눈치만 보며 끌려가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에 ’법리대로 판단하라‘는 지침을 준 좋은 결정이라는 칭찬이 나온다”며 “이런 결정을 내린 신광렬 형사수석 부장판사에 대해 많은 동료들이 좋은 판결이라고 칭찬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법원 내 의견이 달라지게 된 배경을 놓고, SNS 활성화와 법원 내 소통 부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앞선 서울고등법원 B 부장판사는 “젊은 세대들은 SNS 같은 곳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익숙하지 않냐”며 “그런 세대들이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을 공식적으로 하다 보니 이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우리(고등부장판사)끼리는 사법연수원 30기를 전후로 정치·세대 간 차이가 발생해 분위기가 많이 갈린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부 평판사들은 “과거 대법원 법원행정처 등을 중심으로, 어떻게 ‘일처리’가 진행되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의사 처리 과정을 엘리트 판사 몇몇이 독점하면서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문제 삼는다’고 지적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