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자 ‘KT’ 수장 바꾸려는 뻔한 수” 비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을 향한 수사’가 진행되며 흑역사가 연출됐던 KT.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정당국은 KT를 향했다. 국회의원들을 향한 상품권깡 로비를 한 정황을 찾아낸 것. 하지만 수사 주체는 검찰이 아닌 경찰이다. 그러다보니 칼이 무딘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경찰 내에서는 “가장 준비가 잘된 사건”이라며 자신감이 상당하다. 경찰 내에서는 벌써부터 황창규 회장을 넘어,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A와 B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경찰이 KT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달 31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KT 본사와 서울 종로구 광화문지사에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KT가 어떻게 ‘상품권깡’을 진행했는지, 얼마만큼 체계적으로 움직였는지 확인 중이다.
경찰과 국회 정보를 종합하면, KT 대관 업무를 담당한 임원들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해 현금화하는 ‘깡’으로 수억 원을 마련했다. 필요할 경우 법인카드를 썼지만, 일부는 임원이 사비를 들여 먼저 후원하고 후에 상품권 형식으로 금액을 메우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수억 원은 임원들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후원회에 각각 들어갔다.
상품권깡만큼이나, 후원 역시 나름 치밀하게 이뤄졌다. 선거법 등에 따르면, 연 300만 원 이상 국회의원 후원 시 고액 후원으로 명단이 공개되는 점을 감안, 100만~200만 원씩 쪼개는 방식으로 후원한 것.
이 후원은 임원 개인의 단순 후원이 아니라 명백하게 대가성이 있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지난 2016년 하반기, 황창규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가능성이 거론되자 이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수백만 원씩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경찰이 주목하는 시점은 2016년 9월부터 10월 사이다. 국정감사가 열리기 전 후원금이 집중됐기 때문. 게다가 후원금은 주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정무위원회 등 KT 현안과 맞물린 상임위에 집중됐다. 정황 증거만 놓고 봤을 때 ‘대가성 입증’은 어렵지 않다는 게 경찰 내 여론이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수사 흐름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이미 다 구조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KT는 물론, 국회의원들도 처벌을 받을 텐데 범죄 금액이나 혐의 등을 감안할 때 구속할 만한 사안들은 아직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상품권깡이 드러날 경우 후원한 임원들은 물론, 이를 알고 지시한 KT 고위 임원진에 대한 형사 처벌도 불가피하다. 명백한 불법 후원(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 자연스레 관심은 황창규 회장이 이를 지시했는지에 쏠린다. 실제로 그해 황 회장은 국감장에 서지 않았는데, 당시 KT의 로비는 여야보다도 황 회장의 출석을 막아 줄 실세 의원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라고 다 로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선이거나 어느 정도 상임위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어야 로비 제의도 들어온다”며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당시 실세는 지금 야당 의원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로비를 받은 대상으로는 야당(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로 거론된다. 친박계 실세였던 A 의원과 현재도 중진으로 활동 중인 B 의원 등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첫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2016년만 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주도하던 흐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는 게 앞선 관계자의 평가다. 심지어 그는 “힘이 없는 국회의원들은 돈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며 “로비를 받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KT의 상품권깡 로비는 너무 공공연했다는 게 국회 내 중론이다. 실제 이런 의혹들이 국정감사에서 언급될 정도였다.
2016년 10월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때, KT가 케이뱅크 대주주로 추가 출자를 원하는 과정이 이슈가 되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은산분리 규정을 언급하며 “KT같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온통 로비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 저기다 금융을 맡기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당시 케이뱅크 관련 이슈로 황창규 회장 출석 가능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황 회장은 정무위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심 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은 그날 국정감사에서 KT와 황창규 회장을 일체 논의 대상으로 올리지 않았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017년 12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 의원은 박근혜 정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성준 기자
성공한 수사라는 평이 벌써부터 나오기도 한다. 황창규 회장이 이미 ‘관행이 있었다’며 상품권깡 자체를 시인했기 때문. 그는 경찰 압수수색 이후 진행된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 후원금을 그런 식으로 내온 관행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 정권이 본인을 흔들고 있다고 느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수사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답변하기 어렵다. 뭐라고 답변하기 그렇다”고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경찰은 ‘신중히’ 가겠다는 태도다. 입증은 자신이 있지만, 과정이 시간이 걸리는 수사라는 판단에서다. 앞선 경찰 관계자는 “상품권을 산 돈의 출처와 과정, 깡을 한 과정, 그리고 그 돈이 누구와 어떤 대화를 거쳐 왜 국회의원 후원금으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며 “이미 다 구조가 나온 만큼 실수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수사라는 지적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청와대에서 KT를 비롯, 민영화됐지만 통상 정권이 바뀌면 포상처럼 주어지던 대기업 총수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KT에 대한 수사도 결국 ‘전정권 사람’ 날리고, 자기네 사람 심기 위한 과정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앞선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야당을 정해놓고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며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고, 여당 의원도 KT의 로비를 받았으면 응당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놨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