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태 연임 로비’ 금고지기 김재정과 최측근 천신일 연루의혹 추적
서울 중구 남대문로 125 대우조선해양 건물. 박정훈 기자
2015년 불거진 대우조선의 2조 원대 분식회계 사건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싹을 틔웠다. ‘주인 없는 회사’의 최고경영진인 남 사장은 2006~2012년 이 회사의 부실을 방조하거나 경영 비리에 직접 관여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남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은 지난 보수정부 기간 동안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2010년과 2016년 각각 대우조선해양 최고경영진을 겨냥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연임 로비 의혹에 대해선 명확한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검찰의 첫 번째 수사 당시 강기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내 김윤옥 여사가 연루된 남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강 전 의원은 남 사장이 연임을 위해 1000달러짜리 수표 다발을 이 전 대통령의 동서 황태섭 씨에게 전달했고, 다시 황 씨가 김 여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움직여 민유성 산업은행장에게 남 사장의 연임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남 사장은 2009년 2월 연임이 확정돼 2012년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이에 대해 민 행장은 “앞서 여러 차례 밝혔듯 그런 일(연임 로비)은 전혀 없었고, 남 사장이 연임된 것은 대우조선 매각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산업은행은 2008년 대우조선을 공개 입찰에 붙여 매각을 추진했지만 우선협상자가 된 한화와 가격협상 등에 실패하며 무산됐다. 당시 재계 안팎에선 이명박 정부가 최종 인수 후보로 포스코를 미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포스코는 2010년 갑작스레 대우조선과 함께 드윈드에 대한 지분 참여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 내에서도 연임 로비 의혹은 규명하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수사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미 남 사장과 그 주변에 대한 계좌추적을 수차례 벌였고, 수사를 두 번이나 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설혹 MB(이 전 대통령)에 대한 로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건 공소시효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남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을 밝힐 증거를 갖고 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박수환 게이트’의 주인공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 항소심에서는 남 사장이 평소 민 행장과 친분이 있던 박 전 대표를 통해 로비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과 중학교 동창인 이 전 대통령 처남 김재정 씨(사망, 이하 김재정)에게도 연임을 청탁했다는 증거자료가 제출됐다. 지난 1월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연임 로비가 있었다”고 판시하며 박 전 대표를 구속수감했다.
2010년 검찰의 대우조선해양 첫 번째 수사 당시 강기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의 아내 김윤옥 여사가 연루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박정훈 기자
이 전 대통령 처남이자 김 여사의 동생이기도 한 김재정은 ‘MB 핵심 자금 관리인’이란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생전 김재정은 경기 가평군 설악면 별장을 비롯해 전국 10여 곳에 부동산을 소유했는데 이는 모두 MB 차명 재산이란 의혹을 받고 있다. 다스 실소유 의혹의 쟁점 중 하나인 ‘도곡동 땅’ 매각 과정에도 김재정이 등장한다. 다스 전직 관계자는 “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보다 김재정이 MB와 더 가까웠다”고 증언했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앞서 검찰은 남 사장 연임 로비 과정에서 김재정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했지만 이를 수사하지 않고 덮었다는 의혹이 있다. 의혹의 내용은 구체적이다. 경남 고성 소재 화물운송업체 A 사가 정권 로비를 위해 만들어진 남 사장과 김재정의 차명 소유 회사며, 이 회사가 대선 직전인 2007년 4월 설립돼 대우조선으로부터 일감을 받고 매년 수십억 원의 이득을 올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경남 고성에는 MB 차명 부동산으로 알려진 임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정은 대우조선 첫 번째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2010년 2월 사망했다. 그러나 김재정 사망 이후에도 김재정 최측근이자 또 다른 ‘금고지기’인 이영배 씨 등은 최근까지 MB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스 안팎에선 김재정과 이 씨 등이 관리한 비자금이 MB뿐 아니라 김윤옥 여사에게까지 전달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시 말해 A 사 등을 통해 조성한 돈 일부가 김 여사를 포함한 MB 일가에 전달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MB 누나 이귀선 씨가 설립한 고철업체 ‘동명’은 다스로부터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면서 중간마진 일부를 다시 MB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리베이트’인 셈인데 A 사의 경우도 김재정 혼자 남 전 사장의 연임과 관련한 이권을 챙길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 덧붙여진다. 그러나 A 사 측은 의혹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A 사 고위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고, 처음 듣는다”며 “2007년 10월 우리가 (경남 고성에) 물류센터를 짓고 대우(조선해양)로부터 임대료를 받고 있는데 당시 회사에 근무하지 않아 자세한 건 모르지만 (MB와)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검찰은 MB 최측근인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MB 불법자금 조성과 관련해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천신일 전 회장이 다스 소송비 대납과 관련해 삼성과 MB의 가교 역할을 했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일각에선 천 전 회장이 2010년 대우조선 협력업체인 B 사에서 수십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사건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검찰은 B 사가 천 전 회장에게 자체 로비를 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남 전 사장이 연임 로비를 위해 B 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 등에 대해선 사실상 ‘면죄부’를 내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