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보다 매각 통한 채권 회수 치중”…‘제2 GM’ 우려감
산은은 지난해 매각 협상이 결렬된 중국 국영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매각을 재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GM 사태’가 한창인 데다 10년 전 ‘쌍용차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산은의 해외 매각 고집 이유와 ‘해외업체로 매각’이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대현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호타이어에 대한 향후 처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은행 등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중국 더블스타와 주당 5000원, 총액 6463억 원 규모의 제3자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산은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 상반기 내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를 매각할 방침을 밝혔다. 매각이 성사될 경우 더블스타는 6463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45%를 보유하게 되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 금융기관 지분은 기존 42%에서 23.1%로 줄어든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채권단의 해외매각 추진이 ‘제2의 GM 사태’와 ‘쌍용자동차 상하이 사태’로 재현될 것이라며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노조는 “채권단의 해외매각 추진 발표는 광주시민들의 고통, 지역경제의 혼란과 파급은 전혀 고려치 않은 파렴치한 작태에 불과하다”며 “채권단은 일정 부분 자신들의 손실을 보전하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과감하게 손 털고 빠지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 구조조정 등 대량 해고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기술 먹튀’만 했던 최악의 인수합병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상하이차는 2004년 쌍용차를 인수, 기술을 확보한 뒤 인수 5년 만인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중국 상하이차는 인수 당시 자금지원을 약속했으나 결국 이행하지 않았으며 운영하는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전체 직원의 37%에 달하는 2700여 명을 해고했다.
‘한국GM 사태’ 또한 또 하나의 해외 매각 후폭풍 사례로 꼽힌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GM에 차입금 이자로 ‘고리대금’을 일삼았으며, 수년간 경영악화가 이어지자 정부에 국내 시장 철수를 미끼로 자금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GM이 지난 2월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먹튀’ 논란이 불거졌으며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은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산은이 해외 매각을 추진하는 금호타이어 역시 이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더욱이 더블스타는 지난해 금호타이어 인수전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되며 무산된 바 있다. 이미 한 차례 협상이 결렬된 곳에 재매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 일부와 금호타이어 노조 등 부정적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SK가 산은에 금호타이어 지분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더블스타 외) 다른 업체와 접촉도 있었으나 현실적 대응은 못 내놨다”며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과 채무탕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SK와 협상테이블이 존재했던 것을 확인해준 셈이다.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더블스타에 재매각을 추진하는 까닭은 ▲더블스타의 인수 의지가 강하고 ▲중국의 사드 보복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산은 등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다투던 상표권 문제가 일단락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호타이어 매각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금호의 상표권 분쟁은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법정 다툼에서 법원이 1심과 2심 모두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이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와 관련해 산은에 협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매각 추진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타이어 실적이 악화한 탓에 더블스타가 지난해 협상 때보다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지분을 챙길 수 있게 된 점도 재매각 추진에 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된다.
굳이 더블스타에 재매각하려는 이유에 대해 산은 측은 “채권단이 지난해 10월 실사를 진행한 결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외부 매각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설명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국내외 여러 업체에 의사를 타진했으나 현실적인 인수 의지를 내비친 곳이 없다”며 “해외 매각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도 알지만, 채권단 입장에서도 국내 기업이나 세계 유수 기업이 인수하겠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시 말해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또 채권단 내 한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중국공장 처리가 가장 큰 문제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현실적이지 않았다”며 “더블스타는 금호타이어 중국공장 처리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확고한 플랜이 있었다”고 전했다. 채권단 내 다른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채권을 회수하려면 법정관리보다 매각을 원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법정관리로 가기 전에 빨리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려 한다는 것이다. 법정관리로 가면 채권단에서 채권 회수가 쉽지 않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어느 한 기업이 법정관리로 가면 해당 기업 채권단들이 혼란에 빠진다”며 “담보를 갖고 있는 곳은 담보를 챙겨갈 수 있지만 담보가 없는 채권은행은 다른 방도를 찾기 위해 서로 다투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산은이 국책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주채권은행으로서 채권 회수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과거 산업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을 겪은 바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경영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고 채권 회수에만 목적을 두고 있었다”며 “산업은행은 기업이 잘못될 경우 재계에 미칠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기업의 자구안조차 무시한 채 구조조정을 진행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고 발을 뺐다”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산은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채권을 미끼로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을 했던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