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고 돌아온 야수들 “지금 몹시 배고프다”
‘복귀=실패’라는 시각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들 3명의 복귀 과정과 몸값은 야구팬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각자의 분명한 사연이 존재하지만 KBO리그 최고의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하고 서둘러 보따리를 싸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은 한국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현수, 박병호, 황재균이 한국 야구로 돌아오는 과정과 그들이 펼쳤던 미국 야구 생활을 되짚어 본다.
김현수는 LG 트윈스와 4년 115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사진= LG 트윈스
2년 전인 2015년 12월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00만 달러의 계약을 이끌어낸 김현수는 KBO리그 타격왕 출신으로 10년간 평균 타율 0.318을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김현수의 타격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김현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자마자 마이너리그행 지시와 맞섰고, 벅 쇼월터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김현수는 당시 볼티모어를 찾았던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도 야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적응만큼은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곳 세계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걸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타격 코치와 연습에 몰두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김현수는 플로리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고 시범경기서부터 시즌을 경험하는 동안 야구 인생 전체를 견줄 만한 아픔과 희열을 반복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메이저리그라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 여태까지 내가 했던 야구는 야구가 아닌 것 같다는 자괴감 때문에 괴로웠다.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게 어려웠다. 메이저리그에 있는 내가 자꾸 낯설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내 야구를 되찾고, 자신감을 회복하니까 내가 알던 ‘김현수’로 돌아오게 되더라. 앞으로 분명 또 다른 부분에서 벽에 부딪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두렵지 않다.”
김현수가 가장 힘들어 했던 시기는 2016시즌보다 2017시즌이었다.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출전 기회가 주어질 거란 예상과 달리 외야수 경쟁자들이 눈에 띄는 성적을 내면서 김현수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좌투수 상대로만 출전하지 못했던 데서 어느 순간부터 우투수를 상대로도 벤치를 지키는 시간들이 늘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증명해 내려고 준비했던 많은 부분들이 묻히고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보는’ 선수가 돼버리니 그가 가졌을 내적 갈등은 증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 했다. 올 시즌 2년 계약을 마무리 짓고 귀국했지만 KBO리그 복귀보다는 미국 재도전을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김현수의 에이전트는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하려고 귀국 후 KBO리그 구단들의 영입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구단에서 선수 관련 문의 전화를 해올 때마다 미국 윈터미팅이 끝날 때까진 정식 오퍼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했기 때문에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 윈터미팅에 참가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몇몇 구단들과 미팅을 가졌지만 의견 교환만 나눴을 뿐 구체적인 조건을 주고받진 못했다. 거취 문제가 해를 넘기게 되면 선수는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와 상의 끝에 KBO리그 복귀를 결정했고 그때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LG 트윈스와 계약을 성사시키게 된 것이다.”
2015시즌 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입찰제도)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던 박병호. 미네소타 트윈스가 1285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하면서 트윈스 유니폼을 입게 됐고 박병호는 미네소타와 5년 최대 18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박병호는 입단 첫 해인 2016시즌에 62경기에서 12홈런을 몰아치며 장타력을 뽐냈지만 0.191(215타수 41안타)의 낮은 타율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시즌 중반에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았고 올 시즌을 앞두고서도 40인 로스터에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박병호는 1월 초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일요신문DB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이었던 박병호는 시범경기를 통해 19게임 타율 0.353 6홈런 13타점을 올렸지만 미네소타 구단은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박병호를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냈다. 마이너리그 시즌 개막 후 4경기에서 타율 0.375를 기록하며 순항하던 박병호는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순탄치 못한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박병호는 기자에게 이런 진심을 털어 놓았다.
“중요한 시기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니까 나 자신한테 화가 많이 났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다. 화가 나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올라설 수 있도록 재활 프로그램을 충실히 소화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해보니 여기서 뛰는 선수들 모두가 열정이 강한 선수들이었다. 모두 치열하게 야구를 하더라. 이들의 성실한 훈련 태도를 보며 배우는 것도 많다.”
박병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진 않았다.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참고 인내하는 중이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 살다 가는 것 아닌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는 것이고, 이런 야구도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렸을 때 그때 잘 참고 잘 견뎌냈다고 대견해 하고 싶다. 만약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웃으면서 가고 싶다. 그게 지금까지 날 응원해주는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박병호는 참으로 불운했다. 자신을 영입한 테리 라이언 단장이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물러났었고 이후 새로운 단장이 오면서 선수단 운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박병호도 이 부분은 안타까워했다. 이전 단장이 추구했던 야구와 새로운 단장의 야구관 차이로 인해 거포인 자신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마친 박병호는 귀국 대신 미국에 남아 훈련을 이어갔다. 아주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미국에 가족들이 함께 있지만 귀국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미국 야구에 대한 절박함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박병호는 미네소타와 5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3년의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년 시즌에도 비슷한 환경에서 야구한다면 박병호 스스로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KBO리그 복귀를 결심한 박병호는 에이전트를 통해 2019시즌까지 보장된 계약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네소타 구단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구단도 이를 수용함으로써 넥센으로의 복귀가 급물살을 이뤘다.
박병호를 현지에서 도왔던 한 지인은 기자에게 “복귀를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이후 과정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면서 “야구보다는 가족들과 떨어져(박병호 아내와 아이는 미네소타 구단이 있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생활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지속하는 걸 힘들어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박병호는 1월 초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이들보다 먼저 복귀 의사를 밝혔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도 올 시즌 파란만장했던 시간들을 경험했다. 그는 마이너리그 시즌이 종료되기 전부터 KBO리그 복귀를 염두에 뒀다. 스플릿 계약으로 한 시즌을 보낸 이후 내린 현실적인 결단이었다. 선수와 구단이 메이저리그 신분과 마이너리그 신분일 때의 계약 조건을 달리하는 스플릿 계약은 황재균에게 미국 야구의 재도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만약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올 시즌과 비슷한 조건의 계약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보장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야구를 지속해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경험했던 황재균은 “후회는 없다. 야구보다 더 중요한 인생을 배웠기 때문”이란 메시지를 남겼다.
황재균은 스프릿 계약으로 한 시즌을 보낸 이후 KBO리그 복귀를 결정했다. kt 위즈와 4년 88억 원에 계약했다. 사진=kt 위즈
초청 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소화했고 캠프가 끝난 후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가 시즌 중에 빅리그로 콜업된 후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던 황재균. KBO리그로의 복귀가 행복을 보장해 주진 않았다. kt 위즈와 계약을 맺기 전까지 온갖 추측과 소문들이 난무했고 계약 내용이 알려졌을 때는 거품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브루스 보치 감독은 현장을 찾았던 기자에게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과 관련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나타냈었다.
“스플릿 계약을 맺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자리를 차지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어떤 선수가 스플릿 계약을 원하겠나. 스플릿 계약임에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고 싶어 그런 내용의 계약을 수용하는 게 아닌가. 미국까지 온 해외 선수들은 심적으로 두 배 이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선수들이 다른 나라의 리그에서 뛰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황재균은 끊임없이 노력했고 인정받은 부분도 있다.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황재균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계약을 보장받지 못한 선수는 그 계약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박병호처럼 5년 계약이 보장된 선수도 구단 수뇌부의 교체로 마이너리그 생활을 감수해야 했고, 김현수처럼 마이너리그 대신 메이저리그 무대를 지켰지만 그라운드가 아닌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일도 감당해야 했다. 스플릿 계약임에도 빅리그 콜업을 경험했던 황재균은 그 계약 자체가 기회를 제한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을 곱씹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의 미국 야구를 실패로 정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도전자의 모습으로 확대하지만 아팠던 만큼, 쓰라렸던 만큼 야구의 배움은 깊고 진해졌을 것이다. 이제 야구로 다시 증명해내면 된다. 이들을 향한 비난과 응원이 뒤섞여 있다고 해도 분명한 건 내년 시즌 KBO리그가 굉장히 흥미진진해질 거라는 사실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KBO 정상급 타자들의 귀환, 박병호 ‘홈런왕’ 탈환할까 명예 회복! 박병호, 김현수, 황재균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3명의 선수들은 KBO리그 정상급 타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복귀는 소속팀은 물론 KBO리그 전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병호는 2012~2015년 시즌 홈런왕을 차지했다. 특히 2014, 2015시즌은 2년 연속 50홈런(2014년 52홈런, 2015년 53홈런)을 달성했다. 박병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홈런왕 자리가 SK 최정의 몫이었다. 2016년 생애 첫 40홈런 고지를 밟았고 올해는 46홈런으로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 과연 2018시즌에는 누가 홈런왕에 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KBO리그의 ‘타격 기계’로 불렸던 김현수는 올 시즌 타율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김선빈(KIA 타이거즈, 0.370), 박건우(두산 베어스, 0.366), 박민우(NC 다이노스, 0.363) 등과 타율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황재균은 미국 진출 직전의 성적이 타율 0.335(9위), 27홈런(8위), 113타점(7위)을 기록했다. 생애 처음으로 3개 부문 톱10 진입이었다. 1년 만의 복귀 무대에서 이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더욱이 탈꼴찌를 염원하는 kt 위즈의 팀 성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수원 야구에 ‘황재균 효과’를 기대하며 거액을 안긴 구단의 바람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