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위상 되찾으려는 의지 “흔들리는 문무일 리더십 강화할 명분”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여야간 자료제출 요구 공방을 지켜보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은숙 기자
명분은 평검사들의 ‘근무 안정화’를 위한 것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어제 인사위원회는 내년 2월 5일 전후로 평검사 인사를 하겠다는 것을 확정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검사들이 언제 인사가 날지 몰라 불안, 불편해 하던 것을 장관님 취임 후 개선시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그동안 ‘불확실한 인사 시점’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인사에 맞춰 이사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문제와 자녀들 교육(전학) 문제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인사가 ‘난다’는 얘기는 2~3달 전부터 나오지만, 정확한 시점을 몰라서 애를 많이 먹곤 했다”며 “가령 수요일 날 인사가 나서 금요일 날 아침 9시까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근무하라고 하면, 이틀 동안 하던 일을 정리해서 후임한테 넘겨주고 새로운 일을 인수인계 받아야 한다, 그 와중에 자녀 교육 문제나 부동산 등 부수적인 것도 해결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검찰 인사는 매년 이뤄졌다. 검찰은 때문에 지난 박근혜 정권 동안에는 매년 12월에서 2월 사이 인사를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12월 말에서 1월 초쯤 검사장 인사를, 그리고 1월 중순부터 2월 초 사이에는 중간간부(차장검사, 부장검사급)를, 그리고 2월 중순에는 평검사 인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수사 때문에 인사를 겨울에 하지 못했다. 결국 조기 대선 끝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8월)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의 이번 결정으로 평검사 인사를 약 6개월 만에 다시 하게 됐다. 통상 인사 발령 후 2주에서 3주가량은 업무나 사건 파악을 해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한 ‘손실’을 안고 가는 결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사 시점을 2월로 결정한 것을 놓고, ’대검에서 판을 흔드는 패로 인사를 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석인 검사장 인사를 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만큼, 그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의 힘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석(대구고검 차장검사,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 강력부장)인 검사장 자리는 모두 3곳. 검찰 인사위에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선 법무부 관계자는 “인사위원회에서는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국정원 수사 관련 구속 등에 따른 공백(검사장 인사) 등은 논의가 되지 않았다”면서도 “현재 공석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원포인트로 인사를 하는 것은 꼭 인사위원회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검사장 인사는 파급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검사장 인사는 검찰 전체 인사판을 흔드는 시작점이다. 피라미드 구조 형태의 조직에서 상층(검사장) 인사를 할 경우, 연쇄적으로 밑(중간간부급)에 더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검찰 인사권에 참여할 명분과 지분이 있는 문무일 총장에게는 ’자기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대검은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사이는 ‘냉기류’가 역력하다. 불편한 동거 관계 상태다. 검찰 내부에서 “문무일 총장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 현재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는 수사에 대검의 몫은 크지 않다. 국정원 수사팀에서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수사 지휘를 하는 대검찰청에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구속 등 방침까지 결정한 뒤 대검찰청에 ‘보고’를 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수사와 같이 예민한 사건의 경우 과거에는 수사 개시와 방향은 물론,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구체적인 결정 방향을 대검의 지휘를 받았다.
문무일 총장은 윤석열 지검장이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장호중 부산지검장(구속)을 수사한다는 것을 언론을 보고 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문무일 총장은 언론 보도 직후 장 지검장에게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내용들을 물어봤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는 5일 열린 검찰총장과 출입기자 간 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문무일 총장은 “올해 안에 적폐청산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겠다, 내년에는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민생사건 수사에 보다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년 인사 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국가기관 동원 정치 댓글 지시 의혹), 박근혜 전 대통령(국정원 특활비 상납)에 대한 각종 의혹 수사들을 끝내겠다는 ‘지침’을 준 것.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산하 지검, 지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하지만 이런 ‘지침’들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사전 호흡이 없었다는 게 서울중앙지검 내 중론이다. 서울중앙지검 흐름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검사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고 문 총장은 얘기했지만, 일부 수사팀 검사들은 문 총장의 발언에 ‘벌써 12월 초인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아직 혐의도 제대로 다 특정이 안 됐는데 어떻게 올해 안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느냐. 국정원 특활비처럼 수사를 하다보면 새로운 혐의들이 튀어 나오는 게 특수수사의 특성인데 어떻게 끝낼 시점을 정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나왔다”고 전했다.
결국 법무부가 결정한 2월 인사를 봐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중 기싸움의 승자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신뢰를 받고 있는 문무일 총장과 윤석열 지검장 가운데 누구의 ‘인사권’이 더 반영됐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 관계자는 “이번 2월 인사 때 1년 가까이 고생한 검사들 대부분 다른 지검, 지청으로 인사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고 말했는데, 이 빈 자리의 폭이 얼마나 될지, 그 자리에 ‘누구의 사람’이 가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