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앞세워 퇴진 압박 사슬 끊어보자
지난해 12월 20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사무소에서 열린 5G빌리지 개소식에서 황창규 KT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에 대한 KT의 적극적인 후원과 움직임은 황창규 KT 회장의 퇴진설과 오버랩되면서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KT 전·현직 임직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KT 분당 본사와 광화문지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던 시간, 황 회장은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5G 홍보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개관식 도중 황 회장은 압수수색과 관련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불법 후원금 의혹 핵심은 2016년 KT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해 이른바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 임원들 명의로 소액을 나눠 내는 ‘쪼개기 방식’으로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것이다. 후원금 로비가 황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이 거론된 2016년 9월께 집중됐다는 점도 의심을 사고 있다. 공교롭게도 국회 국방위원회는 그해 황 회장을 국방부 광대역통신망 입찰 비리 의혹 관련 증인으로 채택했다가 일주일 만에 증인신청을 철회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자금이 공금인 만큼 횡령이나 배임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은 명확하다”며 “수사선상에는 ‘아주 적은 두 자릿수’ 의원들이 올라와 있으며, 벌써 일부 KT 임원들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대가성 여부를 파악함에 따라 향후 수사가 뇌물죄 혐의로 확대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경찰 수사 소식이 알려지자 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황 회장의 중도 퇴진설이 다시 대두하고 있다. KT민주화연대를 포함해 KT노조 본사지방본부, KT새노조 등은 ‘회사 자금을 빼돌려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황 회장과 임원들을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하고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퇴진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황 회장의 국정농단 부역 행위에 대한 부실수사를 규탄하며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한다”며 대검찰청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앞서 황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사퇴설이 불거진 바 있다. 황 회장이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실소유한 회사에 68억 원 규모의 일감을 몰아주고, 차은택 씨의 측근 2명을 임원으로 채용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KT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18억 원가량을 출연하기도 했다. 황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연루 논란으로 연임이 어려울 것이란 예측에도 불구, 실적 개선 등의 경영 성과를 앞세워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황 회장은 연임이 공식 확정된 지 나흘 만인 지난해 3월 28일 최순실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청와대의) 상식 밖의 청탁에 부담을 느꼈다”고 진술하는 등 박근혜 정권과 선을 그으며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황 회장은 신규채용을 늘리고 통신비 인하 정책을 앞장서 시행하는 등 정부 기조와 발을 맞추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황 회장과 KT는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의 5대 목표 중 하나로 ‘ICT올림픽’으로 내건 데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우선 KT는 평창동계올림픽에 500억 원 이상 후원하며 공식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 통신기술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평창 5G 규격’을 제작하고 평창과 강릉, 서울 등에 5G 체험관을 꾸리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KT는 거액을 후원해 경쟁사 SK텔레콤을 제치고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KT가 평창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나라의 큰 행사이니만큼 홍보 효과를 생각했을 때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까지 모두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길 기대했을 것”이라며 “3사 모두 관심이 있었겠지만 스폰서십 계약이 금액의 규모로 결정되는 만큼 KT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KT의 의지가 꽤 강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KT의 적극적인 행보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와 황 회장의 퇴진설을 묻기 위한 속셈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오주헌 KT새노조 위원장은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찰 수사와 퇴진 여론이 주춤해진 것 같은데 올림픽 이후 황 회장의 거취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평창동계올림픽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퇴색된 점, 개관식 날 여러 행사를 준비했지만 압수수색 소식 탓에 황 회장이 급히 자리를 뜨면서 제대로 못한 점 등 황 회장이 안아야 할 부담을 회사가 떠안으면서 회사 입장에서 황 회장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질타했다.
일부에서는 황 회장의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가 오히려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황 회장은 실적 개선을 이유로 연임에 성공했으나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며 많은 예산을 투입한 탓에 지난해 4분기에는 취임 이후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6일 공시한 연결재무제표에 따르면 KT는 2017년 전년 대비 2.8% 증가한 23조 387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조 3757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9.5%나 급감한 562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보면 134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기 3773억 원 대비 64.4%나 감소했다. 또 122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KT 관계자는 “연간으로 봤을 때 영업이익이 감소한 이유는 4분기 인건비 증가와 평창올림픽에 투입된 일회성 비용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T는 평창올림픽 5G 마케팅 비용에만 330억 원, 인건비로 750억 원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