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매각 실패 이어 한국GM 공장 폐쇄 못 막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무책임·무능력, ‘책임론’ 대두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산은에도 비난의 화살을 빗발쳤다. 한국GM의 지분 17.02%를 보유한 2대주주이자 한국GM에 사외이사 3명을 추천해 두고도 공장 폐쇄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7월 산은이 직접 작성한 ‘한국지엠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에 “철수 징후가 증가하는 추세”, “지분 매각 제한이 해제되는 2017년 10월 이후 출구전략 모색 필요” 등이 명시돼, 한국GM의 철수를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산은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
산은은 심지어 검찰 고발까지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동영 GM군산공장폐쇄특별대책위원장(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2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은을 업무상 배임 및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정 위원장은 “9일 한국GM 이사회에 올라온 구조조정 안건을 두고 산업은행 이사 3명이 기권을 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면 공장폐쇄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산은은 2016년 3월 한국GM을 중점관리대상회사로 지정하고 경영진단 컨설팅 실시, 선제적 모니터링 강화, 소수주주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중점관리방안을 수립했으나 GM의 거부로 실행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경영감시에 실패했다. 지난해 1분기 한국GM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2개월 뒤인 지난해 3월 주주감사권을 통해 한국GM에 116개 자료를 요청했으나 6개 자료만 제공받았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GM 본사가 한국GM을 상대로 ‘고리대금 장사’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국GM 사장이 경영개선 노력을 하겠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적극 지원한다”는 안일한 답변을 내놨다. 이후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카허 카젬 한국GM 대표와 만나 직접 요청사항 8개를 전달하고 이행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2대주주이자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을 두고도 산은은 출자회사인 한국GM에 대해 경영감시는커녕 관리와 감시가 부족했던 것이다. 심지어 출자회사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산은 관계자는 “‘소수 주주’ 입장으로 GM의 비협조에 따른 관리 한계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산은은 2대주주로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군산 지역경제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지분 3%만 보유하면 행사 가능한 회계장부열람권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비상장법인에서 17%면 상당한 지분임에도 15년 동안 지분 처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토권 외에는 계약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산은이 2대 주주로서 GM과 어떠한 계약을 맺었는지 계약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계약을 잘못해 재무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손을 쓸 수 없었더라면, 소송을 통해서라도 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 출신 인사 꽂고도 경영 악화 방치
산은은 2008년 이후 한국GM에 18명의 사외이사를 임명했다. 이 가운데 9명이 총재, 구조조정실장, 재무관리본부장 등 산은 요직 출신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산은이 ‘낙하산 인사’를 보내놓고 관리를 소홀히 하다 부도 직전에야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산은이 6조 원을 출자전환해 취득한 27개 기업의 지분가치가 4400여억 원에 불과한 사실이 지적됐다. 당시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산은은 구조조정과 정책금융 집행의 핵심기관임에도 지분을 가진 출자회사 관리마저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산은이 50.75%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의 경우 해외 사업장의 부실이 드러나며 매각이 좌초됐다. 산은은 매각을 지휘한 산은 출신 송문선 대우건설 대표이사와 경영진에 책임을 돌렸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송 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대우건설 관계자는 “매각을 앞두고 신임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워 송 부사장이 대행체제로 대표이사에 선임됐다“며 ”대주주 산업은행과 협의를 통해 이사회에서 공석인 사장의 선임 절차를 밟을 수 있으나 송 대표에 대한 경질성 인사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라고 부인했다.
지난해 9월 매각에 실패한 금호타이어의 경우, 산은은 박우양 전 산은 이사를 사외이사로 등재했고 이후 2016년 임홍용 전 산은 자산운용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015년 5조 원대의 분식회계로 논란을 빚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도 57% 지분을 보유한 산은은 대주주로서 산은 출신 정성립 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임명했다. 또 김열중 전 산은 부행장을 재경실장으로, 김갑중 전 산은 부행장을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정성립 사장과 김열중 실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김갑중 부사장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초까지 산은이 19%의 지분을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5000억 원대 분식회계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다. 산은은 공정택 상무와 노상균 감사, 임맹호 이사 등을 선임한 바 있다.
# ‘낙하산 인사’ 부인
산은은 출자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2016년 10월 혁신안을 발표했다. 산은은 혁신안을 통해 출자회사 가운데 구조조정 기업에 퇴직 임직원 재취업을 전면 금지키로 했으며,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임원을 선임할 때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경영진추천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그러나 산은은 지난 1월 최근 부채비율이 3000%를 상회하며 악화일로를 걷는 KDB생명보험 부사장에 보험회사 현장경험이 없는 임해진 전 부행장을 내정해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을 재점화했다. 산은은 KDB칸서스밸류유한회사와 KDB칸서스밸류사모펀드를 통해 KDB생명보험의 지분 85%를 보유한 대주주다. 산은 관계자는 “혁신안은 비금융 자회사에 낙하산 인사를 금지한 것이지만 KDB생명은 비금융 자회사나 구조조정 중인 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잇단 논란과 비난에도 산은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산은 관계자는 “어떻게 이야기해도 받아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라며 “한국GM의 경우 10명의 이사가 있는 이사회에 우리 측 이사는 3 명밖에 없어 다수결에 따라 반대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산은에서 비금융 자회사에 사장을 선임한 적은 없으며 대우건설 송문선 대표는 대행체제일 뿐 사장이 아니라 CFO(최고재무책임자)로 간 것”이라며 “KDB생명은 금융자회사로서 그 성격이 다르고, KAI는 당연직으로 담당 실장이 비상임 이사를 하게 돼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산은이 정치 논리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책은행이니만큼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산은이 어떻게 살리느냐”고 반문하며 “산은은 한국GM에도 2002년 이후 투자한 적이 없고, 현재도 실사를 통해 장기적으로 회생 가능하다면 추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