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 불씨 여전…2심서도 패소 땐 금호타이어 매각 협상 불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연합뉴스
앞서 검찰은 박 전 대표가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금호 측으로부터 홍보 용역 명목으로 11억 원 상당의 착수금을 받은 것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박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9일 서울고법은 “당시 금호가 현안 해결을 위해 뉴스컴과 계약을 맺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박 전 대표가 금호를 기망할 의도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은 ‘실패한 로비’,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 실세와 가까운 인사의 요구를 거절한 기업은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통한 우회 협상이 좌절된 금호아시아나는 이후 그룹 계열사가 줄줄이 매각되는 구조조정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호산업, 금호고속 등 핵심 계열사를 되찾은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룹 재건 마지막 퍼즐로 평가받던 금호타이어 인수에 실패한 것은 뼈아프다. 또 그룹 중추와 다름없는 아시아나항공은 무리한 자금조달로 부채비율이 700%대까지 치솟았다. 금융권 안팎에선 한진그룹의 사례처럼 금호그룹 역시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8일 산업은행은 워크아웃 기로에 선 금호타이어에 대해 차입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율을 인하하기로 내부 입장을 정리했다. 앞서 산업은행은 채권단과 함께 금호타이어 매각을 추진했지만 유력 인수후보인 중국 자본 더블스타와 가격 협상에 실패하면서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했다. 당시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 인수를 놓고 막판까지 경합했던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산업이 보유한 상표권 사용료를 빌미로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원활한 매각을 위해선 금호아시아나로부터 상표권을 양도받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의 차입금 상환은 연기하면서도 금호아시아나 지주사인 금호홀딩스에 대해선 연내 560억 원 규모의 대출 상환을 통보했다. 지난해 11월 박 회장이 산업은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의 합병을 강행한 데 따른 조치다. 박 회장은 금호홀딩스를 통해 금호산업과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하고 있다. 당시 산업은행은 ‘금호고속 합병으로 박 회장의 지배구조는 강화될지 모르지만 금호홀딩스 재무구조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의 산업은행 관계자는 “오는 3월 돌아올 만기 대출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측이 갚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부채비율이 높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해 산업은행이 대출 상환에 나설 경우 박 회장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해 6월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가 진정을 넣은 금호홀딩스 부당 지원 의혹에 대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앞서 금호 측이 금호산업 등 계열사를 동원해 지주사인 금호홀딩스에 약 1000억 원 규모의 부당 지원을 했다며 직권조사를 요구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배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선 2009년 박 회장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던 때와 지금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호아시아나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박삼구 회장이 초청되지 않는 것만 봐도 현 정부에서 위상을 알 수 있다”며 “진행 중인 상표권 소송 결과가 박 회장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09년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 회장과 대우건설 매각 등 경영 현안을 놓고 갈등을 겪다 이른바 ‘형제의 난’에 휘말렸다. 당시 박 회장은 본인 소유 금호산업과 동생 박찬구 회장 소유 금호석화가 ‘금호’ 상표권을 공동등록한 것에 대해 상표권 이전 등록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 금호석화 계열사 2곳에 대해 ‘금호산업에 미납한 상표권 사용료 260억 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금호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부인인 고 이순정 여사의 노제가 2010년 5월 15일 오전 광주 금남로 금호기념관에서 거행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이 슬픔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금호석화는 2007년 계열분리 후 금호산업에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형제의 난’ 이후 지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석화에 지급해야 할 금호산업 기업어음(CP)을 상계 처리해 축소 반환했다. 법정다툼으로 비화된 이 사건은 2015년 서울중앙지법이 금호석화의 손을 들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1심 재판부는 금호아시아나 측이 금호석화를 “형식상 공동 상표권자”라고 주장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금호석화 측이 들고 나온 “금호그룹 운영비를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금호석화가 지급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1심은 ‘금호석화가 금호산업에 지급한 돈은 그룹 운영비며, 상표권은 두 회사가 공동 소유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즉각 항소했고, 오는 2월 8일 2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화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상표권 소송 결과는 이후 진행될 금호타이어 매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약 금호석화가 2심도 승소하면 금호아시아나 측은 금호타이어 매각 시 단독으로 ‘금호’ 상표권 협상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협상의 걸림돌로 지목돼 온 상표권 분쟁 해결로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 정상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 반면 금호아시아나는 상표권 사용료로 챙길 수 있는 ‘미래 이익’ 일부를 금호석화에 넘겨야 한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타이어 상표권만으로 연간 60억 원의 수익을 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회장은 2016년 8월 상표권 소송 2심 선고를 앞두고 박찬구 회장과 어색한(?) ‘화해’를 발표했다. 당시 재판부는 상표권 분쟁에 대한 판결 대신 소송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석화와 상호 진행 중인 소송을 모두 취하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석화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 소송 당사자 간 합의도 무산됐다. 이와 관련, 재계 일각에선 당시 두 형제의 화해가 ‘정치적인 힘에 강요된 것’이란 뒷말이 나온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윗선’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화 측에 “관계를 개선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두 기업은 검찰에 제보된 오너 일가 경영 비리 의혹과 관련해 제보 배후로 서로를 의심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사건 중 일부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이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두 형제가 진짜 화해를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