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업계-여성단체 “콘돔자판기는 청소년 인권 보호” VS 종교계 “피임은 편법이자 교육적 오류“
지난 14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성인용품점 앞에 청소년만 이용할 수 있는 콘돔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콘돔의 기원은 명확치 않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왕조 당시 콘돔은 돼지나 염소의 맹장이나 방광으로 만들어졌다. 생식기를 곤충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콘돔의 역사는 비밀스러웠다. 콘돔은 비밀의 장막 뒤에 숨어 있었지만 역사는 콘돔을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바람둥이로 불리는 카사노바는 자서전에서 “콘돔을 사용하기 전에 항상 입으로 불어 검사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콘돔은 ‘금기’의 언어였다. 콘돔의 목적은 ‘피임’이지만 ‘성관계’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을 수 밖에 없었다. 콘돔이란 단어를 꺼내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1918년이 되어서야 미국이 합법적으로 콘돔 사용을 인정한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콘돔은 편의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한 물건이다. 지하철역에서도 콘돔은 자판기 안에서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콘돔을 포함한 성인용품을 버젓이 ‘드러내 놓고’ 팔고 있는 개방형 매장들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콘돔 유통을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할 것일까”라는 난제에 부딪쳤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이 같은 난제에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시가 청소년들의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일선 학교에 ‘콘돔 자판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시 측은 ‘검토 단계’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이미 여론은 폭발 직전이다. 천주교를 포함한 종교계는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일부 여성단체와 콘돔 공급 업체는 ‘적극 찬성’으로 맞서고 있다. <일요신문i>는 이들 단체의 입장을 인터뷰해 ‘학교 콘돔 자판기 도입’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짚어봤다.
가톨릭계 성교육 연구소인 ‘사랑과 책임 연구소’ 이광호 소장은 콘돔자판기 도입에 대해 “피임은 편법이다. 권리가 아니다. 책임을 피하는 법을 정석인 것처럼, 공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 오류다”며 “학교 공교육 현장에 국가예산으로 콘돔자판기를 도입하는 것은 성관계를 조장할 뿐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콘돔 보급’보다 청소년들을 위한 ‘책임 교육’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김효경 광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은 이 소장 의견을 반박했다. 김효경 사무국장은 “청소년의 성관계 비율은 꽤 높은 편이고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학교 성교육이 ‘피임’을 기본전제로 출발하는 까닭이다”며 “피임은 편법이 아니다. 형법상 미성년자의제강간 규정에 따라 13세 이상이면, 청소년들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사용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형법은 13세 미만자에 대한 성교에 대해 동의여부를 불문하고 의제강간죄로 처벌하고 있다.
이브콘돔(콘돔 공급 업체) 측도 이광호 소장의 의견을 반박했다. 이브콘돔 관계자는 “공교육 현장에서 이미 책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 중의 하나인 ‘피임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콘돔자판기는 임실중절 등 최악의 인권 끝자락에 있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피임’도 청소년들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이광호 소장은 “피임이 청소년의 권리라고 할 수 없다”며 재차 강조하면서 “콘돔을 파는 상인들은 피임을 권리라고 포장할 수 있다. 콘돔 회사가 돈을 가장 쉽게 버는 방법은 국가예산으로 콘돔을 구입해서 학교에 자판기를 설치하거나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영업논리를 청소년 인권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돔 공급 업체들의 콘돔자판기 찬성 입장을 표하는 배경에 ‘상업적인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콘돔 공급 업체 관계자는 “청소년들은 열악한 현실에 내몰려있다. 비닐이나 랩으로 피임을 하고 있다. 성병 노출이 빈번하고 임신중절(낙태)와 사회 격리 문제가 심각하다”며 “학교에 콘돔 자판기를 도입하는 것은 피임에 대한 청소년들의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여성단체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앞서 이효경 사무국장은 “돈이 없는 청소년들이 랩으로 피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콘돔 자판기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손쉽게 피임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과 이효경 사무국장의 의견에 따르면 콘돔 자판기가 임실중절, 성병 등 청소년들이 성관계로 인해 겪는 심각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광호 사무국장은 해외 사례를 근거로 반박 논리를 폈다. 그는 “콘돔자판기를 도입해도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성관계로 일어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청소년들이 콘돔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나라이지만 청소년들 절대 다수는 성관계를 안 한다”며 “책임 교육 때문이다. 미국에는 ‘미혼부 책임법’이 있다. 책임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콘돔 자판기는 어불성설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콘돔 사용률이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낙태 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돔 공급 업체의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성인들도 콘돔 사용률이 매우 낮다. 청소년 시기 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다”며 “콘돔 착용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성년기에서 들어서도 콘돔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콘돔자판기는 교육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광호 국장의 이런 의견에 재차 반박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의 ‘미혼부 책임법’의 권한은 강력하다. 여자친구가 임신하고 남학생이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운전면허 정지, 여권 사용 정지, 벌금, 구속 등 강제조항이 발동된다”며 “즉 책임 교육이 먼저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상상할 수 있는데도 서울시가 콘돔자판기를 보급하는 것은 ‘임신만 안 하면 된다’는 신호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