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vs 개발 극과 극…상생 물 건너가나
옥정호 전경.
4억 6600만 톤의 담수량을 가진 옥정호는 행정구역상 임실군 소재에 있다. 옥정호는 섬진강댐 조성으로 인해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계화도 간척지 등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며 실향민이 된 수몰민의 삶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대(大)를 위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2만여 수몰민들의 아픔을 지난 50여년간 옥정호는 수십만 명을 살리는 생명수로서 보답해왔다. 옥정호의 물은 정읍, 김제, 부안의 농업용수로 3억 5000만 톤을 쓰고 있고, 정읍의 생활용수로 3285만 톤이 사용되고 있다. 임실군은 옥정호를 생태, 문화, 교육, 관광이 어우러진 국내 최고의 친환경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50년 서린 임실군민의 애환을 치유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옥정호를 둘러싼 정읍시와 임실군 사이의 갈등은 뿌리 깊다. 1라운드는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둘러싸고 맞붙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이 갈등은 옥정호의 상류지역인 임실군이 물을 전혀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전체 면적의 46%가 개발제한을 당하고 있어 주민 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국민권익위원회와 전북도에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해 정읍시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다가 정읍시, 임실군, 순창군 등 옥정호 수변 3개 시·군은 2015년 5월 26일 전북도 중재로 “옥정호를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수질을 개선하고, 개발할 때는 시·군 간 유기적인 협의를 통해 수질을 보전한다”는 조건으로 시·군 상생협력을 선언한 뒤 임실 관내 상수원보호구역을 2015년 8월 6일 전면 해제했다. 임실군 전체 토지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옥정호의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는 보호구역이 과도하게 지정됐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재조정 의결에 따른 것으로, 1999년 8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16년 만에 이뤄졌다.
그러나 봉합된 듯했던 갈등은 임실군이 옥정호 수상 레포츠타운 조성 사업 카드를 꺼내들면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임실군이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협약서에 명시된 정읍시와 협의를 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옥정호 수상레포츠타운 조성사업은 임실군에서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해제된 임실군 운암면 일원에 64억 원을 투입해 내수면을 활용한 수상레저센터를 건립하려는 사업이다.
그러나 임실군이 옥정호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옥정호 물을 생활용수로 쓰고 있는 정읍에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조건 삼아 수면을 개발하려면 양쪽이 서로 협의하겠다’는 앞서의 상생협약 조항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이에 임실군의 비형평성 주장과 정읍시의 피해의식이 불러 온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해 온 전북도의 입장도 난처하게 됐다.
“소지역주의 중단하라.” 임실군 옥정호 상생발전협의회 김중연 위원장이 전북도의회 기자실에서 회견을 열고 “현재 군에서 추진하는 수상레포츠 시설사업은 정읍시 상수원 수질오염과는 무관한데도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전북도의회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2016년 11월 전북도가 중재에 나서 ‘선수변, 후수면’ 개발방식으로 양 시·군의 합의를 조정했다. ‘선수변, 후수면’ 개발은 옥정호 수변개발을 위한 관련 사업들을 조속히 추진하되 수면이용은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뒤 환경영향평가 이후 논의해 나가자는 내용이다. 이로써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였다. 하지만 최근 전북도가 옥정호 수상레저단지 연구용역을 진행함으로써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도는 올해 옥정호에 수상 레포츠 시설을 위한 타당성 검토 용역(용역비 3억 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읍시는 용역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정읍시는 옥정호 수면이용이나 개발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정읍시와 주민들은 전북도와 임실군의 움직임에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간의 연구용역 대부분이 발주기관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임실군에서 정읍시민의 식수원인 옥정호를 단순한 개발의 대상으로 삼아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자세와 전북도의 숨은 의지가 결합된 단기적 사고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 정읍 주민의 시각이다. 정읍 주민들은 시민단체 위주의 환경영향평가 실시는 물론이고 정읍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맑은 물 확보대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상레포츠단지 중단하라.” 정읍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새해 벽두인 지난 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도는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해제된 옥정호의 수상 레포츠단지 개발을 위한 용역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전북도의회
정읍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새해 벽두인 지난 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도는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해제된 옥정호의 수상 레포츠단지 개발을 위한 용역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2만 정읍시민의 식수 원수가 되는 옥정호에 보트를 띄우는 수상레저산업은 중금속을 포함한 비점 오염(유동적 오염원에 의한 오염)이 늘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생기) 정읍시장이 지난달 대법원 판결로 직위가 상실돼 공석인 만큼 (옥정호 개발과 관련해) 업무적, 도덕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새로 당선된 정읍시장이 관련 업무를 개시할 때까지 용역 발주를 잠정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임실군은 ‘임실의 자치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임실군 옥정호 상생발전협의회(위원장 김중연)는 “현재 군에서 추진하는 수상레포츠 시설사업은 정읍시 상수원 수질오염과는 무관한데도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상수원관리규칙은 취수지점에서 최대 7㎞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옥정호 수상레포츠타운은 20㎞ 이상 떨어져 있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또 “옥정호에서 정읍시로 공급하는 식수원의 수질은 1급수이나 정읍시 도원천을 지나면서 인근 축사에서 배출되는 분뇨로 오염돼 2급수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수상레포츠단지는 국비를 통해 전북도민이 이용하는 친수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것이다”며 “임실군과 정읍시의 상생 화합을 위해 낡은 지역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시·군 상생협력 차원에서 옥정호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한 만큼 양 시·군이 불편하지 않도록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박칠석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