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15년 정은순 “슬슬 코트가 그리워” ‘변코비’ 변연하 “여성 최초 대표팀 감독이 꿈”
1990년대 아시아 최고 센터로 불렸던 정은순을 비롯해 유영주, 전주원, 김영옥, 정선민, 김지윤, 박정은, 이미선, 신정자, 변연하(개인 사정으로 불참)를 비롯해 현역 선수인 임영희, 박혜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들의 출현에 농구장을 찾은 팬들은 뜨거운 함성을 보내며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은퇴 후 해설위원, 코치, 주부 등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자농구 레전드들을 만나 은퇴 후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리그 출범 20주년을 맞아 선정한 ‘그레잇(GREAT) 12’.
WKBL이 발표한 ‘그레잇 12’의 첫 번째 인물은 ‘미녀 센터’ 정은순(46)이었다. 정은순은 WKBL 최초의 트리플더블 기록자였고 초대 WKBL MVP를 수상했으며 13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센터로 활약했었다. 2003년 현역에서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농구교실을 운영했던 그는 현재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농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올스타전에서 ‘그레잇 12’로 선정된 소감에 대해 “12명 중 첫 번째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서 “오랜만에 관중들 앞에 선 기분이 남달랐다”고 설명했다. 해설위원으로 만나는 농구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어느덧 은퇴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지금 뛰는 선수들을 보면 ‘내가 저 선수처럼 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코트가 두려움으로 다가오더라. 그런 두려운 곳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내 자신이 대견하다.”
예상보다 은퇴 시기가 빨랐던 정은순은 덕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딸을 두고 있다. 올스타전에서 은퇴한 옛 동료들을 만나 근황을 주고받다가 자녀들 나이를 확인하면서 자신이 그중 제일 진도가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 결혼을 안했거나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거나 이제 막 아이 낳고 키우는 후배들을 보면서 걱정이 들더라. 은퇴할 때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아쉬움이 컸는데 지금은 은퇴 시기가 빨랐던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때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고1이 되는 딸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를 닮아서 키가 큰 딸은 정은순의 바람과 달리 농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정은순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3, 4위전에서 만난 브라질과의 경기였다. 엉덩이 부상을 딛고 투혼을 펼쳤지만 아쉽게 4위에 머물렀던 상황이 지금까지도 회한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영주, 전주원, 정선민 등은 소속팀보다 대표팀에서 더 많은 생활을 했던 대표팀 주축 멤버들이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라 팀워크가 상당히 좋았다.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쉽게 놓친 부분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정은순은 아직 프로팀 지도자 경력이 없다.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다시 합숙 생활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결정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그때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단체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지금은 모든 면에서 자유로워졌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여자농구의 미래를 위해 후배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고 싶다.”
공포의 파워포워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포워드. 한 경기 55점 대기록 달성. 바로 유영주(46)를 가리키는 수식어이다. 2001년 은퇴한 유영주는 은퇴하자마자 여자프로농구 최초의 선수 출신 코치가 됐다. 국민은행(KB) 코치로 2004년까지 활동하다 박광호 감독이 시즌 중 사퇴하는 바람에 감독대행을 맡다가 이후 KDB생명 코치를 역임했다. 현재 STN 해설위원인 유영주는 “처음 국민은행 코치를 맡았을 때는 은퇴하고 한 달 만의 일이라 요령이나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면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언니’라고 날 따라다녔던 후배들이 갑자기 ‘코치’로 나타난 내게 적응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고 당시의 모습을 회상했다.
“KDB생명에서 코치로 다시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주로 2군을 담당했었다. 구단에서 선수들을 잘 가르쳐 달라고 해서 체육관을 사용하지 못할 때는 야간에 차의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운동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내게 지도자의 기회가 주어질까 싶다. 미국이나 대만 등은 여자팀을 여성 출신의 지도자들이 이끌어 간다. 우리나라는 남자농구 출신이 감독을 맡고 있어 그 벽을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전주원(우리은행 코치), 정선민(신한은행 코치), 이미선(삼성생명 코치)한테는 잘 버티고 이겨내라고 부탁했다. 여자 코치들이 늘어나야 후배들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영주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은 엄마를 따라 농구선수로 활약 중이다. 이번 올스타전에서 ‘그레잇 12’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쌍둥이들로부터 “엄마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감동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정선민
‘천재 가드’ 전주원(45)과 ‘바스켓 퀸’ 정선민(43)은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한국 여자 농구의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만 만났던 그들은 정선민이 2006년 11월, FA 신분으로 KB국민은행에서 신한은행으로 이적하면서 함께 ‘레알 신한’ 왕조를 만들어갔다. 전주원은 2011년에, 정선민은 2012년 4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전주원과 정선민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꼽았다. 특히 전주원은 B조 예선 마지막이었던 쿠바와의 경기에서 한국 농구사상 첫 올림픽 트리플더블(10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을 작성, 8강 진출의 1등공신이 됐다. 정선민의 설명이다.
“시드니 올림픽은 우리가 질 줄 알았던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준결승전까지 진출했었고, 준결승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브라질과 3, 4위전을 치르며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비록 동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언니들과 함께 짜릿한 승부를 즐기며 재미있게 농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주원은 2002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올랐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그때는 유영주, 정은순 언니가 없었다. 나랑 선민이가 중심이 돼 팀을 이끌었는데 농구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른 것이다. 정말 가슴 벅찼던 순간이었다.”
전주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두 사람이 모두 대표팀에서 뛰지 못했다. 전주원은 임신 중이었고, 정선민은 발목 수술을 받은 탓이다. 전주원은 이후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했고, 정선민은 2007년 인천에서 열렸던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면서 여자농구의 황금 세대로 불렸던 변연하, 박정은 등과 함께 결승에서 만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데 앞장섰다. 2010 체코 세계여자선수권대회가 정선민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사석에선 세상 둘도 없는 친분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코치 신분으로 맡고 있는 팀이 다르다보니 승부가 펼쳐질 때는 더없이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빗대 ‘변코비’란 별명으로 사랑을 받았던 변연하(37). 그는 이번 올스타전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도자 연수 중이기 때문이다.
변연하는 1999년 삼성생명 소속으로 데뷔 후 그 해 신인상을 시작으로 WKBL 통산 545경기에 출전하면서 베스트5 10회, 정규리그 MVP 3회 수상 등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통산 3점슛 역대 1위(1014개), 득점과 가로채기 역대 2위(7863점/843개), 어시스트 역대 3위(2262개) 등 굵직굵직한 기록들을 남겼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대표팀에서도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 2002부산아시안게임 은메달, 2007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우승, 아시아농구선수권 준우승(2005, 2009, 2013), 2002세계선수권대회 4강 진출 등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변연하
전매특허인 스텝백 3점슛이 트레이드마크였던 변연하는 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예비 지도자로, 부푼 꿈을 안고 미국 생활 도전에 나섰다. 그가 문을 두드린 스탠퍼드대학 농구팀은 지도자 연수를 신청한다고 해서 아무나 받아주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프로필과 경기 영상, 성적 등을 정리해서 학교에 제출했는데 스탠퍼드대학에서 면밀히 검토 후 농구팀 스태프들과 상의 후 변연하의 연수를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3점슛 여왕’ 변연하는 통산 1014개의 3점슛을 기록하기 위해 하루 1000개의 슛 연습을 해야만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한다. 지난 시즌 은퇴식을 위해 귀국했던 변연하를 직접 만났던 기자는 그로부터 통산 역대 1위 3점슛의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오전 오후 야간 훈련까지 소화하고 매일 1000개의 슛을 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그럴 때는 새벽 훈련도 불사했다. 어느 정도 슛 폼이 잡히고 감각이 몸에 배이면 조금씩 연습량을 줄였다. 슛 연습을 많이 한다고 성공률이 높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변코비’ 변연하는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실제 만났던 일화를 털어 놓았다.
“2008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다가 선수촌에서 실제 코비 브라이언트를 봤다. 농구 경기도 직접 가서 관전했는데 장난이 아니더라. ‘변코비’란 별명이 너무 황송했을 정도이다.”
변연하는 농구인생의 최종 종착지를 묻는 질문에 여자선수 출신 최초의 농구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자신의 꿈이 더 명확해졌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기와 함께 처음으로 농구장을 방문했다는 ‘리바운드 여왕’ 신정자(37). 선수 시절 출발은 식스맨이었지만 이후 주전 자리를 꿰찼고 대표팀에도 선발되는 등 그의 농구인생은 다른 레전드들과는 색깔을 달리했다. 1999년 데뷔해서 2015-2016시즌 은퇴한 신정자는 선수 시절 가장 많은 경기(586경기)에서 뛰었고 가장 많은 리바운드(4502개)를 잡는 등 빼어난 이력을 자랑한다. 은퇴 후에는 육아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농구보다 육아가 몇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몸은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행복함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이를 키워 놓은 뒤 농구 관련 일을 하고 싶은데 항상 길이 열려 있는 게 아니라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은퇴 후 공부를 하려 했는데 육아가 더 중요했고 현실로 닥친 일이라 지금까지는 다른 걸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박정은
19시즌 동안 통산 486경기(역대 2위)에서 6540점(역대 4위) 3점슛 1000개(역대 1위), 어시스트 1776개(역대 6위) 리바운드 2664개(역대 5위)등을 기록했던 박정은(40)은 삼성생명 코치로 활약하다가 2016년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현재 재능기부로 아마추어 농구인들과 만나고 있다.
올스타전 행사에 앞서 기자와 만난 박정은은 “오랜만에 언니들 보니까 마치 친정 식구들 만난 듯 반갑고 재미있다”면서 “특히 (정)선민 언니와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진 못했어도 워낙 대표팀에서의 추억이 많아 더 반가운 것 같다”고 남다른 감회를 나타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