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박수현 가까스로 지지도 1위…줄줄이 낙선하면 2년차 국정운영 부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토론회에서 참모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정부 여당이 밀어주는데도, 지지도가 저 정도밖에 안 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한 말이다. 박 전 대변인은 2월 2일 충남지사 출마를 위해 사직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 지 8개월 만이다. 박 전 대변인이 차기 충남지사 도전 의지를 피력한 것은 지난 국회 때부터다. 문 대통령이 ‘포스트 안희정’을 노리는 박 전 대변인을 청와대 초대 대변인으로 낙점하자,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최대 수혜자는 박수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쿠키뉴스가 1월 24일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월 20∼22일까지 사흘간 충남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차기 지사 선호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를 한 결과, 박 전 대변인(14.3%)과 양승조 민주당 의원(13.6%)의 격차는 0.7%에 불과했다. 복기왕 아산시장(11.4%),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10.4%), 이인제 전 의원(9.3%) 등도 지역 조직력을 앞세워 1, 2위 후보를 바짝 뒤쫓았다.
한국당에서는 홍 의원 이외에 이명수·김태흠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여야 1 대 1 구도, 인물 인지도, 선거 프레임 등에 따라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 있는 만큼 여권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치기도 어렵다. 같은 여론조사의 양자구도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박수현 24.1% vs 홍문표 16.4%’, ‘양승조 23.2% vs 홍문표 18.8%’, ‘복기왕 20.8% vs 홍문표 17.2%’ 등으로, 박 전 대표가 약간 우세를 보였다.
박 전 대변인의 상징성이 지방선거에 나서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권 수뇌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박 전 대변인을 제외한 청와대 참모진 출신 후보는 10여 명(2월 중순 현재) 정도지만, 제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문대림 전 청와대 제도개선 비서관과 오중기 전 대통령비서실 균형발전 선임행정관(경북지사) 등을 뺀 나머지는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간다.
대표적으로는 ▲이재수 농어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춘천시장) ▲백두현 자치분권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고성군수) ▲유행열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청주시장) ▲황태규 전 균형발전비서관(전북 지역 출마 유력) ▲강성권 정무비서관실 행정관(부산 사상구청장) ▲김기홍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인천 남동구청장) 등이다. 박영순 제도개선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애초 대덕구청장 출마를 고심했다가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대전시장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박 전 대변인의 귀환 여부에 따라 청와대 참모진 전체 성적이 판가름 날 수밖에 없는 구도인 셈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서울시장)을 비롯해 조국 민정수석(부산시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성남시장) 등의 히든카드가 부상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최근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중 윤 수석은 최근 불출마 의사를 전달했다. 당선 부담감과 함께 문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환경이 비관적인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합세인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월 2주차(2월 6∼8일 조사해 마지막 날 공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문 대통령 지지도는 지난주와 동일한 63%였다. 1월 1주차 72%에서 한주 만에 73%로 오른 뒤 ‘67%→64%→63%’ 등을 기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시너지효과도 부족했다. 또한 박 전 대변인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청와대 프리미엄은 예상보다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 실장 등이 섣불리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다면, 국정 공백을 야기한 책임론 등에 휩싸이면서 다음을 도모할 기회마저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역대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으로 통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후 크고 작은 악재에 휘말렸다.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를 치른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정부여당 프리미엄에도 불구, 서울시장을 뺏기는 등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겪었다. YS는 이듬해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15대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기였다. 신한국당은 이회창을 비롯해 박찬종, 이재오, 김문수 등을 영입해 1996년 총선에서 139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이때 영입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치러진 2002년 지방선거도 비슷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에서 4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은 11석으로 압승했다. DJ는 청와대 책임론에 대해 “국정에만 전념할 뿐 정치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거리 두기에 나서며 책임 회피론 전략을 구사했지만, 레임덕에 빠진 DJ는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여당이 얻은 의석수는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단 한 석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은 12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2석을 거머쥐었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 다음 날 “민심의 흐름을 받아들인다”고 원론적인 반응을 내놨지만, 이튿날 “한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어느 당이 흥하고 망하고 그런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라고 말해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당·청 갈등이 표면화하자, 노 전 대통령은 한 달 만인 7월 초 경제·교육부총리,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정책실장을 교체하는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국정쇄신론에 휩싸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역자체단체장 가운데 6곳을 차지해 민주당(7석)보다 1석이 적었다. MB는 그해 6월 14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후 7월 13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실장, 정책실장, 정무수석, 대변인 등을 교체했다. 불과 한 달(8월 8일)도 채 안 돼 국무총리와 장관급 9명을 교체하는 대규모 개각도 단행했다.
박 전 대통령은 준수한 성적이 독으로 작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심판론’에도 광역자치단체장 17석 중 8석을 차지하면서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대규모 개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10일 새 총리 후보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지명했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44일 만이다.
신임 국정원장에는 이병기 전 주일대사를 지명했다. 문 전 주필은 지명 14일 만에 낙마했고 이병기 전 원장은 청와대 뇌물상납의 오명을 쓰면서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여권의 무덤인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전면적인 내각 교체로 갈 수밖에 없다. 이기더라도 만기친람식 리더십에 빠지면 호재는 악재로 돌변한다. 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야권 한 관계자는 “아직 각 당 공천도 하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여권이 (그간의 지지도만 놓고) 판세를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개헌을 시작으로, 각 당의 공천 갈등, 야권 발 정계개편, 북핵 위기 등 대내외 변수가 많다.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 거론한 여론조사 결과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윤지상 언론인
‘안철수 사람’ 장진영 두고 민주·민평당 안타까워한 까닭? “더불어민주당에 있었으면 주요 요직 하나 맡았을 텐데…”(민주당 전 당직자). “안타까운 인물이지, 왜 안철수 곁에 있어서…”(민주평화당 보좌관). 바른미래당에 합류한 장진영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을 두고 한 말이다. 민주당 범주류도 반통합파 선봉에 선 민평당 의원들도 장 전 최고위원의 행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무한도전 변호사’로 유명세를 탄 장 전 최고위원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14년 7·30 재보선. 장 전 최고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러나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박원순의 사람’ 기동민 의원을 전략공천하려다가 이 지역 터줏대감인 허동준 전 동작을지역위원장의 극한 반발을 불렀다. 이후 기 의원은 완주를 포기하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장 전 최고위원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1년여 동안 민주당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과 동고동락하면서 재기를 모색했다. 우상호·이인영 의원은 물론, 운동권 2세대 그룹과 친분을 쌓으면서 당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조급함이 문제였다. 장 전 최고위원은 2015년 말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회의 창당에 나선 ‘천정배 신당’에 전격 합류했다. 호남 구심점으로 떠오른 천 의원이 ‘수도권 야권연대’로 러브콜하자 당을 갈아탄 것이다. 장 전 최고위원은 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단기간에 의원 배지를 달려고 했던 게 화근이 됐다”고 비판했다. 애초 장 전 최고위원 측이 구상했던 것은 ‘민주당·국민회의’ 간 수도권 연대다. 보수정당과 1 대 1 구도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었다. 이 구도는 무산됐다. 천 의원은 신당 창당에 나섰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손을 잡았다. 정치권은 즉각 3당 구도로 재편했다. 장 전 최고위원은 다시 국민의당행에 몸을 실었다. 3파전으로 치러진 동작을 선거에서 장 전 최고위원은 24.5%에 그치면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43.4%)과 허동준 민주당 후보(31.5%)에 밀렸다. 장 전 최고위원은 낙선했지만, 국민의당은 39석을 얻으면서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장 전 최고위원은 당 대변인, 최고위원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안철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분당이냐, 통합이냐’의 갈림길에서 장 전 최고위원은 안 전 대표를 비판하는 호남파를 향해 “시정잡배만도 못한 말을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통합 선봉에 섰다. 이에 대해 민평당 한 중진 의원은 “정치는 재능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잔머리를 너무 굴리면 이도 저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