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변수 등장에 ‘차기’항로 출렁
▲ (왼쪽부터)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대표, 정운찬 총리 내정자 | ||
박근혜 전 대표의 일방적 독주 체제였던 한나라당은 이번 개각을 통해 급부상한 정몽준 대표,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의 새로운 경쟁체제가 만들어진 상황. 인물난으로 고심해온 민주당 역시 여권의 대권주자 다자구도를 염두에 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급한 처지에 놓였다. 과연 차기 대권을 향한 장기 레이스에 돌입하고 있는 여야의 대권 잠룡들에게 이번 여권 개편은 어떤 이해득실을 가져다주게 되었는지 짚어보았다.
“이번 개각으로 뉴스의 초점은 한나라당으로 몰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에 들어서고 경제회복 조짐이 보이는 등 주변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점은 당분간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번 여권 개편에 대해 이러한 평을 내놓았다. 또한 이번 개편이 만들어놓은 한나라당 내의 ‘대권주자 다자구도’ 역시 당분간 정치 이슈를 선점해 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깜짝 개각카드’의 중심에 서 있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등장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민주당 내에는 “생명력이 길지 않은 총리직에 불과할 것”이라며 애써 이번 개각을 낮춰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정가에는 정 총리 후보자의 등장에 대해 그 의외성만큼이나 ‘신선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정계를 뒤흔들 만한 정치 이슈가 없는 상황에 ‘정운찬 총리지명’이라는 뉴스는 당분간 그 신선도를 유지해할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카드’를 선택한 배경으로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되지만, 그중에서도 ‘박근혜 독주체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번 개각의 ‘여파’를 가장 크게 받을 인물 역시 박근혜 전 대표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해 왔다. 박 전 대표를 이은 2위는 순위가 뒤바뀌어 왔지만 박 전 대표는 2위 주자와 현격한 격차로 1위 자리를 유지해왔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정몽준 신임대표로 인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크게 영향을 받을 조짐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이들이 박 전 대표의 독주체제에 대한 견제구가 되리라는 의견은 대체로 일치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역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개각으로 인해 ‘불리한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리서치 앤 리서치의 배종찬 정치·사회 조사팀장은 “박 전 대표는 이번 개각으로 ‘위기모드’를 맞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몽준 대표체제로 한나라당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큰 무리 없이 치러낸다면 남은 이명박 정부 하반기는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대표의 대권주자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도 높고 경제지표 역시 회복세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딴죽 걸기식’ 제동을 걸기도 어렵다. 박 전 대표는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며 침묵모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 역시 “박 전 대표의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전면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1일 대구 달성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에는 간여하지 않는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라며 다시 한 번 재보선 불개입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정몽준 신임 대표로선 ‘기회’를 얻게 됐다. 한나라당 내 대권주자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항상 ‘밀려 있던’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라이벌 구도’ 체제를 만들 수 있을지가 관건. 가까이는 10월 재보선과 멀리는 내년 지방선거가 있다. 이 두 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 대표가 보여줄 리더십에 따라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몽준 대표 측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는 정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몸을 낮추며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일 첫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게 “도와 달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가 하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을 잇달아 만나 ‘형님’ ‘선배’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화합 국회’를 만들자며 도움을 요청했다. 정 대표의 이와 같은 소탈한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적지 않다. 또한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어 정 대표의 당 대표 출발 상황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정 대표는 당내에 고착화된 친이VS친박 간 경쟁구도와 이재오 전 최고의원의 복귀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를 잘 풀어낸다면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친이계’의 대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 (왼쪽부터)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의원 | ||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내정에 대해 높게 평가하지 않으려 애쓰는 분위기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 전 총장은 이번에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미련을 갖고 있지 않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 중복 게재, 병역 특혜 의혹 등도 정 총리 후보자에게 적잖은 생채기를 남길 전망이다. 더구나 정 후보자가 심대평 전 의원의 ‘대타’였다는 점에서 과연 그의 쓰임새가 얼마나 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서도 대권 잠룡으로 거론돼왔던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명실상부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향후 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감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정작 앞으로의 행보가 대권주자로서의 그에 대한 성적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 배종찬 팀장 역시 “(총리 내정이) 그에게 기회가 될 수도 고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여권 개편을 통해 한나라당이 대권 구도의 흥행성이라는 부수입까지 올린 반면 민주당은 또 한 번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선 정세균 대표 체제로는 오는 10월 재보궐과 내년의 지방선거 모두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조기 전당대회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미디어법 통과 이후 위기를 맞았던 정세균 대표 체제는 이번 개편 여파로 정국 주도권을 여권에 빼앗기면서 또다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조차 ‘정세균의 한계’라는 자조적 목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정 대표 측은 ‘외부인사 영입’과 ‘친노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을 돌파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11일 친노 모임인 ‘국민주권모임’ 발족식에 참석해 직접 격려사를 전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근태 전 의장의 재보선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친노 세력’과의 단합 여부와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 등에 대해 당내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난항이 계속될 전망이다.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는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 역시 공개적으로 “친노신당이 창당되면 지방선거, 특히 수도권 선거에서 민주당은 패배할 것”이라고 밝히며 현 정세균 체제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세균 대표로서는 당장 10월 재보선의 성적표에 따라 입지가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려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민주당 안팎에서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0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수원 장안 지역의 재·보궐 선거가 결정된 상황. 이곳에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의 출마설이 나돌고 있어 손 전 지사가 출마할 경우 빅 매치가 예상된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 또한 “손학규 전 지사 영입을 위해 삼고초려라도 하겠다”며 그의 재보선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박종희 의원 사건의 판결 결과를 듣고 “알았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야인으로 정치 복귀 시점을 고민해온 그의 주변에서는 ‘더 이상 시기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손 전 지사 역시 최근 당내 인사들과의 교류를 넓히고 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 의원에 대해선 우호세력과 반대세력이 크게 엇갈리지만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대체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친노 세력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나 민주당 지도부 교체를 원하는 이들도 손학규 전 지사 영입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한 손 전 지사의 정치복귀는 정동영 의원에게도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평가다. 손 전 대표가 출마하게 될 경우 민주당 내에서 그의 복당 문제가 다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VS정’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자유선진당 심대평 전 대표의 탈당으로 양당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상실한 상태. 무소속 이인제 의원의 영입설이 나돌고 있으나 자유선진당 측은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이인제 의원이 경선에서 패한 뒤 독자 출마해 이회창 총재가 타격을 입었던 ‘악연’이 걸리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박영선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심대평 대표께서 돌아오실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남겨드리고 싶고, (이인제 의원 영입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당의 정체성이 깨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천천히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문국현 대표(서울 은평 을) 역시 대법원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 편치 않은 상황이다. 아직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여서 다음 달로 선고일이 정해진다면 유죄가 확정된다고 해도 10월 재보선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만약 문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당의 위상이 흔들림과 동시에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