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부탁으로 수령한 택배가 마약 원료…친오빠가 나서 국민청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4살의 여성이 현지에서 마약사범으로 몰리는 영화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스틸컷.
최근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4살의 여성이 현지에서 마약사범으로 몰린 것. 지난 1월 18일 남호주의 나라쿠트(Naracoorte) 지역 자택에 머물고 있던 A 씨(여·24)는 갑자기 들이닥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호주 경찰은 A 씨가 마약 원료가 든 택배상자를 수령하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외교부에 의하면 A 씨는 같은 달 22일부터 호주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호주에 위치한 대한민국 영사관 관계자는 2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A 씨는 아직까지 호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로 마약관련 범죄는 중범죄로 분류되긴 하나 진술 내용에 따라 형량이 참작될 여지가 있다”며 “외교부와 A 씨에 대한 정보를 계속해서 공유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경찰청은 국내에서 A 씨에게 마약 원료 택배를 보낸 지인 B 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A 씨는 지인이 보낸 택배가 마약 원료였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한국에 거주 중인 지인이 물건 보관을 부탁하면서 택배를 발송했고 해당 박스가 인도네시아 경유 도중 세관에 적발됐다”고 진술했다.
사건은 A 씨의 친오빠가 2월 9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여동생이 마약 미수로 구속되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널리 알려지고 있다. A 씨의 친오빠는 “적발된 마약 원료는 ‘슈도에페드린(Pseudoephedrine)’으로 택배 무게만 109kg 정도가 나가며 한화로 120억 원에 달한다”며 “택배를 보낸 B 씨는 여동생이 호주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 여성의 남자친구로 동생은 지인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을 별 생각 없이 수락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청원 글은 어린 동생이 아무 의심 없이 택배를 받아 준 대가가 너무 크다며 국가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A 씨의 친오빠는 “제 여동생은 유죄판결이 확정된다면 최대 25년형을 받을 수 있다”며 “20일 정도가 흐른 현재에만 변호사 수임료로 벌써 470만 원 정도가 들었고 이를 앞으로 가족들이 어떻게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2월 9일 A 씨의 친오빠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여동생의 사연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관리과 관계자는 “슈도에페드린은 감기약에 주로 쓰이는 마약 원료로 감기약에서 슈도에페드린을 분리해 마약을 제조하는 사건도 있다”며 “적발된 양이 워낙 많아 감기약 형태의 슈도에페드린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문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월 20일 기자는 업무상 해외에 머물고 있는 A 씨의 친오빠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현재 우리 변호사는 동생의 형량을 약 10년 미만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5월 21일에 증거물 제출 재판이 이행되고 난 뒤 형량이 어느 정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월 26일 호주 연방경찰(Austrailian Federal Police)은 ”터키에서 소포를 통해 멜버른으로 12.4kg의 아편 수지를 반입한 일당 두 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AFP에 따르면 그들은 호주 형법에 따라 최대 25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A 씨의 친오빠는 마약 원료 택배를 보낸 것으로 의심되는 B 씨와 아직 대면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B 씨가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이지만 경찰과 변호사가 접촉을 만류해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며 “경찰에서는 B 씨에 대한 조사 내용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고 해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B 씨가 워홀러(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 나간 사람)들 사이에서 대리 택배 수령이 흔하다는 점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A 씨의 친오빠에 따르면 B 씨가 범죄 표적으로 삼은 사람은 비단 A 씨만이 아니다. 그는 “청원 글이 알려지며 B 씨가 자신에게도 택배 대리 수령을 부탁했었다며 호주에 거주 중인 몇 명의 한국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며 “한 분은 자신이 B 씨와 나눈 카톡 대화를 증거로 보내주셨고, 다른 한 분은 B 씨가 직접 만나 같은 제안을 했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A 씨가 돈을 목적으로 마약 원료 택배를 대리 수령을 하게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A 씨의 친오빠는 “B 씨는 처음 동생에게 ‘호주에서 뭐 하고 있느냐’며 안부 인사로 접근했고, 택배만 받아주면 사례비로 20만 원을 준다고 해 동생은 아무 의심 없이 수락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외교부는 주호주 대사관과 협조해 A 씨의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호주 대사관이 호주 경찰당국을 접촉하여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며 “외교부는 공관 담당 영사 및 영사협력원을 통한 면회를 추진하는 등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와 대사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주호주 대한민국 대사관은 2016년 발간한 워킹홀리데이 가이드북을 통해 “호주 수사당국은 본인이 운반한 가방에서 마약이 발견되었을 경우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마약 운반으로 간주하고 마약사범과 동일하게 처벌한다”며 “이 경우 우리 공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음을 숙지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A 씨의 친오빠는 “한국 외교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은 바가 없으며 오로지 호주 정부에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라며 “다만 호주 외교부는 여동생 담당 영사님과 연락을 주기적으로 취하고 있으며, 직접 영사님이 여동생의 면회도 가신 것으로 알고 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